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관광객이 사라졌다…"남대문 모피상 줄도산">

입력 2014-01-15 06:03  

"북핵 때보다 힘들어"…오후 5시면 문닫고 퇴근

"일본 손님을 바라보고 장사하는 모피상들은 망한 사람도 많아요. 앞으로 경기가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지만 평생 하던 일인데 버텨야죠" 14일 점심 무렵 서울 중구 회현동의 남대문 시장. 한낮에도 수은주가 영하 3도밑으로 떨어진 거리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핸드백과 스카프를 파는 김희재(가명·42)씨는 귀마개와 두꺼운 패딩점퍼로 중무장을 한 채 가게 앞을 지키고 있었다.

"북한 김정일이 미사일을 쏜다고 할 때보다 훨씬 안 좋아요. 일본인 손님이 싹빠졌어요. 예전엔 1만엔을 환전하면 살 게 많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남대문 시장 상인들은 앓는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진짜' 힘들다고 토로했다.

유례없는 엔화 약세(엔저·円低)에 주요 고객인 일본인 관광객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액세서리 가게 사장인 이동백(47)씨는 요즘 오후 5시 30분이면 가게 문을 닫는다. 임대료가 비싼 지역이어서 24시간 영업을 해야 수지가 맞지만, 오후 5시가 되면길거리에 손님이 딱 끊겨 전기세만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이 씨는 "작년 10월에 소매점을 차린 이후에 일본 손님에게 딱 한 번 물건을 팔아봤다"면서 "오히려 중국인들이 통이 크지 일본 손님 중엔 흥정만 하다가 비싸다면서 그냥 가버리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신모(50·여)씨는 이날 점심때까지 첫 개시(첫 손님에게 물건을 파는 일)도 못했다.

신 씨는 "언론에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니, 독도 문제니 정치적인 이유로 시끄러워도 결국은 '돈' 때문"이라며 "원화 값이 비싸지니까 관광객이 오지 않고 물건도안 사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엔저를 더욱 피부로 느끼는 건 환전상들이다.

환전상 정재열(가명)씨는 칼바람에 고개를 푹 숙인 채 환율 차트가 돌아가는 모니터만 보고 있었다. 두 시간 째 환율을 물어보는 손님조차 없다고 했다.

"재작년에 비해 손님이 확 줄어든 건 틀림 없어요. 일본 중고등학생 수학여행같은 단체관광객은 아예 없어졌습니다" 그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소비자 물가 2% 달성 때까지 엔화 값을낮춘다고 했으니 앞으로 장사는 계속 어려울 것같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14일 현재 남대문 시장에서 정식 등록을 한 환전소는 총 23개다.

작년 1월에 견줘 3개 줄었다.

그래도 정씨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어엿한 등록업체인데다 제대로 된 공간도있다.

반면, 길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무허가 환전소의 할머니들은 플라스틱 의자와 무릎담요로 한겨울 삭풍을 막고 있었다. 서로 체온으로 추위를 견딜 뿐이다.

오영호 남대문경찰서 생활안전과장은 "길거리에서 무허가로 활동하는 환전상 아주머니들은 24명으로 파악된다"며 "작년부터 엔화 약세 때문에 영업이 힘들다는 이야기가 많다"고 전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1,002.28원으로 1년 전보다 무려 19.06% 하락했다. 원·엔 환율은 이날 오후 3시 45분 현재 100엔당 1,024.77원을 기록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해 면세점 업계에서는 마케팅 대상을 일본인에서 요우커(遊客·중국 관광객)로 갈아타고 있다.

서울 광화문의 동화면세점은 지난해 말 간판을 기존 한글에서 한자로 교체했다.

중국인 관광객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서일호 신라면세점 홍보과장은 "3~4년 전부터 중국 쇼핑객이 일본 관광객 비중을 추월했다"면서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신라면세점 계정을 만들고, 중국인이좋아하는 롤렉스 명품시계 경품 이벤트를 하는 등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clap@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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