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진 기자/사진 김강유 기자] “런던에서 파리, 또 다시 일본으로. 각국의 빈티지한 아이템을 바리바리 챙겨 모아 비로소 지금의 쇼룸에 제대로 풀어냈다”
그만의 공간, 그만의 활동, 그만의 작업을 행하는 디자이너 이지은의 ‘쇼룸’에서는 빈티지한 감성이 가득 묻어난다. 이는 그가 선보이는 니트웨어 브랜드 그레인지 야드의 색깔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터.
옷의 ‘소재’와 ‘디테일’에 집중하는 그레인지 야드의 아이덴티티는 컬렉션하면 자동적으로 ‘프린트’를 떠올리는 패션 인사이더들의 지루함을 상쇄시키기에 충분한 뉴 브랜드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보통의 패션 디자인은 원단이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그것을 베이스로 옷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레인지 야드의 니트웨어는 실 하나에서 시작해 원단부터 맛깔스런 디자인이 녹아든 니트 완제품까지 다채롭게 만들어 낼 수 있어 매력적이다”
인터뷰 전 디자이너라는 상징적 이미지가 주는 긴장감은 그와의 몇 마디 대화에 종적을 감춰 버렸다. 촉감이 부드럽고 움직임을 자유롭게 하는 니트웨어의 성질처럼 디자이너 이지은역시 유연한 말솜씨와 유쾌한 언변으로 대화에 흥을 돋우며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었다.
런던의 길 위에서, 그레인지 야드가 탄생하다
그레인지 야드는 2009년 설립된 브랜드다. 7년간 생활한 런던의 길 이름에서 따 온 것으로 영국 상류층이 취미를 즐기기 위해 찾던 ‘주말 농장’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한 올 한 올 원단 패턴부터 실루엣까지 직접 핸들링 해 니트를 창조해 내는 것이 브랜드가 갖는 매력이다. 유니크 하면서도 정교한 디테일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유머러스함, 다양한 컬러매치를 시도함으로서 아이덴티티를 구축한다”
이지은 디자이너는 런던 세인트 마틴에서 텍스타일을 전공한 후 니트 패션 과정을 수료했다. 그 후 디올 옴므, 알렉산더 맥퀸, 소니아 리키엘 등 저명한 디자인 하우스에서 인턴 경험을 쌓으며 브랜드에 맞는 디자인을 설립해나가는 과정을 배웠다.
후에 그레인지 야드를 설립한 후 파리의 패션 전시회를 계기로 일본, 영국, 파리, 스위스, 캐나다, 미국 등으로 범위를 확장하게 되었고 2010년 F/W 컬렉션으로 서울 패션위크에 진출했다.
“2011년 5월 쇼룸을 오픈했다. 계속 해 파리와 런던에서 전시회 진행하면서 편집매장을 타깃으로 매 시즌 의상을 발표했다. 그러다 점점 규모가 커지고 수주가 이뤄지다 보니 국적에 대한 물음이 오더라. 아무리 런던에서 작업을 해도 베이스는 한국이지 않나. 국내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다진 뒤 다시 해외로 나설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 패션계 아직 낯설어··· 패스트 트렌드는 더욱 더
국내에 들어온 지 딱 3년. 해외 전시 준비를 빼고는 더 적어진다. 그래서 한국 패션계가 더 어렵다. 이지은 디자이너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는 한국의 패션시장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며 패스트 패션 브랜드가 잠식한 국내 시장에 대한 생각도 밝혀냈다.
“한 철 입고 버리는 아이템을 저렴한 가격에 내세워 패션시장을 지배한 SPA 브랜드의 뜨거운 선전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우리나라 의류 시장은 지나치게 트렌디하다. 일본이나 런던은 자기 스타일을 10년 이상은 고수하는 것이 보통인데 말이다”
해외에서는 그레인지 야드는 소재 좋은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국내의 반응은 정 반대. 제 아무리 소재가 좋다 한들 별로 유명하지 않은 브랜드의 캐시미어 니트를 고가에 구입하는 소비자는 적었다.
“니트는 장인에 의해 전부 손으로 작업하는 과정을 거친다. 세컨드 라인인 프리코를 니트로 전부 시험해 볼 수 없지만 우븐으로 진행해 볼 수 있는 아이템을 구성해 놨다. 두타 1층 매장에 자리한 이 라인 역시 매니아층의 주목을 받는다”
슬로 패션의 범주에 포함되는 니트웨어, 번갯불 콩 볶아 먹듯 눈 깜짝할 사이 변하는 트렌드와 달리 그가 입는 옷의 종류는 유행과 관계없이 제한적이다. 캐시미어 니트, 캐시미어 코트 등 소재가 좋고 항상 손이 가는 촉감 좋은 옷을 입고 또 만든다.
“사람들이 손쉽게 입으면서도 주머니 하나에 특별한 디테일이 있고, 입을 때마다 좋은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그레인지 야드만의 색깔이 묻어나 있다면 좋겠더라”
서울컬렉션, 도약의 첫 발을 내밀다
빅토리안 시대로부터 계속 된 영향은 받아온 이지은 디자이너는 엔티크하면서도 자유스러운 느낌들을 지속적으로 표방한다. 더불어 그 시대를 계속해 해체하고 결합하는 작업을 반복하며 F/W의 새로운 영감과 테마를 도출한다고.
“이번 컬렉션 테마는 초현실주의 아티스트 한스 벨머의 ‘더 돌’이라는 빅토리아 비스크 인형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 여성의 실루엣을 초현식적으로 표현한 ‘Line is refined to a filigree tracery’라는 테마로서 진지하지만 그레인지 야드 특유의 위트를 풀어냈다”
이어 “빅토리안 비스크 인형을 활용해 나치를 반하는 그리고 조롱하는 느낌을 담아낸다. 인체를 왜곡하고 성적인 변형을 가한 것이 포인트다. 또한 다리의 디테일이나 소녀적인 메리제인의 느낌을 살려 그레인지 야드의 색깔을 녹여낸다. 이는 재킷 드레스. 트렌치코트 등 니트 패브릭으로 다양하게 표현 된다”
젊은 소비층부터 5, 60대 어르신까지 직접 짠 니트를 입기 위해 쇼룸을 찾는 이들이 있다는 것에 대단한 만족과 자부를 느끼는 이지은 디자이너. 대중적으로 사랑받을 순 없지만 패스트 패션에 피로감을 느낀 소비자들이 한 올 한 올 만들어낸 실로부터 완성되는 니트웨어를 맛보고 그 가치를 이해해주는 매니아층이 더 두터워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국내엔 손으로 니트를 잘 짜는 장인이 많다. 컴퓨터웨어가 발전하고 중국을 통해 작업돼 들어오는 니트들이 많지 않나. 그에 반에 수작업으로 짜여 만들어지는 니트들은 그 맛이 다르다. 장인과 공장이 숨 쉬는 공간들이 하나씩 없어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기에 장인과 디자이너가 함께 조우해 선보이는 그레인지 야드의 쇼에 대한 자부심이 조금 남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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