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수, 임창열 전 부총리 코멘트를 추가합니다.>>
김영삼정부에서 경제정책을 이끌었던 경제수장들은 22일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한 목소리로 애도했다.
김영삼정부(1993년 2월~1998년 2월)에선 모두 7명의 경제부총리가 배출됐다. 평균 재임 기간은 9개월 남짓으로 긴 편은 아니었다.
김영삼정부 출범과 함께 경제수장을 지낸 이경식 부총리가 개방화 시대를 위한경제 정책에 시동을 걸었고, 1993년 12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정재석 부총리가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을 위한 정책을 이어받았다.
정 부총리가 건강상 이유로 전격 사임하면서 홍재형 부총리가 바통을 넘겨받았다. 홍 부총리는 김영삼정부 경제개혁의 핵심인 금융실명제를 주도했다.
이후 나웅배(1995년 12월∼1996년 8월), 한승수(1996년 8월∼1997년 3월) 부총리가 차례로 경제정책을 이끌면서 OECD 가입이라는 성과를 냈다.
1997년 3월 취임한 강경식 부총리는 우리 경제 상황이 IMF 외환위기로 치달으면서 경질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이후 임창열 통상산업부 장관이 경제부총리로자리를 옮겨 임기 끝까지 IMF 위기 수습에 나섰다.
경제부총리들은 이날 갑작스럽게 전해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우리나라 발전에 큰 획을 그으신 분이 돌아가셨다"며 안타까워했다.
◇ 홍재형 "혁신을 하신 분이 서거해 눈물이 앞선다" 홍재형 전 경제부총리는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눈물이 앞선다"고 애도를표했다.
3선 국회의원 출신인 홍 전 부총리는 1994년 10월부터 1995년 12월까지 김영삼정부에서 경제부총리를 지냈다.
홍 전 부총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혁신을 하신 분이 서거해 눈물이 앞선다"면서 "훌륭한 대통령을 잃었다"고 조의를 표했다.
그는 "대통령으로 모시면서 금융실명제와 부동산거래실명제를 실시했다"면서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를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려는 혁신가적 자질을 가진 훌륭한 대통령이었다"고 회고했다.
홍 전 부총리는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사에서 경제를 살리겠다고 약속했는데 취임 당시 4% 정도였던 경제 성장률을 8∼9%까지 끌어올렸고 실업률도 완전고용으로 볼 수 있는 1.9%까지 낮췄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전 대통령들이 공약만 하고 실천하지 못했던 금융실명제를 도입했고 공직자 재산 등록 등 경제와 사회를 투명하게 하는 등 '클린 거버먼트'(clean government, 깨끗한 정부)를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집권 말기에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를 피할 수 없었지만 이것 하나로 김영삼정부 전체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홍 전 부총리는 지적했다.
그는 "(IMF 구제금융 신청 전에) 외환 쪽이 어려운 것은 아셨지만 그렇게 어려운지는 잘 모르셨던 것 같았다"면서 "그렇게 어려웠다는 것을 아셨다면 금융실명제를 했던 과단성으로 (어려움을) 충분히 막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 전 부총리는 "김 전 대통령을 제대로 조명해서 민주화와 경제 살리기, 경제투명화 등에 대한 진가를 후세들이 알게 하고 훌륭한 모범 중 하나로 삼았으면 하는바람이 있다"고 밝혔다.
◇ 한승수 "일 처리 단호해도 인간적으로 따뜻한 분" 1996년 8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경제부총리를 지낸 한승수 전 부총리는 김 전대통령에 대해 "민주화 추진과 투명한 각종 제도를 도입하는 등 국무처리에는 단호한 면이 적지 않았으나 인간적으로 항상 따뜻하신 분이었다"며 "수십 년 동안 아버님께 아침 안부전화를 매일 드리는 대단한 효자이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한 전 부총리는 경제부총리에 오르기 전에도 주미대사, 대통령비서실장으로도김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그는 "상도동계도, 민주계도, 가신 출신도 아닌 저를 비서실장으로 발탁하셨을때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며 "당시 대통령께서는 새 내각을 임명하고 세계화를 추진하시면서 국제문제에서 경력을 쌓은 저를 옆에 두고 의논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떠올렸다.
한 전 부총리는 "김 대통령 재임 중에 우리나라 경제가 많이 개방되었고 OECD에가입한 것도 치적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OECD 가입으로 금융위기가 왔다고 하는 의견들도 있으나 당시 OECD와 관련 없는 태국, 말레이시아, 대만 등 동아시아 전역으로 금융위기가 전파됐던 점을보면 외환위기는 OECD 가입보다는 국내의 금융경제구조적 요인이 더 컸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영삼 대통령께서는 국가 전반의 정치, 군, 경제분야의 개혁과 투명성확보가 경제개혁과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확신했으나 누적되어 온 경제구조문제를 재임 중에 모두 해결하지는 못하셨다"고 아쉬워했다.
◇ 임창열 "모든 걸 믿고 맡겨주시는 분" 통상산업부 장관으로 있다가 외환위기 때 경제부총리를 맡은 임창열 전 부총리는 "사람을 한번 쓰면 모든 걸 믿고 맡겨주시는 분"이라며 "내가 경제부총리 했을때 경제수석, 후임 장관도 추천하라고 하셨고, 실제로 경제수석을 추천하자 대통령께서 모르는 사람이었는데도 날 믿고 쓰셨다"고 말했다.
그는 "김 대통령이 외환위기를 초래했다고 하지만 수습한 것도 김 대통령"이라며 "1997년 12월 39억 달러까지 떨어진 외환 보유액은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할 때 185억 달러까지 늘어 기본 위기는 다 수습된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임 전 부총리는 "특히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정치적으로 평생 경쟁했던 DJ와 협력해 비상경제대책위원회를 꾸려 수습을 위해 머리를 맞댄 것도 리더십이라고 볼 수있다"며 "여러 개혁을 추진하셨는데도 IMF 위기만 부각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임 전 부총리는 "가까이 모시고 일하던 대통령이 돌아가셔서 마음이 아프다"면서 "그분은 우리나라 발전사에 큰 획을 그으셨다"고 말했다.
leesang@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김영삼정부에서 경제정책을 이끌었던 경제수장들은 22일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한 목소리로 애도했다.
김영삼정부(1993년 2월~1998년 2월)에선 모두 7명의 경제부총리가 배출됐다. 평균 재임 기간은 9개월 남짓으로 긴 편은 아니었다.
김영삼정부 출범과 함께 경제수장을 지낸 이경식 부총리가 개방화 시대를 위한경제 정책에 시동을 걸었고, 1993년 12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정재석 부총리가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을 위한 정책을 이어받았다.
정 부총리가 건강상 이유로 전격 사임하면서 홍재형 부총리가 바통을 넘겨받았다. 홍 부총리는 김영삼정부 경제개혁의 핵심인 금융실명제를 주도했다.
이후 나웅배(1995년 12월∼1996년 8월), 한승수(1996년 8월∼1997년 3월) 부총리가 차례로 경제정책을 이끌면서 OECD 가입이라는 성과를 냈다.
1997년 3월 취임한 강경식 부총리는 우리 경제 상황이 IMF 외환위기로 치달으면서 경질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이후 임창열 통상산업부 장관이 경제부총리로자리를 옮겨 임기 끝까지 IMF 위기 수습에 나섰다.
경제부총리들은 이날 갑작스럽게 전해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우리나라 발전에 큰 획을 그으신 분이 돌아가셨다"며 안타까워했다.
◇ 홍재형 "혁신을 하신 분이 서거해 눈물이 앞선다" 홍재형 전 경제부총리는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눈물이 앞선다"고 애도를표했다.
3선 국회의원 출신인 홍 전 부총리는 1994년 10월부터 1995년 12월까지 김영삼정부에서 경제부총리를 지냈다.
홍 전 부총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혁신을 하신 분이 서거해 눈물이 앞선다"면서 "훌륭한 대통령을 잃었다"고 조의를 표했다.
그는 "대통령으로 모시면서 금융실명제와 부동산거래실명제를 실시했다"면서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를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려는 혁신가적 자질을 가진 훌륭한 대통령이었다"고 회고했다.
홍 전 부총리는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사에서 경제를 살리겠다고 약속했는데 취임 당시 4% 정도였던 경제 성장률을 8∼9%까지 끌어올렸고 실업률도 완전고용으로 볼 수 있는 1.9%까지 낮췄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전 대통령들이 공약만 하고 실천하지 못했던 금융실명제를 도입했고 공직자 재산 등록 등 경제와 사회를 투명하게 하는 등 '클린 거버먼트'(clean government, 깨끗한 정부)를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집권 말기에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를 피할 수 없었지만 이것 하나로 김영삼정부 전체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홍 전 부총리는 지적했다.
그는 "(IMF 구제금융 신청 전에) 외환 쪽이 어려운 것은 아셨지만 그렇게 어려운지는 잘 모르셨던 것 같았다"면서 "그렇게 어려웠다는 것을 아셨다면 금융실명제를 했던 과단성으로 (어려움을) 충분히 막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 전 부총리는 "김 전 대통령을 제대로 조명해서 민주화와 경제 살리기, 경제투명화 등에 대한 진가를 후세들이 알게 하고 훌륭한 모범 중 하나로 삼았으면 하는바람이 있다"고 밝혔다.
◇ 한승수 "일 처리 단호해도 인간적으로 따뜻한 분" 1996년 8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경제부총리를 지낸 한승수 전 부총리는 김 전대통령에 대해 "민주화 추진과 투명한 각종 제도를 도입하는 등 국무처리에는 단호한 면이 적지 않았으나 인간적으로 항상 따뜻하신 분이었다"며 "수십 년 동안 아버님께 아침 안부전화를 매일 드리는 대단한 효자이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한 전 부총리는 경제부총리에 오르기 전에도 주미대사, 대통령비서실장으로도김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그는 "상도동계도, 민주계도, 가신 출신도 아닌 저를 비서실장으로 발탁하셨을때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며 "당시 대통령께서는 새 내각을 임명하고 세계화를 추진하시면서 국제문제에서 경력을 쌓은 저를 옆에 두고 의논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떠올렸다.
한 전 부총리는 "김 대통령 재임 중에 우리나라 경제가 많이 개방되었고 OECD에가입한 것도 치적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OECD 가입으로 금융위기가 왔다고 하는 의견들도 있으나 당시 OECD와 관련 없는 태국, 말레이시아, 대만 등 동아시아 전역으로 금융위기가 전파됐던 점을보면 외환위기는 OECD 가입보다는 국내의 금융경제구조적 요인이 더 컸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영삼 대통령께서는 국가 전반의 정치, 군, 경제분야의 개혁과 투명성확보가 경제개혁과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확신했으나 누적되어 온 경제구조문제를 재임 중에 모두 해결하지는 못하셨다"고 아쉬워했다.
◇ 임창열 "모든 걸 믿고 맡겨주시는 분" 통상산업부 장관으로 있다가 외환위기 때 경제부총리를 맡은 임창열 전 부총리는 "사람을 한번 쓰면 모든 걸 믿고 맡겨주시는 분"이라며 "내가 경제부총리 했을때 경제수석, 후임 장관도 추천하라고 하셨고, 실제로 경제수석을 추천하자 대통령께서 모르는 사람이었는데도 날 믿고 쓰셨다"고 말했다.
그는 "김 대통령이 외환위기를 초래했다고 하지만 수습한 것도 김 대통령"이라며 "1997년 12월 39억 달러까지 떨어진 외환 보유액은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할 때 185억 달러까지 늘어 기본 위기는 다 수습된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임 전 부총리는 "특히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정치적으로 평생 경쟁했던 DJ와 협력해 비상경제대책위원회를 꾸려 수습을 위해 머리를 맞댄 것도 리더십이라고 볼 수있다"며 "여러 개혁을 추진하셨는데도 IMF 위기만 부각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임 전 부총리는 "가까이 모시고 일하던 대통령이 돌아가셔서 마음이 아프다"면서 "그분은 우리나라 발전사에 큰 획을 그으셨다"고 말했다.
leesang@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