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만에 재현된 '황금실'분쟁…코오롱 美텃새 넘나>

입력 2014-04-06 10:36  

美 언론도 코오롱-듀폰 소송 집중조명

미국 화학회사 듀폰과 코오롱그룹의 소송은 글로벌 무대로 발돋움하는 국내 후발주자가 넘어야 할 선진국의 '텃새'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특히 최근 삼성전자[005930]-애플 분쟁을 비롯해 우리나라 기업들을 위협하는특허분쟁이 급증하는 가운데 전해진 드문 '승전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1심에서 코오롱[002020]에 부과된 9억1천990만달러(약 1조120억원)의 손해배상금을 무효화한 미국 제4순회 연방항소법원의 3일(현지시간) 판결은, 1심 재판이 배심원 평결을 왜곡시킬 만큼 편파적으로 진행됐고 담당판사의 심각한 재량권 남용이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부가가치가 커 '황금실'로 불리는 화학섬유 아라미드(Aramid)를 둘러싼 양사 간소송은 5년 전인 2009년 2월 시작됐으나, 사건의 발단은 30여년 전 듀폰과 네덜란드화학회사 악조노벨과의 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듀폰은 1973년 세계 최초로 아라미드를 개발해 '케블라'라는 브랜드로 생산을시작했다. 이 무렵 경쟁사인 악조도 아라미드 개발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듀폰이 사용하는 용매제를 대체할 수 있는 새 용매제로 특허권을 획득해 아라미드 사업에 뛰어들었다.

특허 적용에 강력히 반발하던 듀폰은 1984년 악조를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해 악조 제품의 미국 수입을 금지하는 판결을 끌어냈다. 악조의 맞대응으로 전 세계 각국에서 소송이 이어졌다.

그러다 1988년 악조의 손을 들어준 영국·독일·네덜란드 법원이 케블라의 유럽수출을 금지하면서 협상이 이뤄졌다. 당시 아일랜드에 6천만달러를 투자해 아라미드공장을 건설했던 듀폰은 한발 물러나 악조와 특허교환 협약을 체결했다.

이후로도 듀폰의 반덤핑 제소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악조 제품에 67%의관세를 부과하는 등 갈등이 지속됐으며, 악조는 일본 화학회사인 데이진에 아라미드사업을 넘기고 물러났다.

듀폰은 결국 악조를 퇴출시키는 데 성공했으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소송 과정에서 숨겨왔던 아라미드 관련 정보와 기술이 대거 공개된 것이다.

듀폰과 악조의 소송을 지켜본 당시 언론 매체들은 이 소송이 후발주자들에게 아라미드 시장에 진출하는 길을 터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놨다.

이 같은 예상은 적중했다. 코오롱이 자체 기술로 개발한 아라미드를 2005년부터'헤라크론'이란 브랜드로 양산하기 시작한 것.

강철보다 5배 이상 강도가 높아 방탄복 소재로 쓰이는 아라미드는 물성이 뛰어나 우주항공, 자동차 등 활용분야가 무궁무진하고 일반 섬유의 10배 이상 가격에 팔린다.

듀폰은 코오롱에도 30년 전 악조를 상대할 때와 유사한 전략으로 대응했다. 다만 이번에는 '특허 침해'가 아닌 '영업비밀 침해'로 분쟁의 명칭이 바뀌었다.

영업비밀은 언뜻 보기에 특허보다 수위가 낮아 보이지만, 일정 기간만 배타적인독점권을 누리는 특허와 달리 영구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데다 법적 규정이 상대적으로 모호해 기술 강자의 이익 방어에 유리한 수단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영업비밀은 공개된 특허와 달리 '보안'이 유지돼야만 법적 효력을 지닐수 있다. 미국법상 영업비밀 요건은 두 가지인데 정보 소유자가 비밀을 유지하기 위한 상당한 노력을 하고 있어야 하고, 정보가 일반에게 알려져 있지 않아 통상적인방법으로는 확인할 수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코오롱과 듀폰 소송의 핵심 쟁점은 후발주자인 코오롱이 차용했다고 주장하는듀폰의 기술이 영업비밀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코오롱은 1심 재판에서 듀폰이 문제삼는 정보와 기술이 대부분 30년 전 악조와소송에서 이미 공개된 것임을 보여주는 증거들을 제시했다.

하지만 1심 판사는 증거 채택을 거부하고 심지어 배심원들에게 관련 소송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려서는 안 된다고 명령했다.

1심 소송을 맡은 로버트 페인 판사는 판사로 임용되기 전 20년 넘게 듀폰을 대리한 로펌인 맥과이어우즈의 변호사로 활동했었다는 사실이 소송 도중 드러났다. 코오롱은 이 같은 판사의 이력을 확인하고서 판사 기피 신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않았다.

페인 판사는 배심원 평결을 기초로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해 거액의 손해배상 판결과 함께 20년간 제품 생산·판매를 금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항소심을 맡은 연방항소법원은 이 같은 1심 판결을 전면 무효화하면서, 그 근거로 코오롱 측의 증거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 법적으로 심각한 오류라고 적시했다.

블룸버그, 로이터, 월스트리트저널, AP 등 미국 현지 언론을 비롯한 외신들도이 같은 항소심 판결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며 코오롱과 듀폰 소송을 집중 조명했다.

특히 로이터는 미국 법원이 비싼 사회적 비용을 수반하는 배심원 평결을 뒤집는 경우는 드물지만 "근본적인 실수를 바로잡고자 어쩔 수 없이" 1심 판결을 파기했다고 언급한 항소심 판결 내용을 자세히 전했다.

아울러 "페인 판사 스스로 사임했어야 한다"는 항소심 재판부의 의견을 소개하며 파기환송된 재판에서 페인 판사가 배제된 점을 부각시켰다.

abullapia@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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