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경쟁력> ③고비용-저효율 낳는 대립적 노사문화 바꿔야

입력 2016-07-13 07:00  

경총 "경쟁력 높이려면 노동시장 유연화해야"…노동계는 반대"고비용 노사관계, 협력·상생의 관계로 전환해야 경쟁력 생겨"

최근 노사갈등을 빚고 있는 자동차부품업체 A사. 노사의 주장이 첨예하게 맞서 있지만, 회사 측은 노조가 대기업 납기차질 우려를볼모로 파업을 하며 황당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측에 따르면 노조는 단체협상 사항으로 신입사원 채용거부권, 파업 때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기본급과 통상수당에만 적용하고 다른 임금은 전액 지급할 것으로요구하고 있다.

또 다 쓰지 못한 연차를 다음해로 이월해 사용하고, 근로자 개인소득의 3%가 넘는 의료비(본인·직계가족)를 회사가 전액 지원해 달라고 요구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회사 생산직 직원의 평균 연봉은 8천만 원이 넘고 복리후생비까지 포함하면9천만 원도 훌쩍 넘는다. 노조는 현재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부품공급 차질을 빚으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어 그동안 노조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며 "노조가 기존의 특권적 기득권을 합리적으로 양보하고 노사가 서로 상생하는 해법을 찾지 않으면 더 이상 회사의 미래를 보장할 수없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조사결과,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체들의 임금 수준은 한국이 1.42로 독일(1.25)이나 영국(1.03), 일본(1.15)을 웃돈다. 미국(0.78)과 비교하면 한국의 제조업 분야 임금은 상대적으로 크게 높은 수준이다.

제조업 근로자들이 1인당 GDP와 견준 내용을 선진국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고액의 임금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2015년 한국의 1인당 GDP는 2만7천513달러인데 상용근로자 5인 이상 제조업 사업장의 임금은 3만8천941달러다. 이에 비해 미국의 1인당 GDP는 5만5천904달러, 관리자를 제외한 상용근로자 1인 이상 제조업 사업장의 임금은 4만3천300달러다.

국내 제조업 현장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준 예다.

경영계에서는 우리의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이 같은 구조를 만드는 후진적 노사 관계와 문화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새로운 기술의 도입과 변화가 빠른 미래 산업계 지형 속에서 대립적 노사관계는 변화를 읽고 적응할 역량을 갉아먹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노사가 공동운명체라는 점에서 노조도 노사 관계 개선의 적극적인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경쟁력 높이려면 노동시장 유연화해야…일자리 늘어날 것" 경영계는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노동 분야의 첫 번째 과제로 노동시장 전반의 유연성이 높아져야 한다는 점을 꼽는다.

노동시장의 '진입·이동·퇴출'이 원활해지도록 하고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를해소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중구조란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조합 유무(有無) 같은 구분에 따라 임금이나 복지, 처우, 고용 안정성 등에서 큰 차이가 나는 현실을 말한다.

특히 현행 노동법이 대기업 정규직의 이익만 보호하면서 노동시장의 양극화가심화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경총은 노동시장 유연성을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으로 연공급 임금 체계를 꼽고, 장기적으로 일의 가치와 성과를 반영한 직무·성과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영완 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경영계가 말하는 유연성은 해고를 쉽게 하자는게 아니라 노동시장으로의 진입과 이동이 쉬워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라며 "그러다 보면 더 많은, 좋은 일자리가 생겨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동시장 유연화의 준거로 경영계는 흔히 독일의 '하르츠 개혁'을 거론한다. 하르츠 개혁이란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2003년 노사정 대타협을 바탕으로 추진한노동·복지·세제·연금 개혁 정책을 일컫는다.

이 조치로 독일은 정규직 고용 보호장치를 완화하고 시간제와 한시적 일자리를대거 늘렸다. 그 효과는 뒤이어 들어선 앙겔라 메르켈 정부 때 빛을 발했다. 글로벌금융위기 상황에서도 독일의 성장을 이끈 원동력 중 하나로 평가된다. 다만 하르츠개혁으로 인해 질 나쁜 일자리만 늘었다는 비판도 있다.

국내 노동계는 노동 유연화에 크게 반발한다. 남정수 민주노총 대변인은 "우리나라가 비정규직이 없어서 산업 경쟁력이 떨어졌느냐"라며 "저임금 구조와 비정규직등 국민, 노동자의 희생을 전제로 해서 기업을 살리는 방식으로 경제 활성화가 이뤄져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노동시장의 이중성이 너무 심해서 유연화하면 좋겠다는 경직적인 부분이 있지만 이는 전체 노동시장에서 10%에 불과한 대기업 부문"이라며 "나머지 90%는 지금도 과도하게 유연하다는 점이 문제인데이를 더 유연화하면 고용 불안이 심화하고 내수경제를 중심으로 한 경제의 선순환구조라는 것도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 노사 협력의 '상생모델' 실험 잇따라…실제 성과로 이어지기도 대립과 갈등 일변도의 노사 관계를 협력과 상생 기조로 바꾸고 이를 바탕으로경쟁력을 끌어올리려는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르노삼성자동차는 지난해 국내 완성차업체 중 처음으로 무분규 노사 합의를 끌어낸 뒤 일거리가 늘어났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측이 당초 부산공장에 닛산 '로그' 8만대를 생산해달라고 했다가 11만대로 늘린 것이다.

르노삼성차 관계자는 "기본적인 생산성, 품질관리 능력 등이 전제됐기에 가능한일이었지만 쟁의행위 등으로 문제가 있었다면 일감을 더 확보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 2011∼2012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전 세계 46개 공장 중 중위권에머물렀던 르노삼성차의 생산력은 지난해 상위권으로 상승했다.

SK하이닉스[000660]는 지난달, 2015년도 임금협상을 타결하고 임금 인상분의 20%를 협력사 직원들의 처우 개선 등에 지원하는 '상생협력 임금공유 프로그램'을 시행하기로 했다. 직원들이 임금 인상분의 10%를 내놓으면 회사가 똑같이 10%를 부담하는 '매칭 그랜트' 방식이다.

올해 노조 측이 임금 인상 재원 3.1% 중 10%인 0.3%포인트를 내놓고, 회사 쪽도똑같은 액수를 내놓았다.

일부 기업에서 신기술 개발 등에 따른 이익을 협력사와 나눠 갖는 성과공유제를도입한 적은 있지만, 인상된 임금의 일부를 공유하는 것은 처음이다.

KEB하나은행 노조는 지난해 11월 급여 인상분 전액(2.4%)을 반납한다는 내용의'노사 상생 선언'에 합의했다. 노조는 급여 인상분을 반납하고 경영진은 노사 상생의 조직문화를 구축한다는 내용이 상생안의 골자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작년 5월 일감 나누기 차원에서 2개 공장이 공동생산을 하기로 합의하면서 생산 유연성을 확보했다.

전경련은 6월 발표한 자료에서 협력적 노사관계가 위기로 구조조정을 추진하는기업이 회생하는 데 결정적 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독일 폴크스바겐은 1993년 일본차의 공세에 밀려 1조3천억원 규모의 적자를 냈다. 그러자 95년까지 독일 내 근로자의 30%를 감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노조는 사측과 협의 끝에 해고 대신 임금 보전 없는 근로시간 단축을 선택했고대신 사측은 10만명이 넘는 전체 근로자의 고용을 보장하기로 하면서 위기를 넘겼다.

반면 프랑스 푸조시트로엥(PSA)은 금융위기로 영업적자 상황이 됐을 때 정부와노조가 구조조정, 공장 이전 등에 반대하며 일자리를 보호하려다 결국 공장이 문을닫고 말았다.

최근 노동계에서는 '광주형 일자리' 실험이 관심을 끌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란기존 정규직들이 받는 임금보다 적은 '적정임금'을 받는 일자리를 말한다. 기업이생산설비 투자를 맡는 대신 근로자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임금을 수용해 일자리를 만들자는 구상이다. 지방정부는 산업단지 조성, 규제 완화 등으로 지원사격을 한다.

2014년 이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윤장현 광주시장이 추진 중인 사업이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의 투자 유치를 실제 끌어내야 한다는 게 과제인 데다 노동계 동의를 끌어내는 문제도 어렵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경제학)는 "광주형 일자리 구상이 잘 진척되지 않는 이유중 하나는 새 일자리가 만들어져도 몇 년 뒤면 지금 근로자들처럼 근무 유연성 없이똑같이 될 것이란 우려 때문"이라며 "그러니까 기업이 신규 투자를 두려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인공지능, IoT, 공유경제 등 신기술의 물결이 닥쳐오고 있는데 대립적 노사관계에서는 이런 환경의 변화를 감지하고 새로운 것을 도모할 수 있는 역량이 없다"며 "노사가 함께 신기술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면서 같이 고민하고 솔루션을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sisyphe@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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