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20년 이미 진행…남의 나라 얘기로 치부하면 안돼""급성 위기 가능성 낮지만 만성 위기로 가는 게 문제""몇몇 기업 인수·합병 차원 아닌 산업지도를 바꿔야""구조개혁은 위기 때 할 수 있는 것…지금이 적기"
이필상(68) 서울대 경제학부 겸임교수(전 고려대 총장)는 지난 한 해 동안 정부가 추진한 경제정책을 두고 "고장난 펌프에 마중물붓기였다"고 비유했다.
경기회복세를 끌어내기 위해 정부와 통화당국이 1년여 동안 많은 부양책을 쏟아냈지만 경제의 추동능력이 망가진 점을 도외시 하다보니 펌프에 물이 잠시 차오르는듯하다가 금새 꺼졌다는 진단이다.
이 교수는 '지도에 없는 길'을 가려 하면 결국 길을 잃을 뿐이라며 난국을 헤쳐가려면 아무리 가시덤불 길이라 하더라도 정도(正道)를 걷는 수밖에 없다고 제언했다.
정도를 가는 것은 고장난 펌프부터 고치는 일, 다시 말해 진정성 있는 구조개혁이라고 강조했다.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체제를 만들고, 금융이 성장성 있는 기업에 돈을 제대로공급하고, 중소·벤처기업을 필두로 신산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런 구조개혁을 이루지 못한다면 이미 '만성위기'의 초입에 들어선 우리 경제가 제자리걸음은커녕 도태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새 출발을 준비하는 '유일호 경제팀'에는 성장률 목표 숫자에 연연하지 말라고조언했다.
그러면서 현재 우리 경제가 처한 위기 상황을 솔직히 인정하고 국민에게 이해를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경영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2006년 고려대 총장을 지냈다.
2013년 고려대에서 정년퇴임한 뒤 서울대 경제학부 겸임교수로 자리를 옮겨 '최고참 노교수' 신분으로 학부생을 상대로 화폐금융론 등을 강의하고 있다.
지난 24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진행한 이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을 문답식으로 정리했다.
-- 우리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전철을 밟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 동의한다. 경제를 끌어온 주력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주력산업을 영위하는대기업이 무너지니까 하청 중소기업도 함께 무너진다. 산업 전체가 붕괴 위기다. 잠재성장률이 떨어지고, 고용창출이 안 되고, 기업부채는 늘고 있다. 경제가 주저앉는장기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 대외 여건도 우호적이지 않은데.
▲ 그렇다. 미국은 금리를 올린다지만, 중국·일본·유로존은 돈을 풀겠다고 한다. 통화전쟁에 돌입한 것이다. 무방비로 있으면 수출시장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저유가로 자원 신흥국들이 위기에 접어들면서 수출시장이 사라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미 금리 인상으로 금융시장도 불안한 상황이다.
-- 대내 위험요인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 대내 악재가 많다. 가계가 빚더미에 올랐는데 소비 수요가 생길 리 없다. 저출산 고령화로 잠재성장률도 하락하고 있다. 기업 이 부실화하면서 고용창출 능력이계속 떨어졌다. 청년들이 아예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 가계에 부채는 많고 청년은고용이 안 된다. 잃어버린 20년은 이미 진행하고 있다. 남의 나라 얘기로 치부하면안 된다.
-- 그래도 최근 무디스가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올렸는데.
▲ 국가신용등급이란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진 빚을 잘 갚을 수 있느냐를 평가한 것이다. 그것도 과거자료를 갖고서…. 외환보유액은 3천600억 달러가 넘고 경상수지 흑자도 크게 늘어난 점을 좋게 평가받았다. 하지만 이는 수입이 더 줄어 발생하는 불황형 흑자다. 당장 빚은 갚을지 몰라도 경제는 건강하지 않은 것이다.
-- 신용등급 상승은 그래도 호재 아닌가.
▲ 사실 미 금리 인상 이후 외자유출을 막는다는 점에서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를 활용 못하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오히려 방심하다가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 과거 1997년 외환위기 직전 국가신용등급이 연이어 올랐던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구조개혁을 통해 새로운 산업구조로 바꿔 외국자본이 유턴해 들어오게 해야 한다. 지금 세계 자본은 투자처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다. 이처럼 좋은 기회가 어딨겠나.
-- 과거와 같은 경제 위기 가능성은 없다고 보나.
▲ 과거와 같은 단기 급성 위기 발생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지금은 장기적이고만성적인 위기로 간다는 점이 문제다. 만성적으로 경제가 무너지고 가계와 기업이무너지고 실업자가 쏟아지는 위기다. 급성 위기는 외국 돈 끌어와 투입하면 살려낼수도 있다. 만성 위기는 구조개혁만이 답이다. 지금 가장 불안한 징조는 주력산업이무너진다는 점이다. 만성 위기는 회복이 더 어렵다.
-- 정책당국의 경기 인식은 어떠한가.
▲ 정부는 만성 위기에 진입했다고 인정을 안 한다. 물론 정치적으로 장기침체에 진입했다고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성장률이 2%든, 3%든, 4%든 국민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경제가 침몰하고 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데서부터 경제정책을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 대통령까지 나서 경제위기임을 강조하고 있지 않나.
▲ 그 취지는 법안을 빨리 통과시키라는 것이다. 국민에게 얼마나 진정성 있게다가갈지 모르겠다.
-- 최경환 경제팀도 내수회복을 위해 강한 부양책을 펼쳤는데.
▲ 최경환 경제팀이 지난 1년여간 우리 경제에 악수를 뒀다고 본다. 위기의 실체를 인정하고 구조개혁으로 다시 한 번 일어서자고 제대로 정책을 폈어야 했다. 그런데 돈 풀고, 부동산 경기만 살리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결과는 가계부채 증가밖에 없다.
-- 주택시장 부양책이 불가피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 몸통이 꼬리를 흔드는 것이지, 꼬리가 몸통을 흔들지는 않는다. 경기가 살아나야 부동산이 사는 것이지, 부동산만 먼저 살아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풀리지는않는다는 얘기다. 최 경제팀이 경기에 마중물 역할을 한다고 부양책을 폈다. 취지는맞다. 그런데 마중물을 붓는 펌프가 고장 난 것을 무시했다. 물을 부으니 조금은 차올랐다. 하지만 그게 끝이다. 펌프가 고장 났다는 것은 기업이 부실해 투자가 안 되고, 가계 빚이 많아 소비가 안 된다는 의미다.
-- 단기부양책을 펴선 안 됐다는 것인가.
▲ 단기부양책도 필요하지만 전제가 필요하다. 중장기 플랜과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돈을 푸는 게 의미가 있다. 그런 정책조화 없이 돈만 푸니까 부작용만 남았다.
-- 정부도 이미 4대(공공·노동·금융·교육)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 않나.
▲ 내용이 미흡하다. 그러니 추진도 안 된다. 공공개혁에서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가. 시장경제가 힘을 얻을 수 있는 공공서비스 체제를 갖추는 게 진정한 공공개혁이다. 정부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관료주의와 규제를 혁파하는 것이다. 공무원 연금을 일부 개혁했고, 공공기관 임금피크제도 도입했다는 데 이는 지엽적인 부분이다.
-- 다른 4대 개혁 노력을 어떻게 평가하나.
▲ 노동개혁이 논란이다. 노측 입장에서 보면 대기업 곳간은 찼는데 왜 우리에게만 덤터기를 씌우느냐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노측 의 양보를 요구하기 전에 먼저재벌개혁, 공공개혁, 관료개혁부터 했으면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금융개혁도 지엽적인 부분에 치우쳤다. 경제발전의 과실을 국민과 투자자, 소비자에게 돌려주는과정에서 핵심역할을 하는 게 금융시스템이다. 지금은 은행이 독과점 체제에서 주택담보대출로 이자놀이 하는 것 이상의 역할이 없다. 금융개혁 내용은 많은데 근본적인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교육개혁도 대학 구조조정 얘기만 있지 4년제 대학 안 나와도 소질과 특기에 따라 자기 분야에서 능력을 펼칠 수 있게 하는 근본적인 개혁안이 없다.
-- 그렇다면 어떤 구조개혁이 필요한가.
▲ 대·중소기업 간 상생구조를 갖춰야 한다. 그나마 대기업이 여유가 있으니납품가 후려치고 기술을 빼앗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금융시스템도 바뀌어야 한다. 소비자금융 위주에서 벗어나 기업금융을 해야 한다. 기업의 가치를 종합적으로평가해 성장력 있는 기업은 어려워도 지원해야 한다. 산업구조도 개편해야 한다. 주력산업이 줄줄이 무너지고 있다. 단순히 몇몇 기업 인수·합병시키자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산업지도를 바꿔야 한다. 새로운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 우후죽순으로 창업하고 발전해 나가는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연구개발(R&D)에 젊은 우수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정부가 이런 중장기 플랜을 내놓아야 한다.
-- 구조개혁을 민간에 맡기면 안 되나.
▲ 민간에만 맡기면 안 된다. 지금 우리 경제구조는 경제력 집중이 굉장히 심하다. 놔두면 독과점하면서 중소기업과 노동자에 피해를 주는 구조로만 갈 것이다. 주력산업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것을 보면 대기업도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구조개혁만큼은 정부의 역할이다.
-- 민관기구인 중장기전략위원회가 중장기 경제발전전략을 제시하면서 민간이주도토록 하고 정부 역할을 '조력자'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했는데.
▲ 책임회피다. 정부의 역할이 조력자에 그쳐야 한다는 것은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때 얘기다. 지금은 작동을 안 한다. 시장 기능을 살릴 때까지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 새 경제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 중요한 시기인데 유일호 후보자가 전임 경제팀의 기조를 이어가겠다고 해서실망했다. 먼저 경제진단을 제대로 하고 현 상황을 정직하게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전임 경제팀의 기조는 잊어야 한다. 정도를 걸으면서 구조개혁을 제대로 추진해야한다. 수출 전략은 다시 짜야 한다. 대외 여건 변화에 제대로 대응해야 한다. 미 금리인상으로 금융시장이 불안하지 않도록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 가계부채, 청년실업 등 국민이 가장 피부에 느끼는 문제를 풀 대안을 내놓아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 청사진을 제시하고 국민이 다시 일어설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야 한다. 국민 신뢰를 바탕으로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논리와 경제논리를 분리해야 한다. 경제장관으로 '스펙 관리'를 했다는 얘기 안 나오게 해야 한다. 대통령도 힘을 실어줘야 한다. 신임 부총리는 우리 경제가 백척간두에 있다고 보고 몸을던져서라도 경제를 살리겠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구조개혁은 사실 위기 때 할 수있는 거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위기를 이겨낸 기업만이 세계시장을 차지하듯이 국가도 마찬가지다.
pan@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이필상(68) 서울대 경제학부 겸임교수(전 고려대 총장)는 지난 한 해 동안 정부가 추진한 경제정책을 두고 "고장난 펌프에 마중물붓기였다"고 비유했다.
경기회복세를 끌어내기 위해 정부와 통화당국이 1년여 동안 많은 부양책을 쏟아냈지만 경제의 추동능력이 망가진 점을 도외시 하다보니 펌프에 물이 잠시 차오르는듯하다가 금새 꺼졌다는 진단이다.
이 교수는 '지도에 없는 길'을 가려 하면 결국 길을 잃을 뿐이라며 난국을 헤쳐가려면 아무리 가시덤불 길이라 하더라도 정도(正道)를 걷는 수밖에 없다고 제언했다.
정도를 가는 것은 고장난 펌프부터 고치는 일, 다시 말해 진정성 있는 구조개혁이라고 강조했다.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체제를 만들고, 금융이 성장성 있는 기업에 돈을 제대로공급하고, 중소·벤처기업을 필두로 신산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런 구조개혁을 이루지 못한다면 이미 '만성위기'의 초입에 들어선 우리 경제가 제자리걸음은커녕 도태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새 출발을 준비하는 '유일호 경제팀'에는 성장률 목표 숫자에 연연하지 말라고조언했다.
그러면서 현재 우리 경제가 처한 위기 상황을 솔직히 인정하고 국민에게 이해를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경영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2006년 고려대 총장을 지냈다.
2013년 고려대에서 정년퇴임한 뒤 서울대 경제학부 겸임교수로 자리를 옮겨 '최고참 노교수' 신분으로 학부생을 상대로 화폐금융론 등을 강의하고 있다.
지난 24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진행한 이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을 문답식으로 정리했다.
-- 우리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전철을 밟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 동의한다. 경제를 끌어온 주력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주력산업을 영위하는대기업이 무너지니까 하청 중소기업도 함께 무너진다. 산업 전체가 붕괴 위기다. 잠재성장률이 떨어지고, 고용창출이 안 되고, 기업부채는 늘고 있다. 경제가 주저앉는장기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 대외 여건도 우호적이지 않은데.
▲ 그렇다. 미국은 금리를 올린다지만, 중국·일본·유로존은 돈을 풀겠다고 한다. 통화전쟁에 돌입한 것이다. 무방비로 있으면 수출시장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저유가로 자원 신흥국들이 위기에 접어들면서 수출시장이 사라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미 금리 인상으로 금융시장도 불안한 상황이다.
-- 대내 위험요인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 대내 악재가 많다. 가계가 빚더미에 올랐는데 소비 수요가 생길 리 없다. 저출산 고령화로 잠재성장률도 하락하고 있다. 기업 이 부실화하면서 고용창출 능력이계속 떨어졌다. 청년들이 아예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 가계에 부채는 많고 청년은고용이 안 된다. 잃어버린 20년은 이미 진행하고 있다. 남의 나라 얘기로 치부하면안 된다.
-- 그래도 최근 무디스가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올렸는데.
▲ 국가신용등급이란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진 빚을 잘 갚을 수 있느냐를 평가한 것이다. 그것도 과거자료를 갖고서…. 외환보유액은 3천600억 달러가 넘고 경상수지 흑자도 크게 늘어난 점을 좋게 평가받았다. 하지만 이는 수입이 더 줄어 발생하는 불황형 흑자다. 당장 빚은 갚을지 몰라도 경제는 건강하지 않은 것이다.
-- 신용등급 상승은 그래도 호재 아닌가.
▲ 사실 미 금리 인상 이후 외자유출을 막는다는 점에서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를 활용 못하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오히려 방심하다가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 과거 1997년 외환위기 직전 국가신용등급이 연이어 올랐던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구조개혁을 통해 새로운 산업구조로 바꿔 외국자본이 유턴해 들어오게 해야 한다. 지금 세계 자본은 투자처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다. 이처럼 좋은 기회가 어딨겠나.
-- 과거와 같은 경제 위기 가능성은 없다고 보나.
▲ 과거와 같은 단기 급성 위기 발생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지금은 장기적이고만성적인 위기로 간다는 점이 문제다. 만성적으로 경제가 무너지고 가계와 기업이무너지고 실업자가 쏟아지는 위기다. 급성 위기는 외국 돈 끌어와 투입하면 살려낼수도 있다. 만성 위기는 구조개혁만이 답이다. 지금 가장 불안한 징조는 주력산업이무너진다는 점이다. 만성 위기는 회복이 더 어렵다.
-- 정책당국의 경기 인식은 어떠한가.
▲ 정부는 만성 위기에 진입했다고 인정을 안 한다. 물론 정치적으로 장기침체에 진입했다고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성장률이 2%든, 3%든, 4%든 국민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경제가 침몰하고 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데서부터 경제정책을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 대통령까지 나서 경제위기임을 강조하고 있지 않나.
▲ 그 취지는 법안을 빨리 통과시키라는 것이다. 국민에게 얼마나 진정성 있게다가갈지 모르겠다.
-- 최경환 경제팀도 내수회복을 위해 강한 부양책을 펼쳤는데.
▲ 최경환 경제팀이 지난 1년여간 우리 경제에 악수를 뒀다고 본다. 위기의 실체를 인정하고 구조개혁으로 다시 한 번 일어서자고 제대로 정책을 폈어야 했다. 그런데 돈 풀고, 부동산 경기만 살리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결과는 가계부채 증가밖에 없다.
-- 주택시장 부양책이 불가피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 몸통이 꼬리를 흔드는 것이지, 꼬리가 몸통을 흔들지는 않는다. 경기가 살아나야 부동산이 사는 것이지, 부동산만 먼저 살아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풀리지는않는다는 얘기다. 최 경제팀이 경기에 마중물 역할을 한다고 부양책을 폈다. 취지는맞다. 그런데 마중물을 붓는 펌프가 고장 난 것을 무시했다. 물을 부으니 조금은 차올랐다. 하지만 그게 끝이다. 펌프가 고장 났다는 것은 기업이 부실해 투자가 안 되고, 가계 빚이 많아 소비가 안 된다는 의미다.
-- 단기부양책을 펴선 안 됐다는 것인가.
▲ 단기부양책도 필요하지만 전제가 필요하다. 중장기 플랜과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돈을 푸는 게 의미가 있다. 그런 정책조화 없이 돈만 푸니까 부작용만 남았다.
-- 정부도 이미 4대(공공·노동·금융·교육)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 않나.
▲ 내용이 미흡하다. 그러니 추진도 안 된다. 공공개혁에서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가. 시장경제가 힘을 얻을 수 있는 공공서비스 체제를 갖추는 게 진정한 공공개혁이다. 정부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관료주의와 규제를 혁파하는 것이다. 공무원 연금을 일부 개혁했고, 공공기관 임금피크제도 도입했다는 데 이는 지엽적인 부분이다.
-- 다른 4대 개혁 노력을 어떻게 평가하나.
▲ 노동개혁이 논란이다. 노측 입장에서 보면 대기업 곳간은 찼는데 왜 우리에게만 덤터기를 씌우느냐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노측 의 양보를 요구하기 전에 먼저재벌개혁, 공공개혁, 관료개혁부터 했으면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금융개혁도 지엽적인 부분에 치우쳤다. 경제발전의 과실을 국민과 투자자, 소비자에게 돌려주는과정에서 핵심역할을 하는 게 금융시스템이다. 지금은 은행이 독과점 체제에서 주택담보대출로 이자놀이 하는 것 이상의 역할이 없다. 금융개혁 내용은 많은데 근본적인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교육개혁도 대학 구조조정 얘기만 있지 4년제 대학 안 나와도 소질과 특기에 따라 자기 분야에서 능력을 펼칠 수 있게 하는 근본적인 개혁안이 없다.
-- 그렇다면 어떤 구조개혁이 필요한가.
▲ 대·중소기업 간 상생구조를 갖춰야 한다. 그나마 대기업이 여유가 있으니납품가 후려치고 기술을 빼앗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금융시스템도 바뀌어야 한다. 소비자금융 위주에서 벗어나 기업금융을 해야 한다. 기업의 가치를 종합적으로평가해 성장력 있는 기업은 어려워도 지원해야 한다. 산업구조도 개편해야 한다. 주력산업이 줄줄이 무너지고 있다. 단순히 몇몇 기업 인수·합병시키자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산업지도를 바꿔야 한다. 새로운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 우후죽순으로 창업하고 발전해 나가는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연구개발(R&D)에 젊은 우수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정부가 이런 중장기 플랜을 내놓아야 한다.
-- 구조개혁을 민간에 맡기면 안 되나.
▲ 민간에만 맡기면 안 된다. 지금 우리 경제구조는 경제력 집중이 굉장히 심하다. 놔두면 독과점하면서 중소기업과 노동자에 피해를 주는 구조로만 갈 것이다. 주력산업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것을 보면 대기업도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구조개혁만큼은 정부의 역할이다.
-- 민관기구인 중장기전략위원회가 중장기 경제발전전략을 제시하면서 민간이주도토록 하고 정부 역할을 '조력자'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했는데.
▲ 책임회피다. 정부의 역할이 조력자에 그쳐야 한다는 것은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때 얘기다. 지금은 작동을 안 한다. 시장 기능을 살릴 때까지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 새 경제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 중요한 시기인데 유일호 후보자가 전임 경제팀의 기조를 이어가겠다고 해서실망했다. 먼저 경제진단을 제대로 하고 현 상황을 정직하게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전임 경제팀의 기조는 잊어야 한다. 정도를 걸으면서 구조개혁을 제대로 추진해야한다. 수출 전략은 다시 짜야 한다. 대외 여건 변화에 제대로 대응해야 한다. 미 금리인상으로 금융시장이 불안하지 않도록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 가계부채, 청년실업 등 국민이 가장 피부에 느끼는 문제를 풀 대안을 내놓아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 청사진을 제시하고 국민이 다시 일어설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야 한다. 국민 신뢰를 바탕으로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논리와 경제논리를 분리해야 한다. 경제장관으로 '스펙 관리'를 했다는 얘기 안 나오게 해야 한다. 대통령도 힘을 실어줘야 한다. 신임 부총리는 우리 경제가 백척간두에 있다고 보고 몸을던져서라도 경제를 살리겠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구조개혁은 사실 위기 때 할 수있는 거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위기를 이겨낸 기업만이 세계시장을 차지하듯이 국가도 마찬가지다.
pan@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