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국내에서 일본차는 두렵지 않다는 입장을 은근히 피력하고 있다. 제품면에서 일본차에 뒤질 게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차의 국내 판매실적을 감안, 향후 국내에서 일본차 성장이 쉽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기까지 한다. 대신 독일차의 국내 공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고 어떻게든 독일차 방어에 집중한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현대차가 안방에서 일본차를 무시(?)하는 배경은 판매실적이다. 과거 일본차는 분명 한국차가 추격할 대상이었고, 국내에 들어오면 안방의 일부 잠식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자 일본차 판매가 예상보다 적었던 것. 그래서 일본과의 FTA를 적극 반대하며 일본차의 한국 진출을 방어했던 현대차가 이젠 안방싸움에서 자신감을 감추지 않는다.
얼마 전 만난 현대차 관계자도 이런 분위기를 여과없이 전했다. 그는 "일본차가 장기적으로 한국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 같다"며 "한국차와의 차별화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독일차는 브랜드 선호도가 높아 나름 경쟁력이 있다고 해도 일본차는 그렇지 않다고 보는 소비자가 많다"며 "렉서스와 인피니티 등이 있지만 프리미엄 브랜드로 갈수록 독일 브랜드와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마디로 일본 프리미엄 브랜드는 독일차, 대중 브랜드는 현대차 장벽을 넘지 못한다고 보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 현대차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포기하는 대신 제품 고급화로 일본차에 맞서는 중이다. 렉서스와 인피니티는 제네시스 홀로 충분한 방어선을 구축했고, 캠리와 알티마, 어코드 등은 쏘나타와 그랜저가 기대 이상의 선전으로 시장을 지킨 것으로 현대차는 판단하고 있다. 토요타가 올해 준대형 세단 아발론을 들여와도 그랜저가 건재한 이상 큰 걱정이 없다고 보고 있다. 일본차 진출 초기 우려했던 시장잠식의 불안에서 차츰 벗어나는 모습이다.
현대차의 이 같은 자신감에는 분명 근거가 있다. 스스로 판단할 때 디자인과 품질면에서 일본차와 어깨를 견주고, 치열한 격전지인 북미에서 일본차에 버금갈 만큼 사상 최대 판매실적을 달성하고 있어서다. 오랜 시간 일본차 그늘에 가려진 하늘을 이제야 보기 시작했으니 안방에서 뻐길만도 하다.
그러나 현대차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다. 내구성이다. 북미에서 일본차가 인정받았던 이유는 효율 외에 내구성이 뒷받침됐다. 국내에서 일본차를 사는 소비자도 내구성만큼은 한국차가 일본차에 뒤진다고 생각한다. 물론 현대차는 내구성 간격도 좁혀졌다고 주장한다. 차이가 컸다면 한국에서 일본차의 급격한 성장이 이뤄졌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점이 증거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럼에도 일본차는 현대차의 안방을 어떻게든 흔들 태세다. 특히 토요타는 현대차가 보유한 '안방의 힘'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그래서 일본차가 한국차보다 우수하다는 점을 한국 소비자에게 알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제품의 우열 여부를 떠나 철저하게 한국 소비자 기대를 맞추는 데 초점을 맞췄다. 현대차가 일본에서 실패한 것도 결국 일본차보다 낫다는 이미지를 심어주지 못했다는 교훈에서다. 한국시장 공략을 위해 일본 내 현대차 실패사례를 철저히 분석했다는 후문도 들려온다.
현대차가 자신감을 쏟아낼 때 일본차는 장기적인 한국시장 정착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 번 발을 들이면 결코 시장을 떠나지 않는 일본업체 특유의 장기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져도 자동차의 기본은 내구성임을 잊지 않는다. 3년이 아니라 10년이 지나도 고장없는 차로 인식될 때를 기다리는 중이다. 미국에서도 그렇게 성공했고, 그 것이 소비자를 위한 방법으로 믿는다. 안방의 힘을 믿는 현대차와 참고 기다리는 일본차,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 궁금해진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