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률 기자] 1969년 6월 17일 화요일(맑음)
인수봉을 등반하는 형제가 있었다. 그곳은 아직까지 바윗길이 아니었다. 다만 형 박정규와 동생 창규는 우정A길에서 오른쪽으로 15미터 지점에 새로운 바윗길을 개척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새로운 길을 향한 발걸음을 이제 막 떼기 시작했던 것이다.
동생 창규가 먼저 선등을 섰다. 첫째마디 슬랩에서는 두 번 미끄러졌지만 무난하게 등반을 완료 할 수 있었다. 침니가 있는 커다란 나무까지만 진출하면 이 바윗길은 쉽게 끝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둘째 마디를 출발하기 위해 바위를 붙잡고 일어서는 순간 바윗돌이 몸을 향해 달려드는 바람에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깨진 바위 위로 올라 앵글 하켄을 박고 왼쪽으로 트래버스를 시도했다. 균형잡기가 쉽지는 않았다. 큰 나무 방면으로 등반을 하는데 이끼가 많아 무척 미끄러웠다.
홀드가 보여 잡고 일어나는 순간 균형을 잃고 미끄러지고 말았다. 다행히 확보용 하켄에 걸려 대롱대롱 매달린 채 다치지는 않았지만 수십 길 낭떠러지 아래로 퍼졌던 “앵~카~”의 외침은 긴박하기에 충분했다.
빌레이를 보는 형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다시 등반을 시도하려고 했지만 옆으로 하켄을 치고 올라가라는 형의 충고를 받아들여 트래버스를 포기하고 래더(사다리)를 밟고 하켄을 때렸다. 하켄의 크기가 맞지 않아 힘들었으나 5개의 하켄을 박고 큰 나무까지 등반할 수 있었다.
위로는 대 침니가 입을 벌리고 있었으나 오르기에는 그리 힘들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형제가 상의한 결과 그곳 나무에 자일을 걸어 놓고 미끄러진 곳까지 내려가 보기로 한다. 내려가서 확인해 보니 도저히 자유등반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어 미끄러진 곳 바로위에 볼트를 박는다. 시간은 좀 남았으나 내일 침니를 오르기로 하고 하강을 서두른다.
6월 18일 수요일(흐린 후 비)
형제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오늘은 완전히 개척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하여 첫째 마디 슬랩을 오르고 둘째 마디를 왼쪽으로 트래버스하여 올라간 후 볼트에 카라비너만 걸고 무난히 침니밑까지 진출했다.
이 날도 동생 창규는 대침니(Big Chimney)를 선등했다. 등반하기에 적당한 침니로 좁지도 넓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제 모두 올라왔겠거니”하고 위쪽을 바라보면 아직도 끝이 없다. 그만큼 침니의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기를 몇 번이고 한 후 겨우 끝까지 오르니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36m 길이의 자일이 모두 풀렸으니 침니의 길이를 짐작할 수 있다.
빌레이를 보던 형 정규 씨가 등반을 마친 후에 갑자기 어두워지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형 정규씨는 “비가 내리니 다음날에 와서 나머지를 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동생 창규 씨는 오늘 끝내버리고 싶었다. 인제 조금만 오르면 되는데… 동생 창규 씨는 “자신 있으니 등반을 하자”고 우겼고 형은 한참을 고민한 후에 자신이 선등을 서겠다고 했다. 형제간에 서로 아끼는 마음이 각별한 탓이었다. 형은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한 등반을 동생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형의 마음을 동생이 몰랐을 리 없다. 동생 정규 씨의 가슴도 이내 뜨거워졌다.
결국 동생 창규 씨가 계속 선등을 서기로 한다. 생소한 바위를 향하여 오르기 시작한 등반. 결국 바위와의 격렬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동생 창규 씨는 곧 형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바위길은 어렵고 그보다도 비가 계속 퍼부었기 때문이었다. 창규 씨는 전력을 다 해서 크랙을 올랐다. 어떻게 하던 무사히 올라야만 한다는 일념에 손바닥이 벗겨지고 피가 흐르고 빗물이 들어가 따가운 것도 몰랐다. 오직 바위와의 싸움만이 계속됐다.
기후는 점점 악화되어서 비와 함께 강풍이 몰아치는 바람에 높은 바위의 꼭대기는 비바람이 더욱 심했다. 그렇지만 비바람이 두렵지는 않았다. 창규씨는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지면서 드디어 크랙을 다 올랐다. 마지막 정상을 향하여 나무를 잡고 일어서다가 미끄러져서 손바닥이 모두 쓸려버리고 말았다.
드디어 정상에 올라섰다. 바람과 비는 사정없이 몰아쳐와 바위에 벗겨지고 할퀸 손의 상처로 아픔을 더 해 주었지만 창규 씨는 온몸이 빗물과 땀에 흠뻑 젖은 채 하나의 바위처럼 우뚝 서서 비바람을 맞고 있었다.
위의 글은 우정산악회 박창규 씨가 쓴 우정B길 개척기를 요약, 발췌한 것이다. 형제간의 뜨거운 열정으로 잉태하여 사랑으로 출산하게 된 이 길은 그래서 형제길이라고도 불린다.
9월22일, 평소에 자주 등반하지 않던 우정B길을 등반하기 위해 등반팀이 다시 뭉쳤다. 이날 등반은 원래 우정산악회와 함께 하려고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함기철 대장, 이재원 대장과 우암암벽산악회의 회원들이 나섰다.
9월하고도 하순에 접어든 시기에 바라본 인수봉은 모처럼 구름 한 점 없이 맑아 보였다. 오전 10시반 하루재 넘어서 나타난 인수봉의 인기 있는 코스에는 벌써 등반이 한참 진행중이다.
일행은 인수동면으로 이동해서 두 팀으로 나누어 크랙과 슬랩으로 오아시스까지 어프로치 등반을 했다. 출발지점에서 취나드B 코스로 이어지는 등반선에는 풋풋한 성신여대‧세종대 합동등반팀이 등반중이었다. 아직은 미숙하고 경험이 일천한 친구들이지만 이들이 곧 내일의 우리나라 산악계를 이끌어갈 동량이라 생각하니 어설프게 매고 있는 8자되감기 매듭 하나에도 더 신경을 써주게 된다.
이들과 정다운 대화를 나누다가 갈림길에서 헤어져 오아시스로 진입하니 벌써 적지 않은 인원들이 인기 있는 의대, 궁형, 인수A길을 등반중이고 패시, 반트, 신천지 길에는 등반자들이 많아 대기중인 팀들도 있었다. 다행히 우정B길은 비어있다.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등반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일까? 궁금증은 등반을 하면서 풀리게 된다.
첫째 마디는 크게 어렵지 않은 슬랩이다. 개척 당시 군화를 신고 두 번 정도 미끌어졌다고 하니까 난이도가 높은 편은 아니다. 죽어있는 향나무 밑둥까지 진출해서 확보를 하면 첫째 마디는 끝난다.
둘째마디에서는 크랙을 타고 올라서 볼트에 퀵드로우를 걸고 바로 왼쪽으로 트래버스에 들어간다. 그런데 크랙에는 물기가 있고 밴드는 무척 미끄럽다. 1팀의 선등을 맡은 이재원 대장이 "밴드 미끄럽기가 타일과도 같다"고 말할 정도이니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선등자는 의외로 긴장을 하게 된다. 추락하면 추락거리가 꽤 길기 때문이다.
트래버스가 끝나면 슬랩이나 크랙 두개의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오를 수 있는데 슬랩으로 갔을 경우의 난이도는 5.8, 크랙으로 갈 경우에는 5.9로 나타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실제로 등반을 할 때 몸으로 느끼는 난이도는 분명 이보다 한 두 단계 높다는 것이다. 자연적인 바윗길은 등반자가 많을수록 미끄러워지기 때문에 난이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이재원 대장은 살 떨리는 트래버스를 거쳐 왼쪽 바위로 올라붙고 슬랩을 이용하여 등반을 하고 확보를 마친다. 함기철 대장은 물기가 있는 약 5m 높이의 페이스를 오르고 왼쪽으로 약 8미터를 트래버스해서 크랙 앞에 도착한다. 크랙길을 선택한 그는 크랙에 너트 한 개를 설치하고 재밍으로 다시 1.5m 정도를 올라서 머리높이에 2호캠을 설치한다. 계속 크랙을 올라 3호캠을 설치하고 좌측으로 오르는데 역시 거추장스럽게 걸쳐있는 죽은 나뭇가지가 말썽이다. 조심조심 옆으로 이동해서 나무뿌리를 잡고 등반을 완료한다.
그런데 둘째 마디가 끝나는 확보지점에는 큰 나무가 한 그루 쓰러져 있었다. 이미 오래전에 그런 일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이유는 나무가 부서지고 있다는 점. 때문에 나무를 피해서 등반을 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을 개인이 할 수는 없는 일이고 서울시산악연맹 구조대나 북한산경찰산악구조대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때마침 부상자가 발생했는지 요란한 헬기소리가 들리더니 서울소방청의 헬기가 나타났다. 아마도 이날 고독길에서 발목부상 환자가 발생한 모양이다. 이날도 각 등반로에서는 확보장비와 카라비너를 떨어뜨리는 일들이 발생하고 어수선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누군가가 서두르다가 그런 사고를 당한 모양이다. 암벽등반 시즌을 맞은 바윗길의 안전이 한 번 더 강조되어야 할 것 같다.
셋째 마디는 우정B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침니등반이다. 이 구간을 등반하기 위해서는 한쪽 벽에 등을 붙이고 한쪽 발은 앞의 벽을, 다른 한쪽 발은 뒤의 벽을 지지하면서 다시 한손은 앞 벽에, 다른 한 손은 뒷 벽을 밀고 올라가는 동작을 반복해야 한다.
이 구간이 온사이트 등반인 이재원 대장은 침니를 출발하여 왼쪽 크랙에 확보물 두 개를 설치하고 오르는데 침니를 계속 올라가지 않고 왼쪽 바위를 올라타고 말았다. 이렇게 되면 다시 원래의 침니구간으로 들어오는 수밖에 없다. 침니구간 등반은 온몸을 던지는 방법 밖에 없다. 벽에 등을 붙이지 않고는 절대로 등반할 수 없다. 그것이 침니등반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들 때문에 등반자들이 우정B길의 등반을 머뭇거리게 만드는 요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왼쪽 바위를 올라탄 덕분에 좌측으로 패시길을 등반하는 경동동문산악회(경동OB/KDOBAC)의 이훈상 등반대장과 이성종 부등반대장, 허우현, 배은순 그리고 내일의 산악계를 이끌어갈 YB들의 등반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경동OB는 보기 드물게 뜨거운 열정으로 등반과 함께 YB들을 챙겨오는 등 모범적인 산악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일찌감치 알프스에서 산화한 선배 유재원을 기리는 마음으로 선인봉에 고난이도의 바윗길 재원길을 개척했다. 또한 최근에는 모교에 인공암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고 국내 정상급의 기량을 갖춘 지도교사까지 내정된 상태여서 곧 YB들이 신나게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을 것 같다. 2013년에는 출중한 클라이머였던 선배 고 유재원의 뜻을 기리기 위해 알프스 원정을 준비중이다. 과연 알프스에서 선구적인 등반을 하다가 산화한 유재원의 자랑스런 후배들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고 할 것이다.
침니등반은 자주 시도해 볼 기회가 없기 때문에 다소 당황스럽게도 느껴지지만 막상 등반을 해보면 재미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주 어린 아이들도 때로는 이 같은 동작을 하게 되는데 아마도 우리는 선천적으로 이렇게 등반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 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참 등반을 하고 위로 올려보아도 아직 많은 거리가 남아있다. 이것은 개척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니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을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바윗길을 잔뜩 찌푸린 날씨에 등반하자니 얼마나 오금이 저렸을 것인가.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바윗길을 개척한 형제들의 노력이 정말 가상하다. 셋째 마디 침니구간의 난이도는 5.6을 잡는다.
셋째 마디 등반을 마치고 함기철 대장은 이렇게 말한다. "셋째 마디 침니구간을 등반할 때는 예전 생각이 났습니다. 등판을 벽에 붙이고 손과 발을 움직여가며 등반을 하다보면 옷이 더럽혀지기 때문에 옷을 뒤집어 입고 등반을 끝낸 후 다시 옷을 벗어서 바르게 입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안 그래도 옷을 잘 갈아입지도 못하던 시절, 깨끗한 옷에 잔뜩 흙을 묻혀오면 어머니의 꾸중도 만만치 않을 터, 아예 옷을 뒤집어 입는 방법을 택했던 모양이다.
인수봉의 우정길은 A와 B로 나누어 개척이 되었다. 우정A길은 1969년 6월 15일에 그리고 B코스는 3일 후인 6월 18일에 완성되었다.
우정길 개척의 개척의 시작은 1965년 가을이었다. 버림받은 듯한 암벽에 망원경을 통해 줄을 긋고 스케치를 하며 정찰을 시작했다. 그러나 1967년 초봄 설악산의 미답봉을 등반하던 중 박정규 씨가 추락하는 일이 생겼다. 산악회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던 그의 부상은 곧 산악회의 정체를 가져왔고 결국 개척의 임무는 동생 박창규 씨에게 넘어간 것이다.
우정산악회는 정면벽에 새로운 길을 내기 위해 치밀한 준비를 했다. 박창규 씨는 강영택, 이승균, 신유균, 한남수 씨와 팀을 이루고 5월21일에 등반을 시작한 이후 6월15일 드디어 우정 A길 개척에 성공한다.
이틀 후에는 우정A길의 오른쪽 15m 지점의 크랙과 침니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이번에는 박정규, 박창규 형제가 나서게 되었다. 이준성, 정충구, 전진호, 차상규, 김진호 씨가 지원을 맡았고 김태진, 박정규, 이건일 씨가 등반을 지도했다고 한다.
넷째 마디는 다시 크랙구간이다. 난이도는 5.7. 다시 함 대장의 말을 들어보자.
"침니를 오른 후에 마지막 마디인 넷째 마디 앞에 서서보니 크랙이 예전보다 많이 넓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쌍볼트 주위는 예전에 오르던 때와 같이 숲속의 오솔길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입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인수봉 정상의 울창하던 숲이 많이 없어졌지만 아련한 추억이 생각나는 이 장소와 악우들 모습이 떠오릅니다"
함 대장은 여기에 덧붙여 "우이동 넘어 동쪽을 바라다보면 예전에는 논과 밭과 작은 산을 넘어 가깝게 보이던 불암산과 수락산이 이제는 수많은 건물들과 아파트들을 너머 저 멀리 보인다"고 말한다.
언제까지나 영원할 것 같던 바윗길도 세월이 흐르면서 바위틈의 폭도 넓어지고 미끄러워지면서 나이가 들어가는 모양이다.
형제길은 슬랩과 크랙, 트래버스 구간에 인수봉에 두 개밖에 없는 침니 중 하나를 소유하고 있는 멋진 길로 등산학교의 졸업등반으로도 많이 선택되는 전통 있는 바윗길이다. 우정산악회 회원들의 뜨거운 열정과 박창규, 정규 형제가 비를 맞아가며 어려운 환경 속에 개척한 우정B길. 뜨거운 형제애 그리고 비와 바람이 빚은 이 길은 그래서 더욱 살갑고 뜨거운 감동이 되살아나는 추억과 낭만의 바윗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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