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시누와의 한 롯지(Sinuwa Lodge & Restaurant)에 들렀다. 하산을 하면서 컨디션이 날아갈듯 좋아져서 흐르는 물에 머리도 감고 세수도 했다.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웬 한국여성이 웃으며 쳐다본다.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했는데도 대꾸는 없고 미소만 짓는다. 별 싱거운 사람도 다 있다 생각하고 있는데 가이드 왈 네팔사람이란다. 그런데 생김새나 옷차림이 한국사람과 너무나 흡사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여성은 시누와 롯지의 주인인데 그룽족이라고 한다.
네팔에는 여러 민족들이 사이좋게 살고 있다. 네팔의 초등학교 교과서에 보면 ‘네팔은 4자트 36바루나의 공동화원’이라고 쓰여져 있다고 한다. ‘자트’란 ‘민족’ 또는 ‘카스트’라는 뜻이고 ‘바루나’는 다양한 신분과 직업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네팔에는 다양한 민족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사이좋게 지내는 곳이라는 뜻이다.
여러 가지 네팔의 민족들은 힌두계열의 빠르빠티족이 있고 북인도계의 타라이족이 있다. 카투만두에 처음 도시를 세운 네와르족이 있고 티벳-미얀마어계의 따망, 라이, 림부, 그룽, 머가르, 체반, 테칼리족이 있다. 그리고 티벳계 고산족으로 유명한 셀파족이 있다.
이중에 가장 유명한 민족은 셀파(Sherpa)족일 것이다. 에베레스트 지역인 솔로 쿰부에 많이 산다. 커다란 산중도시 남체 바자르는 이들의 메카다. 대부분의 셀파족은 불교도라고 한다. 셀파족 가이드들은 동네 어귀에 있는 불탑을 꼭 한 바퀴씩 돌고 간다. 높은 곳에 올라서는 ‘옴마니반메흠’을 외우며 향을 피운다. 그만큼 신실하고 의리가 두텁다.
따망족(Tamang)은 카투만두 부근에 많이 산다. 그래서 랑탕지역을 트레킹 하다보면 멀리서도 식별하기 쉬운 따망족 남자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슬람 교도들이 쓰는 것과 같은 민짜 모자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굳이 또 하나의 민족을 찾자면 티벳사람들이 있다. 중국의 압박을 피해서 네팔로 건너온 사람들이다. 종교는 당연히 라마교이며 티벳의 수도라 할 수 있는 라사(Lhasa)를 이상향처럼 생각하고 집안에는 제단을 만들어 달라이라마의 사진을 모신다.
그룽족은 특히 한국사람을 빼닮았다. 아니 우리가 그들을 닮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룽족은 한국사람들과 더욱 친숙하고 대화도 잘 통한다. 트레킹으로 검게 탄 얼굴을 한 한국사람과 얼굴이 다른 민족보다 하얀 그룽족이 같이 앉아있으면 정말 누가 한국사람이고 누가 네팔사람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다.
아마다블람이 멀리 내다 보이고 햇살이 따사로운 시누와 롯지가 마음에 들었다. 여주인에게 “혹시 이 롯지를 팔 의향이 있느냐”고 물으니 15만 루피(한화 약 3백만 원)면 넘길 의향이 있단다. 한 달 수익은 한화로 약 10만원 정도. 그나마 비수기인 여름에는 그나마 수입이 한참 떨어진단다.
네팔에는 인도와 마찬가지로 카스트가 있다. 사회주의국가인 네팔에서 카스트는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사회적으로 깊이 뿌리박고 있는 카스트 제도는 어디까지나 현실이다. 공식적으로는 1960년대에 카스트제도가 공식 폐지되었다. 그러나 이른바 `불가촉 천민'으로 불리며 각종 차별을 당하고 있는 하층계급민 `달리트(Dalit)'의 숫자는 아직도 전체 2천300만 인구의 약 35%를 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팔의 카스트 관습에 따르자면 달리트 계급에는 재단사와 구두직공 등이 포함되며 이들은 힌두사원에 들어갈 수 없고 상층계급과 접촉하거나 같은 좌석에 앉을 수 없다. 이들이 갈 수 있는 사원은 극히 제한적이다.
여러 민족들로 이루어진 구성원들, 수 천 개의 카스트, 아직도 요원한 경제개발, 생각보다도 훨씬 적은 임금수준… 그러나 그런 것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네팔사람들은 함께 어울려 공동의 화원을 만들어 가고 있다. 마치 여러 종류의 꽃들이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꽃밭처럼…
>>>1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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