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영 기자] 배우 김혜수는 미스김으로 살았다.
천의 얼굴을 가진 여자 김혜수, 그리고 미스김, 김점순, 쑨. 콧구멍을 벌렁대며 괴력을 발휘하다가도 지난날만 떠올리면 홀로 눈물 흘리고, 정열적인 살사 댄스를 출 땐 영락없는 무희로 변신하는 김혜수. 서로 다른 색깔의 캐릭터를 배우 김혜수는 한 인물에 모두 담아냈다. 그리고 진짜 미스김이 됐다.
KBS 2TV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극본 윤난중, 연출 전창근 노상훈)의 슈퍼갑 계약직 미스김은 김혜수가 아니었다면 존재할 수 없는 캐릭터였을지 모른다. 맞춤 정장을 입듯 꼭 맞는 캐릭터를 연기한 김혜수는 촬영 3개월 전 처음 대본을 받아들고 몹시 흥분했다. 대본을 손에 쥔 지 반 나절도 지나지 않아 미스김 역할을 자처했다고. 대본만 보고 출연을 결심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너무 좋았어요. 일단 재밌고. 저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다. 내가 미스김이라면 좋겠다."
김혜수는 미스김이라면 뭐든 좋았다. 그렇게 미스김과의 인연은 시작됐다. 김혜수는 미스김이란 여자는 뭐든지 완벽하게 소화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야 미스김이라는 것. 탬버린 하나를 흔들더라도, 고기를 자르더라도, 생수통 하나를 꽂더라도 가장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는 게 김혜수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미스김이란 인물은 그 어떤 배역보다도 소화해내기 힘든, 난이도 높은 인물이었다.
회마다 새로운 기술을 선보여야 하는 미스김. 기술과 기술 사이에 연관성도 없다. 사무실 잡무부터 굴삭기 운전, 살사, 고기 굽고 자르기, 탬버린 춤 기타 등등. 김혜수는 웬만한 기술을 대역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해냈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전문가들에게 기술을 전수받았다. 굴삭기 운전의 경우, 촬영 당일 날 이른 새벽부터 4~5시간 동안 실제 중장비 기사에게 운전을 배웠다. 살사는 촬영 전부터 전문댄서에게 1대 1 교습을 받아 만들어진 작품이고, 탬버린 춤은 '탬버린 달인'에게도 배웠지만 촬영 일주일 전부터 틈 날 때마다 연습한 노력의 결과였다.
미스김을 위해서라면 아플 틈도 없었다. '게장의 달인' 대도 김병만 선생의 '절대가위'를 찾기 위해 한강에 입수하던 날,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데다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든 날이었지만 김혜수는 힘든 기색 하나 없이 해녀 미스김을 재현해냈다. 유독 쌀쌀했던 3,4월. 촬영장의 추위도 그의 의지를 꺾진 못했다.
변화무쌍한 연기력은 미스김뿐 아니라 김점순, 그리고 쑨의 캐릭터를 표현할 때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같은 사람일까"라고 눈을 의심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김혜수는 그렇게 여리고 약한 김점순으로, 고독한 자유영혼 쑨으로도 살았다. 김점순을 생각하면 저절로 눈물이 솟구쳤고, 쑨이 되면 고독해졌고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매의 눈을 갖지 않고서는 찾아내기 힘든 디테일에도 프로다운 노력을 기울였다. 김혜수가 배우로서 언제 사극에 출연할지 모르기 때문에 귀를 뚫지 않았다는 일화는 워낙 유명하다. 이번 드라마에서는 잡무에 능한 미스김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손톱은 항상 짧고 단정하게 정리했다. 눈빛 연기를 살리기 위해서 절대 서클렌즈를 착용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고수했다. 그만큼 그는 배우의 기본을 중시하는 프로 중의 프로다.
"완벽해 보이고 싶다"던 그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매회 새로운 능력이 공개될 때마다 미스김은 화제가 됐다. 오늘은 또 어떤 능력을 선보일까. 궁금증마저 자아낸 그. 김혜수였기에 가능했다. 미스김의 무표정한 얼굴이나 낮은 톤의 군더더기 없는 말투, 절도 있는 걸음걸이 미스김의 이미지로 형상화되는 모든 것은 배우 김혜수의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회 방영분만을 남겨둔 지금. 김혜수는 말한다.
"방송이 끝나면 사람들이 미스김을 그리워했으면 좋겠어요. 미스김을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하고."
미스김 앓이는 이미 시작됐다. 배우 김혜수 본인도 미스김을 아끼고 사랑한 수많은 시청자들도. 미스김의 비밀과 상처, 그 모든 사연은 5월15일 밤 10시 KBS 2TV '직장의 신' 15회에서 공개된다. (사진제공: KBS미디어/MI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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