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핵심과제…농축산물 유통구조 개선 방안은>

입력 2013-03-17 06:01  

5단계 유통비용 평균 41%…농가가 쥐는 돈은 69%전문가 "무조건 단계 축소보다 농가 조직화해야"

새 정부가 국정 최우선과제의 하나로 농산물 유통구조를 개선하겠다고 천명하면서 전근대적이었던 한국 유통 시스템의 혁신이 본격화될지 주목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3일 서울 양재동의 농협 하나로클럽을 찾아 농산물 유통과정이 복잡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유통구조를 반드시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유통구조 개선 방안으로 농협을 중심으로 한 유통단계 축소와 직거래 확대 등을 언급했다. 관련 정책은 5월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알려졌다.

비효율적이고 왜곡된 농축산물 유통 구조 문제는 이전 정권들도 해결하지 못했던 난제였던 만큼 새 정부가 내놓을 정책내용, 실천의지, 이해관계 조율 등이 얼마나 실효적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농축산물 어떻게 유통되나 = 농축산물은 보통 5단계를 거쳐 시중에 유통된다.

농산물의 경우 생산자→산지 유통인→도매시장→중간도매상→소매상 등 5단계로이뤄진다.

축산물 역시 생산자→수집 반출상(우시장·농협)→도축장→도매상→소매상 등 5단계를 거친다.

이처럼 유통 단계가 많다보니 가격에 거품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지적한 문제도 바로 과다한 유통비용이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발표한 2011년 주요 농산물 유통실태 조사결과에따르면 농축산물 소비자 가격의 41.8%가 유통비용이었다. 유통비용 비중은 최근 10년간 40∼45%를 꾸준히 오갔다.

농축산물의 평균 유통비용을 단계별로 보면 출하단계 10%, 도매단계 8.6%, 소매단계 23.2%로 나타났다.

품목별로는 무·배추·상추 등 엽근채류는 유통비용이 69.7%로 가장 높았다.

특히 배추와 무의 유통비용은 엄청나다.

가을무와 가을배추의 유통비용은 각각 80%, 77.1%에 달한다. 무와 배추를 1천원에 판매할 경우 농가에는 겨우 200원, 229원만 돌아가는 셈이다.

이밖에도 소매가에서 차지하는 유통비용 비중은 당근 66.6%, 고구마 58.8%, 봄감자 67.5%, 양파 71.9%, 대파 50.8%, 사과 43.2%, 배 47.4%, 감귤 56.1%, 단감 48.

1%, 쇠고기 42.2%, 돼지고기 38.9%, 닭고기 52.1% 등으로 나타났다.

작황이 부진해 값이 올랐거나 부피가 크고 저장성이 떨어지는 제품일수록 유통비용 비중이 높은 편이다.

무엇보다 주목할만한 조사결과는 농민 등 생산자단체가 대형유통업체와 직거래할 경우 유통비용은 48.2%로 도매시장을 경유할 때보다 6.6% 포인트 낮아져 소비자도 그만큼 싸게 구입할 수 있게 된다. 농가가 얻는 소득은 12.9% 더 많아진다.

◇ 직매입 확대…농가 현실은 도매상 납품 불가피 = 유통비용 가운데 운송비,포장재비, 선별비, 영업경비 등은 유류비.인건비 인상, 포장의 소량.고급화 등으로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중간업자들이 취하는 이윤은 소비자의 알뜰 비교구매 추세와 유통업체의세일행사 증가 등으로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대형마트나 기업형슈퍼마켓(SSM)의 경우 대부분 국내산 신선식품에 대해서는 직매입에 주력하고 있다.

이미 대형 유통업계는 유통단계를 줄여 농축산물 가격을 낮추는데 힘쓴지 오래다. 이마트[139480]는 지난해 1천억원을 투자해 저장·포장·가공·물류 기능을 갖춘 '후레쉬센터'를 세우기도 했다.

반면 영세한 전통시장이나 중소 슈퍼마켓의 경우 그러한 여력이 없어 기존의 유통구조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이들 입장에서는 산지 직거래는 언감생심으로, 도매시장 경매에 참여하거나 중간 도매상에 제품을 납품을 받는쪽이 효율적이다.

농가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영세하거나 노령한 농가가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들이 직접 도매시장이나소매상과 거래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농산물의 유통단계를 살펴보면 산지 유통인이라는 단계가 눈에 띈다.

산지 수집상이라고도 불리는 산지 유통인은 산지와 도매상을 이어준다. 보통 농가에서 '밭떼기'를 한다. 산지 수집상만 두세단계를 거치는 품목도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이들을 '필요악'으로 규정한다.

유통 단계가 더 늘어나게 만들고 폭리를 취하는 경우도 있어 가격이 올라가게하는 역기능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량 매입을 통해 농가의 리스크를 줄여주는 순기능도 한다.

농산물은 그해의 작황이나 날씨 여하에 따라 가격과 수급이 불안정하다. 대부분영세한 농가 입장에서는 직접 소매상에 공급하는 것보다 산지 유통인에 선금을 받고유통을 맡기는 편이 안전하다.

산지 유통인 단계가 없어지면 가격 리스크를 고스란히 농가가 떠안아야 해 농가부담이 커질수 있다.

◇ 무조건 단계 감축이 능사 아냐…산지 조직화가 답 = 그래서 유통 단계를 무조건 줄이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모든 생산자가 소비자와 직접 거래할 경우 사회적 비효율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대형유통업체는 각 제품군 별로 담당자를 두고 있다. '사과 바이어', '배추 바이어' 같은 식인데 이들은 담당 작물의 산지 상황을 꿰뚫고 있는 전문가들이다.

이처럼 전문성이 없는 중소 소매상에 산지 직거래를 강요할 경우 매입 실패 등비효율로 인한 부가 비용이 발생해 원가에 반영될 확률이 크다.

유통비용을 줄인 대신 부가 비용이 늘어 결국 소매가는 내려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해결책으로 전문가들은 산지 농가의 조직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권승구 동국대 식품산업관리학과 교수는 "유통단계만 줄인다고 가격이 내려갈것이라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며 "근본 해결책은 직거래가 아니라 농협과 민간 영농조합 등 농가를 서구처럼 조직화해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없어져야할 단계는 조정을 해야하겠지만 왜 각 단계가 생겼는지를 생각해야 한다"며 "무조건 단계만 줄이는 쪽에 집중하면 과거처럼 실패한 정책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산지 농가가 조직화하면 체계적으로 시장 수요에 대응할 수 있다.

공동출하와 자체 포장·물류 시설을 만들고 대형 직거래 장터나 생협을 통해 소매상에 직접 공급이 가능해진다. 자연히 유통 단계는 줄게된다.

도매물류상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세조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도매시장 경매제가 가장 큰 문제"라며 "개별적으로 사고팔고 하기 때문에 통합적인 수요·공급 관리가 안된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소비자와 산지를 연결해주는 대형 물류도매상을 키워야 한다"며 "경매인들은 기존 체제를 계속 갖고가려 할텐데 이를 해결할 혁신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도매물류상이란 소매상에 전문적으로 농산물을 대량 공급하는 업체를 말한다.

그는 대형마트의 산지 직거래나 자체 물류센터 건립 등 농축산물 유통 형태를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오 교수는 "전문 도매물류상의 기능까지 대형마트가 다 하고 있다"며 "전문적인유통 체계가 없는 상황에서 1990년 갑작스럽게 농산물 시장이 개방돼 도매물류상이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형마트의 기능이 너무 커진다고 견제할 것이 아니라 대신 중소 상인을대형 도매물류상으로 키울 생각을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유통구조가 줄면 수많은 중간 상인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장흥섭 경북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간 상인들은 생각보다 수가 적고 규모가 매우 크다"며 "농가보다 더 많은 이득을 챙기는 이들까지 정부가 보호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농축산물 유통 문제를 바라볼 것을 촉구했다.

장 교수는 "5년, 10년 후를 바라보고 유통 경로와 구조를 전면 다시 조사해 품목별로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며 "물가 잡자고 말만 앞세워우면 또 수포로 돌아갈것"이라고 역설했다.

권 교수는 "그동안 정부가 내실있는 정책을 펴지 못했던게 사실"이라며 "실효성이 없을 것이 뻔한데도 관련 부처가 정책을 무리하게 내놓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경고했다.

대형마트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영업 규제다 품목 제한이다 하면서 규제의 대상으로만 대형마트를 바라봤던게 사실"이라며 "농축산물 유통구조 혁신 노하우 공유등 선순환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전했다.

ses@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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