198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행해 20년 이상 은행에서 일한 L씨(46·여)는 2010년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됐다.
늦둥이 둘째를 첫째아이처럼 아등바등 키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L씨는 "첫째가 어릴 적, 아이를 돌봐주시던 친정 엄마가 갑자기 아프셔서 아이를 데리고 출근한 적이 있다"며 "지점과 같은 건물에 있던 식당 아주머니께 아이를맡기고 반나절을 일하면서 '일 하는 엄마'는 '죄인'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은행에 다니면서 학사 학위를 따고 여성 직원이 잘 맡지 않는 기업대출 업무도능숙하게 해냈던 그였지만 육아의 벽은 사표를 던지게 만들었다.
◇은행권 유리천장 "얇아졌지만 깨지진 않아" L씨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물에 막혀 경제활동을 접는 사례는 최근 여풍(女風)이 거세다고 일컬어지는 은행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반 기업체에 비해 비교적 '눈치'를 덜 보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는 은행권에도 유리천장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남성 직원들은 임금피크제를 거쳐 정년을 채우고 퇴직하거나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고 준정년 퇴직을 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여성 직원들은 '중도 하차'하는경우가 많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이 이야기다.
시중은행의 한 노동조합 관계자는 "희망퇴직을 실시하면 40대 여행원들이 적지않게 신청한다"며 "일단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던 '워킹맘'들이 자녀 진학 등 신경써야 할 일이 늘어나면서 일을 접는 경우가 꽤 많다"고 전했다.
여러 업무를 익히며 성과를 내고 승진하는 과정에서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여전하다는 것도 또다른 이유다.
국내 첫 여성 행장인 권선주 기업은행장은 "예전에는 여신이나 외환, 재무 업무는 여성 행원에게 잘 주지 않았다"며 "지금은 많이 허물어졌지만 업무의 벽이 없는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남성 위주의 기업문화가 자리잡고 있어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도 무시할 수 없다.
한 시중은행의 인사담당자는 "기업금융 등 일부 업무는 거래처 재무책임자 등 '카운터파트'가 거의 남자인데다 현실적으로 음주에 대한 부담도 있다"며 "이 때문에여직원 본인이 업무를 꺼리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여풍이 허풍(虛風)되지 않으려면…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 시절 공기업과 은행권에서 불었던 '고졸 열풍'은 물론최근 금융권의 '여풍'에도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서 고졸 열풍이 주춤한것처럼 여성 대통령 시대를 맞아 거세진 여풍도 몇년 만에 가라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금융권에서 경쟁하듯 여성 임원을 선임했다며 홍보를 하는 것은 그만큼 여성이 고위직에 앉는 것이 평범하지 않은 사례임을 방증한다는 지적도 있다.
게다가 이들 여성 임원들도 경력을 따져보면 이른바 '핵심 보직'을 맡았던 적이거의 없고 본점 근무 경력도 길지 않은 경우가 많다. 지난해 말 은행권에서 잇따라배출된 여성 임원 5명 가운데 4명은 모두 소비자 민원 처리 영업지원 부문의 임원을맡았다.
이 때문에 은행들이 발 빠르게 여성 임원을 늘리는 것 또한 '여성 대통령' 코드에 맞춘 구색 맞추기라는 지적을 받는다.
다만, 최근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어남에 따라 신입행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늘어났고, 육아휴직 제도가 비교적 잘 정착돼 있어 남성 일색인 인력구조가 바뀌는것은 시간 문제라는 의견도 나온다.
다른 시중은행의 인사담당자는 "고위직에 여성이 적은 이유는 그 나이대에 여성인력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라며 "최근에는 입행하는 직원의 남녀 비율이 거의 같고승격에도 차별이 없기때문에 10년 정도만 지나면 관리자급 여성이 훨씬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입행원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여성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무엇보다 육아에 대한 뒷받침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특히 은행권에서는 이미 육아휴직 제도가 자리를 잡은 만큼 보육시설 등 다른제도가 보완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신순철 신한은행 부행장보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아파트나 역세권에 보육시설을 제공하고 저렴하게 운용하는 시스템이 있다면 경력이 단절되는 여성들이 많이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새롭고 복잡한 금융상품이 수시로 쏟아지는 시대이므로 1∼2년가량 영업 현장을떠났던 휴직자들이 다시 일터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재교육이 강화돼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권선주 행장은 "업무와 관련된 규정이 바뀌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공부해야 할부분이 많다"며 "휴직 후 복직 지원이 더 효과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워킹맘 본인도 자기계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고 조언했다.
zheng@yna.co.kr, cindy@yna.co.kr, ksw08@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늦둥이 둘째를 첫째아이처럼 아등바등 키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L씨는 "첫째가 어릴 적, 아이를 돌봐주시던 친정 엄마가 갑자기 아프셔서 아이를 데리고 출근한 적이 있다"며 "지점과 같은 건물에 있던 식당 아주머니께 아이를맡기고 반나절을 일하면서 '일 하는 엄마'는 '죄인'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은행에 다니면서 학사 학위를 따고 여성 직원이 잘 맡지 않는 기업대출 업무도능숙하게 해냈던 그였지만 육아의 벽은 사표를 던지게 만들었다.
◇은행권 유리천장 "얇아졌지만 깨지진 않아" L씨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물에 막혀 경제활동을 접는 사례는 최근 여풍(女風)이 거세다고 일컬어지는 은행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반 기업체에 비해 비교적 '눈치'를 덜 보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는 은행권에도 유리천장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남성 직원들은 임금피크제를 거쳐 정년을 채우고 퇴직하거나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고 준정년 퇴직을 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여성 직원들은 '중도 하차'하는경우가 많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이 이야기다.
시중은행의 한 노동조합 관계자는 "희망퇴직을 실시하면 40대 여행원들이 적지않게 신청한다"며 "일단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던 '워킹맘'들이 자녀 진학 등 신경써야 할 일이 늘어나면서 일을 접는 경우가 꽤 많다"고 전했다.
여러 업무를 익히며 성과를 내고 승진하는 과정에서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여전하다는 것도 또다른 이유다.
국내 첫 여성 행장인 권선주 기업은행장은 "예전에는 여신이나 외환, 재무 업무는 여성 행원에게 잘 주지 않았다"며 "지금은 많이 허물어졌지만 업무의 벽이 없는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남성 위주의 기업문화가 자리잡고 있어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도 무시할 수 없다.
한 시중은행의 인사담당자는 "기업금융 등 일부 업무는 거래처 재무책임자 등 '카운터파트'가 거의 남자인데다 현실적으로 음주에 대한 부담도 있다"며 "이 때문에여직원 본인이 업무를 꺼리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여풍이 허풍(虛風)되지 않으려면…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 시절 공기업과 은행권에서 불었던 '고졸 열풍'은 물론최근 금융권의 '여풍'에도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서 고졸 열풍이 주춤한것처럼 여성 대통령 시대를 맞아 거세진 여풍도 몇년 만에 가라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금융권에서 경쟁하듯 여성 임원을 선임했다며 홍보를 하는 것은 그만큼 여성이 고위직에 앉는 것이 평범하지 않은 사례임을 방증한다는 지적도 있다.
게다가 이들 여성 임원들도 경력을 따져보면 이른바 '핵심 보직'을 맡았던 적이거의 없고 본점 근무 경력도 길지 않은 경우가 많다. 지난해 말 은행권에서 잇따라배출된 여성 임원 5명 가운데 4명은 모두 소비자 민원 처리 영업지원 부문의 임원을맡았다.
이 때문에 은행들이 발 빠르게 여성 임원을 늘리는 것 또한 '여성 대통령' 코드에 맞춘 구색 맞추기라는 지적을 받는다.
다만, 최근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어남에 따라 신입행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늘어났고, 육아휴직 제도가 비교적 잘 정착돼 있어 남성 일색인 인력구조가 바뀌는것은 시간 문제라는 의견도 나온다.
다른 시중은행의 인사담당자는 "고위직에 여성이 적은 이유는 그 나이대에 여성인력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라며 "최근에는 입행하는 직원의 남녀 비율이 거의 같고승격에도 차별이 없기때문에 10년 정도만 지나면 관리자급 여성이 훨씬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입행원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여성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무엇보다 육아에 대한 뒷받침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특히 은행권에서는 이미 육아휴직 제도가 자리를 잡은 만큼 보육시설 등 다른제도가 보완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신순철 신한은행 부행장보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아파트나 역세권에 보육시설을 제공하고 저렴하게 운용하는 시스템이 있다면 경력이 단절되는 여성들이 많이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새롭고 복잡한 금융상품이 수시로 쏟아지는 시대이므로 1∼2년가량 영업 현장을떠났던 휴직자들이 다시 일터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재교육이 강화돼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권선주 행장은 "업무와 관련된 규정이 바뀌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공부해야 할부분이 많다"며 "휴직 후 복직 지원이 더 효과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워킹맘 본인도 자기계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고 조언했다.
zheng@yna.co.kr, cindy@yna.co.kr, ksw08@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