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 신협 '밴시티' 가보니…"건전한 사회가 더 중요"

입력 2015-07-20 12:01  

'조합원 50만명·자산 186억 달러' 캐나다 최대 신협"사회적 금융,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서도 실천가능"

"돈으로 좋은 일 한다는 것, 다시 말하면 착한 수익을 창출하는 게 밴시티 신협의 핵심 가치입니다." 캐나다 밴쿠버 시내 어디를 가나 쉽게 볼 수 있는 간판이 하나 있다. 바로 빨간바탕에 흰 글자로 쓰인 'Vancity(밴시티)'다.

밴시티는 캐나다 밴쿠버가 속한 브리티시컬럼비아주를 기반으로 하는 신협(Credit Union)으로 지점 49곳에 조합원 50여만 명을 두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자산 규모가 186억 달러(약 21조3천억원)로 캐나다 신협 중 최대 규모다.

은행과 신협이 거의 비슷한 규모로 성장하는 캐나다의 현실을 고려하면 전 금융권을 통틀어서도 대형 기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한국 취재진이 찾아간 밴시티 본점은 지상 철도인 스카이트레인역에 바로 연결돼 접근성이 뛰어나 보였다.

본점에 들어서니 '헬로(Hello, 안녕하세요)'라는 큼지막한 붉은색 글자가 박힌안내 데스크가 눈에 들어왔다.

취재진을 가장 먼저 반긴 것도 '헬로' 명찰을 가슴에 붙인 직원이었다.

비영리 기관인 신협은 일반 고객이 아닌 조합원을 상대하는 금융기관이다.

일반 은행이 고객들에게서 받은 예금으로 수익을 내 주주들에게 배당하는 구조라면 신협은 조합원에게서 받은 돈으로 이윤을 낸다.

따라서 조합원 복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금융기관이라는 점이 신협의 기본속성이다.

1852년 독일에서 처음 문을 연 신협은 시간이 흐르면서 성격이 점차 변질했다.

우리나라 신협도 조합원 중심의 금융기관이긴 하지만 은행과 큰 차이가 없는 금융기관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밴시티는 아직도 세계적으로 신협의 기본 가치를 충실히 실천하는 모범사례로 꼽히는 곳이다.

그래서 밴시티를 견학하러 세계 각국의 신협 관계자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크리스 도브르잔스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순이자마진(NIM), 총자산수익률(ROA)도 중요하지만 건전한 사회가 더 중요하다"며 "밴시티는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하지않고 경제적 문제만을 바라보는 은행과는 기본 생각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밴시티가 캐나다에서 세운 의미깊은 이정표가 적지 않다.

1960년대까지 남성의 보증 없이는 대출받을 수 없던 여성에게 캐나다에서 최초로 단독 대출을 해준 금융기관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2007년부터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운동에 동참한다는 취지로 건물 구조를 바꾸어 본점에서 바로 지상 철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직원들의 처우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신협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생계유지가 가능하도록 법정 시간당 최저 임금의 2배가량을 사내 최저 임금으로 정해 직원들에게 주고 있다.

캐나다 신협에도 규제는 많다고 한다.

캐나다 신협은 은행과 달리 예금자 보호를 100% 해줘야 한다. 조합원 입장에선반갑지만 운영하는 입장에선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기업 대출도 30% 미만으로 제한돼 이른바 '큰손 고객'을 많이 유치하지 못한다.

은행은 연방정부 관리, 신협은 주 정부 관리를 받는다.

이 때문에 다른 지역 사업이나 해외로 투자영역을 넓힐 수 있는 은행과 달리 신협은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내에서만 투자활동을 해야 한다.

강도 높은 규제 속에서도 밴시티가 캐나다 제1의 신협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도브르잔스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밴시티라는 브랜드 그 자체"를 꼽았다.

그는 "우리가 어떤 신협인지 누구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얻는 수익과 보유한 돈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조합원들이 이자를 적게 받더라도 밴시티에 예금을 맡기고, 금리가 높더라도 밴시티에서 대출받는 이유는 우리에 대한 믿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조합원 복지를 위해 밴시티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사업 중 하나는 소액 대출이다.

캐나다 은행에서는 긴급 자금이 필요한 서민에게 금융기관이 소액 단기 무담보대출을 해주는 '페이데이 론(Payday Loan)' 제도가 있다.

무담보인 대신 돈을 빌린 뒤 2주 안에 상환해야 한다.

그런데 소득이 일정하지 않은 사람이나 뜻하지 않게 감당하기 어려운 급전이 필요한 사람은 2주 안에 빚을 갚기 어려워 추가로 페이데이론을 받아 앞선 빚을 갚는돌려막기 사례가 종종 생긴다.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1년 동안 금리는 600%까지 불어나게 된다.

밴시티는 긴급한 자금이 필요한 조합원이 고금리 대출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1인당 2천500달러(약 286만원) 한도로 상환 기간 2년, 연리 19%를 적용해 긴급 자금을 지난해부터 대출해 주고 있다.

도브르잔스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연체율은 다른대출과 아직 큰 차이가 없다"며 "조합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무담보로 그런 금액을 빌려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고 말한다.

밴시티가 끝없이 사회적·문화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적 금융' 역할을 할 수있는 비결로 그는 "이사진을 직접 선출하는 조합원들의 요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조합원의 50%는 밴시티가 사회적 금융에 동참해 달라고 요구하고 그 조합원들은 사회적 금융을 실현할 사람들을 이사로 뽑습니다. 밴시티가 다른 은행과 달리 조합원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태머라 브루먼 밴시티 전무는 "내 휴대전화 번호를 비롯해 밴시티의 경영과 관련된 모든 것은 조합원에게 모두 투명하게 공개된다"고 귀띔했다.

그는 "임원들이 조합원 소그룹이나 봉사활동에 참여해 조합원이 어떤 방향으로밴시티를 운영하고 싶어하는지 꾸준히 얘기를 듣는다"고 말했다.

밴시티가 이상적인 신용사업을 하는 금융기관으로 성장한 것은 사회 구성원이함께한다는 분위기가 강한 캐나다의 환경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태머라 전무는 제도권 금융에서 소외된 사회 구성원들에게 혜택을 주는사회적 금융을 실천할 여지는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나 있다고 강조한다.

태머라 전무는 "몽골, 방글라데시, 볼리비아 등 어느 나라에서나 금융기관이 역할을 살려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며 한국도 이 부분에 좀 더 관심을두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porque@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