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률 기자]
고향의 바위벽에는 손자국이 남아 있다고.
오랜 산 친구여!
나의 핔켈을 주네.
명멸하는 방하에 힘껏 꽂아 주게
눈부시게 빛을 발할 터이니……
로제ㆍ뒤블러의 싯귀가 무척이나 울리게 하던 진정한 의미의 클라이머, 유재원
형이 떠나간지도 2년이 지나 버렸군요.
후배들의 노력이 담긴 한 코스를 막 끝내고 이제 돌아 왔소.
「재원길」이라 명칭을 붙였소.
먼 훗날, 세상 모든 것이 형을 잊게 될지라도 뭇 클라이머들은 형의 이름을 익히 알고 있을거요. 형의 산으로 향한 의지와 정신은 영원할테니……
- 선인봉 ‘재원길’ 개척 등반 보고 중에서(1979년 경동동문산악회)
아무리 빼어난 클라이머라 하더라도 모든 바윗길을 등반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는 43개산 233개 암장에 모두 2,556개에 이르는 바윗길이 있다고 한다. 매일처럼 등반을 하더라도 7년의 세월이 필요한 셈이다. 게다가 바윗길은 계속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 2012년 암벽시즌이 거의 저물어가는 시점에서 꼭 등반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등반하지 못한 길이 두 개 있었으니 그것은 선인봉 재원길과 울산바위 비너스길이다.
울산바위 비너스길을 등반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사진작가 강레아가 찍은 사진 때문이었다. 비너스길을 완등한 클라이머의 손은 크랙을 오르며 터져 마디마다 피가 맺혀있었다. 난이도는 5.10c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붙어보면 5.12에 버금가는 완력과 기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의 비너스는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 비너스길은 내년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선인봉 재원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조금 특별하다. 지난 3월 인수봉 아미동길을 취재하면서 아카데미산악회 회원출신이면서 경동동문산악회원인 송기훈 님의 메일을 받게 되었다. 아미동길의 유래를 설명해준 송기훈 님은 아울러 경동고등학교 동문들이 고 유재원을 추모하며 개척한 재원길에 대해서 설명해주곤 6월에 기자와 함께 등반을 하기로 했던 것이다.
기억을 되살려보니 고 유재원은 기자가 20여 년 전에 읽은 박인식 저 ‘사람과 산’에서 ‘하얀 산에 태운 불꽃 유재원 전’에서 만났던 인물이었다. 재원길 등반을 더욱 기다리게 된 이유가 한 가지 더 생긴 셈이다.
재원길은 경동동문산악회가 1979년에 故유재원 동문의 2주기 추모사업의 하나로 선인봉에 새로운 바윗길로 개척한 길이다. 조성대(29회) 동문이 개척대장을 맡아 김정만, 배유영(이상 32회), 김광선, 안병열, 이훈상, 정기준(이상 35회) 대원들이 그 해 9월12일부터 10월30일까지 장장 50일에 걸쳐 선인봉에 난이도 5.12a의 새롭고도 어려운 등반루트 개척에 성공했다. 고도의 밸런스를 요구하는 까다로운 슬랩으로 시작되는 재원길은 아직도 바위꾼들 사이에서는 고난도의 등반기술이 필요한 매우 훌륭한 루트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약속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경동동문산악회에는 재원길을 선등할 수 있는 클라이머가 3명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 중 2명은 부상을 당하였고 또 다른 한 명은 업무상 지방에 있어 부득이 재원길 등반이 연기된 것이었다.
그러나 역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던가. 재원길 등반취재는 적벽산악회 배기일 클라이머의 도움으로 완성이 되었다.
박쥐길의 바로 오른쪽에 위치한 재원길은 첫째 마디부터 만만치 않은 슬랩과 크랙등반을 해야 한다. 거리는 30미터로 후반부는 인공등반 구간이다. 개척당시에는 표범길 스타트지점에서 박쥐길 스타트지점까지의 밴드 트레버스(지금 난이도로 5.11A)를 1피치로 하였으나 하강코스와 겹침으로 불편함을 초래한다는 폐쇄되어 지금의 바윗길이 정립되었다.
1979년 9월13일 개척당시의 일기를 보자.
75도의 각도에 홀드 스탠스가 불량, 추락하고 만다. 자유등반이 가능하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계속 추락의 연속이다. 모두의 무릎과 팔꿈치는 멍이 들었고 몹시 허기져 있었다.
하늘에선 우릴 조롱하듯 빗방울이 하나 둘 내리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내일로 미루고
내려왔다. 얼큰한 동태찌게에 허기와 피로를 달래며 오늘 등반에 대한 반성을 해 보았다.
스타트 지점에 크랙킹 업(CRACK'UP)이나 소형 너트 하나와 밴드 중간에 볼트 한개가 소
요될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바윗길 개척은 지금도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인데 1979년도의 사정이야 어땠으랴. 말 그대로 고난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등반자가 추락하면 대원들은 추락하는 대원을 몸으로 받았다고 한다.
23미터에 이르는 둘째 마디는 바로 재원길의 크럭스로 5.12a에 달하는 재원길의 난이도를 말해주는 마디다. 원래 둘째 마디는 우측크랙에서 왼쪽 슬랩 지역으로 나가 확보용 볼트에 퀵드로우를 걸고 계속 슬랩으로 등반하여 우측 경사가 센 지역으로 이동하게 된다. 여기서부터는 글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고난이도의 밸런스와 완력을 필요로 한다. 선등자들도 이 구간에서는 몇 번의 추락을 통해 완등을 이루어낸다.
셋째마디는 5.9의 난이도로 출발해서 인공등반으로 끝내는 35미터의 등반구간이다. 확보지점에서 우측으로 조심스럽게 트레버스를 한 다음 첫볼트에 확보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비교적 수월한 구간이다.
넷째 마디는 거리 15미터의 크랙구간이다. 이 구간은 난이도가 5.8밖에 되지 않지만 출발지점이 멍텅구리성 크랙이어서 선등자가 부담을 갖게 되는 곳이다. 재원길의 넷째 마디의 난이도는 누가 매겼을까? 기자가 느끼기에는 최소 5.10b~5.10c는 나와야 할 것 같은 난이도인데도 불구하고 공식적인 난이도는 5.8이다. 손끝이 간신히 들어가는 실크랙을 잡고 도저히 출발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것은 마치 5.10급 슬랩을 선등하는 클라이머가 5.8난이도라는 수리봉 아이길에서 연거푸 추락을 당하고 난 뒤의 열패감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크랙을 힘겹게 뜯으며 바로 직상하던지 아니면 크랙의 우측으로 붙어 레이백으로 오르는 방법도 있다. 마지막 다섯째 마디는 거리 25미터 난이도 5.7의 구간이다.
재원길 등반을 마치고 하강하는 선등 클라이머 배기일 씨의 얼굴에 마침내 여유있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말수가 적어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않고 멋도 부리지 않아 그저 무뚝뚝한 산사나이 같은 그는 태풍이 불고 비바람이 친다하더라도 결코 미동도 하지 않는 바위를 닮아 있었다. 그는 꾸준히 외길을 가는 정직하고 믿음직한 클라이머다.
재원길 등반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 유재원이라는 사람은 어떤 산악인이었기에 동문들은 숱한 어려움을 무릅쓰고 이 길을 개척하게 되었을까?
유재원은 1972년 한국산악회에서 발족한 제2차 알프스훈련원정대(대장 김인섭)의 대원으로 프랑스국립스키등산학교(ENSA)에 파견되었다. 그러나 유재원은 귀국하지 않고 현지에 남아 활동을 계속한다. 이를테면 불법체류를 한 셈이었다.
유재원은 알프스 지역에 머무르며 1977년 몽블랑 뒤 따귈에 '코리안 필라' 코스를 초등반하는 등 5년간 23회의 공식 등반기록을 남겼다. 유재원은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최고의 기량을 갖춘 클라이머였기 때문에 1974년에는 프랑스 히말라야 원정대 다음해에는 인도 히말라야 눈 쿤 원정대, 낭가파르바트 원정대 대원으로 선발되기도 했지만 결국 여권문제로 원정을 떠날 수는 없었다. 애초에 프랑스 불법체류가 문제의 시발이었다.
알프스 지역에서 활발한 등반활동을 하던 유재원은 귀국을 앞두고 1977년 7월 23일 일본 산악인 마사오(早野雅雄)와 에귀 노아르 드 프트리 남벽을 등반중 실종되었고 다음달 8일 북벽 아래에서 유해로 발견되었다.
유재원은 1962년 경동고등학교 산악부에 가입하며 산악활동을 시작했다. 1969년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1970년에는 경동고 동문산악회 회장을 지냈다. 유재원은 생전에 쓴 몽블랑 따귈 등반기에 “나는 언젠가는 등반을 하다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산악인에게 가장 큰 행복은 산에서 맞는 죽음이라더니 그 말이 과연 맞는 말인 것일까?
누구보다도 알프스를 사랑했고 그 뜻을 펼치고자 했으나 꽃처럼 산화한 유재원, 그리고 그를 추모한 후배들의 아름다운 열정이 모여 선인에 아롱 새겨진 재원길. 알프스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꿈이 선인에서 잠들게 한 숭고한 추모의 바윗길.
이제 세상 모든 것이 유재원을 잊게 되었지만 선인봉을 등반하는 모든 클라이머들은 그의 이름을 익히 알고 있다. 유재원의 산으로 향한 의지와 정신은 영원하기 때문에 '재원길'이라는 이름으로…
(사진제공 및 도움말 : 경동동문산악회 송기훈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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