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가격 규정' 개정…물건값 비싸질까>

입력 2014-06-19 17:45  

공정위 "낡은 규정들, 시장상황과 동떨어져"'기업 편의만 봐줬다' 비판의 목소리도

공정거래위원회가 관련 제도를 대폭 손본 것은일부 낡은 규정이 현재의 시장상황과 동떨어져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이 도입·시행된 1981년의 규정들을 30여년이 지나서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대내외 환경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공정위의 이번 제도 정비는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지나치게 제약하는 규정을 손본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

하지만, 상품 가격에 대한 기업의 결정권을 강화해준 만큼 소비자는 상품을 비싸게 구입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제조사의 '소비자가격 하한선 결정' 일부 허용 공정위의 이번 제도 개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최저 재판매가격 유지행위전면금지 완화'다.

최저 재판매가격 유지행위는 제조사(기업)가 소비자 가격의 하한선을 정해서 대리점이나 오픈마켓 등 유통사가 그 이하로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TV를 생산하는 기업이 대형마트에 TV를 공급하면서 颼만원 미만의가격으로는 팔지 말라'고 했을 때, 100만원이 최저 재판매가격이다.

지금까지 공정거래 규정은 이처럼 제조사가 최저 재판매가격을 정해서 유통사에강제하는 행위를 일률적으로 금지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서비스 경쟁 등으로 인해 소비자가 얻는 이익이 가격 경쟁 제한으로 소비자가 입는 손해보다 큰 경우에는 제조사의 최저 재판매가격 유지행위가허용된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최저 재판매가격 유지행위를 전면금지하면 상품 가격이 보다 저렴해질 수는 있지만, 서비스 등 다른 부분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문제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이런 판단의 근거로 2007년 미국 연방대법원, 2011년 한국 대법원 판례를 제시했다.

미국의 구두 제조업체 A사는 최고급 구두를 만들어 판매하면서 소매상들이 소비자들에게 고급스러운 매장 환경과 애프터서비스(AS)를 제공하도록 하는 대신, 브랜드 이미지를 생각해 할인 판매는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소매상 B는 매장 환경과 AS는 등한시한 채 고객을 더 확보하고자 가격을할인했고, A사는 B에게 제품 공급을 중단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A사의 이런 행위가 위법하지 않다고 결론지었다.

한국 대법원은 2011년 판례에서 상품의 경쟁을 제한하는 것으로 보이더라도 결과적으로 소비자 후생에 도움이 되는 경우 허용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가격 결정권 강화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상품의 가격을 높게 책정하는 것을 막는 규정도 이번에 일부 완화됐다.

시장을 독과점하는 기업이 자신의 뜻에 따라 상품의 가격과 생산량 등을 결정하는 것을 '시장지배적 기업의 가격 남용행위'로 봤지만, 앞으로는 가격 남용행위에대한 판단을 엄격히 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A사가 기술개발과 원가 혁신으로 제품 원가를낮췄는데도 판매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올리는 경우 지금까지 공정위는 제재를했지만, 앞으로 제재를 하지 않게 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행 규정은 가격남용을 판단함에 있어 사업자가 해당 상품을공급하는 데 드는 비용을 고려하게 돼 있는데, 이런 공급비용(원가)에 따라 위법성을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선진국은 높은 가격만을 문제삼는 규제를 꺼리는 추세라고 공정위는 전했다.

미국은 가격남용 규제가 기업의 모험적인 연구·개발과 창의적인 혁신 노력에찬물을 끼얹는다고 봐서 규제를 하지 않고, 유럽은 완전독점 사업자나 시장 점유율90% 이상의 기업에 한해서 제한적으로 규제한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이번 조치로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 따른 가격 형성 체계가 보다 확실히 세워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규정에는 있지만 집행이 사실상 어려웠던 요건을 이번에 제외함으로써 규제에 대한 기업들의 예측가능성이 높아졌을 것"이라며 "상품 제조비용을절감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에 걸맞은 보상을 시장에서 (상품 가격으로) 받도록 해서기업의 혁신 의욕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건값 비싸지는 것 아니냐" 우려도 하지만, 공정위의 이번 조치를 두고 소비자가 구입하는 상품의 가격이 비싸지는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소매상들이 보다 저렴하게 소비자에게 상품을 판매하고자 할 때 기업이 이를 막을 수 있고, 사업자가 상품의 가격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최저 재판매 가격 유지행위나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가격 남용행위를 엄격히 금지하던 규정을 손봐서 경우에 따라 부분적으로 허용하겠다는 것이지, 전면 허용한다거나 권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특성상 정부가 기업에 유리한 쪽으로 기존의 규정을 손보는 것만으로도 상품 가격에 대해 넓은 재량권을 준 것으로 해석해 결과적으로 소비자에게 손해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공정위가 이번에 개정한 규정은 최저 재판매 가격 유지행위,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가격 남용행위를 포함해 15개에 이른다.

공정위는 인수합병(M&A)을 활성화하고자 앞으로는 경쟁 제한 우려가 크지 않은기업결합에 대해서는 신고의무를 면제했다.

신고의무가 면제된 기업결합은 자산총액 또는 매출액이 2조원 미만인 소규모회사의 계열사간 합병, 단순투자 또는 특정분야 투자 사업만 하는 회사의 주식취득·회사설립·임원겸임 등이다.

사모펀드(PEF) 등 다른 기업의 인수를 위한 회사의 경우 실제 기업 인수 단계에만 신고의무를 부과하고 설립단계에서는 면제했다.

공정위는 소유지배구조·재무구조 변동현황 등 비상장사의 중요사항 공시 의무도 일부 완화해 일정규모(자산총액 50억원 또는 100억원이 될 예정) 미만의 비상장사는 중요사항 공시 의무를 면제하고, 비상장사의 중요사항 공시 항목에서 '임원의변동'은 삭제했다.

공정위는 15개 규정 개정을 늦어도 내년 상반기 안에는 모두 완료할 방침이다.

ksw08@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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