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내부 CEO의 명암…"안정적 승계" vs "내부권력化">

입력 2015-02-24 06:07  

하나·신한·KB 등 '내부 출신 CEO' 시대 본격화

금융권에 '내부 출신 최고경영자(CEO)'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관피아'에 휘둘리기 십상이었던 KB금융그룹마저 내부 승계 프로그램을 마련하면서 이제 내부 출신 CEO가 선임되거나 연임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의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하나, 신한 이어 KB도 '내부 승계 프로그램' 마련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011년 신한금융지주, 2012년 하나금융지주[086790]가 내부 경영진 위주의 CEO 승계 프로그램을 만든 데 이어 KB금융지주도 최근 내부승계 프로그램을 골자로 하는 지배구조 개선안을 마련했다.

개선안을 보면 현직 회장에 연임 의사를 먼저 타진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현직 경영진이 경영 승계에서 우선권을 누릴 수 있도록 했다. 그룹 회장, 은행장, 계열사 사장 등은 경영 승계의 Ƈ차 후보군'으로 고려된다.

이러한 내부 승계 프로그램의 정착은 '내부 CEO 전성시대'라고 부를만한 금융권전반의 문화를 낳고 있다.

2011년 취임한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이 2013년 연임에 성공한 데 이어 2012년 CEO 자리에 오른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도 전날 연임 고지에 올라섰다. 이번 승계 프로그램 마련으로 KB금융[105560] 윤종규 회장도 연임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CEO 승계에 있어서 내부 출신이 아닌 인물은 논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전날 하나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에 올라온 3명의 회장 후보는 김정태회장, 장승철 하나대투증권 사장, 정해붕 하나카드 사장 등 3명이었다. 외부의 금융CEO 등은 아예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차기 신한은행장을 선임하기 위해 열리는 신한금융 자회사경영발전위원회(자경위)도 마찬가지다.

위성호 신한카드 사장, 조용병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사장, 이성락 신한생명사장, 김형진 신한금융지주 부사장, 임영진 신한은행 부행장 등이 모두 내부 출신이다. 외부 출신 후보는 단 한 명도 없다.

한 금융권 인사는 "'관피아'의 시대가 완전히 저문 만큼 이제는 그룹 내부에서역량을 키운 내부 출신 경영진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펼쳐진 것"이라며 "당분간은 내부 출신 CEO가 대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이너서클'화 우려…"독립적 이사회·주주 견제로 균형 맞춰야" 내부 출신 CEO 문화의 정착은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고질적인 병폐였던 '관치금융'을 척결하고 민간 주도의 지배구조를 확립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일로 평가받고있다.

그러나 내부 승계 문화를 악용해 '이너서클'을 형성하고 재벌그룹 못지않은 '제왕적 권력구조'를 정착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이사회와 주주의 견제가 미약한 국내 금융사의 현실을 감안할 때 그 우려는 더욱 커진다.

대표적인 문제점은 CEO 승계가 경영 실적과 관계없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금융사의 경우 경영 실적이 악화하면 CEO의 퇴진은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주주 자본주의가 완전히 정착된 만큼 이사회는 물론 기관투자자, 주주 등이 CEO퇴진을 요구하고, 그에 앞서 CEO 스스로 물러나기 일쑤다.

그런데 전날 연임에 성공한 김정태 회장의 경우 지난 2년간의 성적표가 좋지 않다. 2012년 1조6천억원의 순익을 올렸으나, 2013년과 지난해 모두 1조원에도 못 미치는 순익을 기록했다.

경쟁사인 신한금융은 2조원, KB금융은 1조4천억원의 순이익을 달성했다. 심지어하나금융보다 자산 규모가 훨씬 적은 기업은행[024110]도 1조원이 넘는 순익을 거뒀다.

한 금융사 임원은 "글로벌 금융기업이라면 실적이 안좋을 경우 연임을 꿈꾸기어렵다"며 "한국에서는 사외이사나 주주 대표 등이 CEO를 전혀 견제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룹을 완전히 장악하고 제왕과 같은 권력을 누리는 행태가 생겨날 수도 있다.

신한금융 라응찬 전 회장의 경우 2005년 지주사 사장직을 맡고 있던 최영휘 전사장을 해임한 데 이어 2010년에는 그룹의 2인자였던 신상훈 전 사장을 쫓아냈다. 2인자를 두기 싫어하는 라 전 회장의 심리가 발동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재벌닷컴 정선섭 대표는 "국내 금융사 CEO의 문제점은 일단 CEO 자리에 오르고나면 자신이 재벌 회장이 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라며 "연임 제한이 없는 국내 금융사에서 그 문제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관치금융을 막기 위해서라도 내부 승계 문화를 근간으로 하는 지배구조는 맞다고 지적했다. 다만, 독립적인 이사회와 주주 대표의 견제를 활성화시키고 외부의 CEO 후보도 포용하는 개방적인 지배구조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사외이사들이 적극적으로 경영 전반을감독하고 CEO를 견제하려는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라며 "이름뿐인 주주총회를 활성화하고 기관투자가 등 주주 대표의 경영 참여를 보장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내부 출신 승계를 근간으로 하는 것은 글로벌 금융사도 마찬가지지만, 외국 금융사들은 실적 악화 때 언제든지 외부 전문경영인을영입하는 '열린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내부 승계 프로그램도 이와같은 개방적인 방향으로 발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ssahn@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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