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영 기자] 감정이 조금도 없을 것 같던 미스김은 아무도 모르게 곤경에 처한 사람을 너무나도 멋지게 도와주며 일을 말끔히 해결한다. 김혜수도 그랬다.
최근 종영한 '직장의 신'(극본 윤난중, 연출 전창근 노상훈)에서 미스김으로 세 달간 살았던 배우 김혜수는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의 섹시스타'답게 여느 명화에서 튀어나온 듯 차원이 다른 외모를 뽐냈다.
사실 그는 자신만의 확고한 연기영역을 구축해낸 범접할 수 없는 포스의 톱스타지만 겸손은 기본이었고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묻어나왔다. 여기에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처럼 똑부러지는 말투로 1을 물어보면 100 그 이상을 답하는 관록은 물론이고 다소 민감한 질문에도 옆집 언니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는 다정함과 인간미도 갖췄다.
아직 '직장의 신' 미스김에 젖은 듯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의 성대모사까지 깨알 흉내낼 정도로 소탈한 배우 김혜수를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미스김이라는 게 '미스'라는 걸 강조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성씨가 김씨잖아요. 대다수의 누군가라는 거죠. 전 익명의 누군가라는 것이 너무 좋았어요. 익명을 자처하는 인물로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있는 거잖아요."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캐릭터였다. 비정규직을 자처한 미스김은 원더우먼을 능가할 정도로 각종 자격증을 들이밀며 모두가 원하는 사람이 돼 많은 직장인들에 통쾌함을 선사했다.
그는 "내 친구들도 직장인이 많다. 친구들은 내게 '넌 특혜 받은 계약직'이라고 공격하기도 하고 애환을 울부짖기도 한다"면서 '직장의 신'을 통해 직장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같은 시간에 매일 똑같은 자리에서 비슷한 일을 하고 보장받지 못하는 귀가시간을 가지고 있잖아요. 정말 엄살 부리지 말고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시 생각했죠. 사실 우리 일도 쉬운 일이 아니라 지칠 때가 있는데 대다수의 삶에 비하면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내가 하지 못한 부분까지 칭찬을 받을 때가 있거든요."
3년 만의 브라운관 복귀였다. 고민도 많았을 터. 하지만 어디에서도 본 적 없던 미스김 캐릭터를 본 김혜수는 끌림을 느꼈고 특히 1회, 오지호(장규직 역)와 만나는 퍼스트 클래스 신을 본 순간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첫 회를 보는데 지문이 기가 막히고 캐릭터가 명확하게 잡혀 있더라고요. 이 작가가 내 코드랑 너무 잘 맞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작품이 너무 좋아서 소속사에 문자로 '나 이거 하는 걸로'라고 바로 말했어요. '이게 언제 어디서 하는지, 작가 감독은 누군지, 출연료는 얼만지' 질문하지도 않았죠. 배우는 이런 작품을 만날 때 희열을 느껴요. 더군다나 첫 느낌을 끝까지 느끼기 쉽지 않은데 '직장의 신'은 그랬어요."
예상치도 못했던 김혜수의 변신은 성공적이었다. 버스도 운전하고 살사도 추고 노래방에서 탬버린을 흔들던 미스김은 '다만'체와 맨손체조, 그리고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빨간 내복을 입으며 고고한 여배우의 이미지를 날려버렸다.
그는 "유행어 '다만'은 대본상에 있던 거고 억양은 자연스럽게 연기하다보니 언제부턴가 조성됐다"면서 "'직장의 신’은 기본적으로 코미디지만 코믹적인 요소가 있었던 거지 내가 코믹을 의식하고 연기할 필요가 없었다. 대본이 그만큼 재밌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기상천외한 패러디도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사실 내가 모르는 패러디도 많다"고 말문을 연 그는 "김연아의 '죽음의 무도' 같은 경우는 '죽음의 무도 마지막 장면처럼'이라고 써 있어서 동영상을 찾아보고 따라했는데 김연아처럼 우아하게가 아니라 미스김의 방식으로 표현해봤다"고 회상했다.
호쾌하게 엔터키를 누르는 미스김만의 타이핑 역시 "인터뷰할 때마다 기자들이 빨리 타이핑하는 게 신기했다. 사실 난 독수리타법이다. 특히 어떤 기자분은 말하는 속도를 그대로 따라서 치고 심지어 다음 말을 기다리기까지 하더라"라면서 "그 부분을 생각해서 미스 김의 타이핑을 만들어냈다. 대신 미스 김은 현란하고 박력 있게, 절도 있게 치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사실 김혜수는 이름만 들어도 보통 배우들의 '손이 저절로 모아지는' 데뷔 27년 차 대배우다.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오지호도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스스로 스스럼없이 망가져주는 김혜수의 열연 덕에 NG도 많이 나긴 했지만 현장은 더할 나위 없이 화기애애했다. 특히 현장에서 모든 스태프들이 김혜수를 '미스 김 언니, 미스 김 누나, 미스 김씨, 혹은 서김이 형'이라고 불렀다고.
"스태프들이 나를 아껴줬어요. 드라마 한 편을 같이하면 정말 정이 많이 드는데 이번 드라마는 특히 더 그랬죠. 다들 영민하고 연기도 각자의 캐릭터에 맞게 잘 해요. 고과장님, 부장님까지 분위기가 좋았죠. 특히 고과장님 인기가 많아요. 눈이 정말 애기 같으신데 다들 '김양'하고 부르는 고과장님의 성대모사를 해요. 얼굴만 봐도 마음이 확 가고 짠하다고나 할까요."
드라마는 끝났지만 '직신'들의 친분은 끊이지 않았다. 그들만의 단체 카카오톡방은 실수로 나가게 되더라도 계속 초대되면서 지금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함께 MT도 가고 조권(계경우 역)이 출연한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를 단체로 관람하는 등 돈독함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김혜수는 '직장의 신'에서 거의 절대적인 존재였지만 함께 출연한 배우는 물론이고 작가, 조명, 편집 등 드라마의 성공을 절대 자신의 공으로만 돌리지 않는 겸손함을 보여줬다.
그는 "배우가 연기로 캐릭터나 작품을 완결하는 거긴 하지만 베이스는 대본이고 스태프들의 많은 도움을 받아서 완성되는 결과물이기 때문에 나만 죽도록 잘한다고 절대 미스김의 성과가 이렇게 나오는 게 아니다. 또한 배우들 간에 모종의 응원과 실질적인 도움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미스김이라서 더 열심히 한 건 아니다. 계속 열심히 했다"면서 "작품이나 연기에 대한 평가가 단지 그 배우의 몫만은 아니다. 많은 도움을 받고 거기에 따른 칭찬까지 올 때가 있고 나는 열심히 했지만 전반적인 조화에 갭이 있어서 결과적으로 연기 자체가 저평가될 수 있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역할들로 변신을 꾀한 김혜수. 그는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을까.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다'고 정해놓는 편은 아니고 잘 살고 싶어요. 잘 사는 게 떵떵거리고 잘 사는 게 아니라 자발적인 미스김이듯이 자발적인 저의 의지와 선택으로 인간 김혜수를 잘 운영해서 살아가고 싶고 결국은 그게 양질의 연기자로서의 가능성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믿어요." (사진: bnt뉴스 DB) ★ 인터뷰: 김혜수가 말하는 '직장의 신' 러브라인, 오지호 vs 이희준 <!-- sns 보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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