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영 기자] "미스김은 김점순이라는 이름이 촌스러워서 감춘 게 아니에요. 단지 대다수의 누군가 중에 한 명일 뿐인 거죠. 사실 대부분이 고용주가 아닌 사회적인 약자들이잖아요. 미스김이 비현실적인 일을 하는 가공된 캐릭터지만 보통의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품고 있는 걸 실현하기 때문에 미스김에 열광했던 것 같아요."
최근 '직장의 신'(극본 윤난중, 연출 전창근 노상훈) 종영 후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김혜수는 말하는 내내 미스김 그 자체였다. 그만큼 '미스김'에 대해 꼼꼼히 분석했고 푹 빠진 결과 체내화된 듯 미스김이 스며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이 드라마는 '미스김, 김혜수를 위한 드라마'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매회 미스김은 위기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별별 방법을 동원해 척척 해결하며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드라마가 미스김에 집중되면서 러브라인은 다소 소홀하다는 평도 솔솔 나왔다. 김혜수가 보는 '직장의 신'의 러브라인은 어땠을까?
"우리 드라마에서 다룰 수 있는 정도의 관계였다고 생각해요. 드라마에 남자, 여자주인공이 사랑만 하려고 나온 건 아니잖아요. 장르에 맞게 그 정도로만 표현했는데 그 정도로 성과가 있을 수 있는 그 자체가 성과인 것 같아요."
특히 미스김을 둘러싼 러브라인은 마지막에 휘몰아치다가 결국 떠났던 미스김이 장규직(오지호)이 있는 회사로 가 다시 만날 듯한 느낌을 주며 마무리됐다. 김혜수는 "나도 장규직과 미스김을 엮으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각자의 히스토리가 있지 않느냐. 무정한 팀장(이희준) 같은 경우, 살아가는 성향 자체가 다르다. 자신이 피해를 보더라도 남을 배려해야 안도감을 느끼고 정의를 외면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미스김처럼 강인하고 이상적인 모습을 동경해왔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경했던 대상의 약하고 여린 면과 상처들을 느꼈을 때 인간적으로 연민이나 애정, 호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 특히 무정한의 '사랑하지만 떠나보내고 지켜보는 것도 사랑의 한 방식'이라는 대사 역시 "미스김에게 거절 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액면 그대로 무정한의 성격이 담겨 있다"고 전했다.
김혜수는 장규직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는 소중한 사람을 잃는 미스김과 같은 상처를 갖고 있지만 다른 선택을 한 캐릭터'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스김은 철저히 나를 단련시켜서 그만큼 해내는 여성이고 장규직은 사회적인 부조리한 시스템 때문에 어머니가 희생당하고 그 여파로 아버지까지 자살했기 때문에 '나는 절대 버림받지 않고 철저히 적응한다'는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면서 "세계관과 살아온 게 다르기 때문에 부딪치지만 결과적으로는 과거가 드러나면서 끌린 것이다"고 밝혔다.
특히 김점순이 미스김이라는 이름으로 익명을 자처한 것에 크게 공감했던 김혜수는 장규직이 '김씨'라고 부르는 것에도 의미를 뒀다.
"'어이 김씨', '야 김씨'라고 부르는 건 미스 김을 여자로도 보지 않겠다는 뜻이에요. 근데 맨날 바지나 입고 힘센 사람을 우연히 마추픽추에서 보니 매치가 안 되는 거죠. '나도 모르겠어 왜 끌리는지'라는 대사는 본능적으로 끌리는 것을 표현했다고 생각해요. 미스김 역시 장규직이 고백을 해서 혹은 장규직을 내가 지키지 못한 상사의 아들로 생각한 게 아니라 나와 같은 과거와 상처를 가지고 사는 외로운 개체로 본 거죠."
열린 결말에 대해서는 "만약 가스 사고 현장에 장규직이 아닌 정주리가 있었어도 미스김은 그곳으로 달려갔을 것이다"라며 "(장규직과) 멜로라인을 조장하는 게 아니라 결과적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또 부조리한 시스템에서 희생됐지만 살아남은 자들에 대한 위로가 아니었을까"라면서 결말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사실 드라마의 첫 번째 남자주인공은 오지호로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미스김이 장규직과 연결되는 것이 맞지만 의외로 다정다감하고 착한 무정한과 연결되기를 바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는 "기자 분들에게 들어서 그 사실을 알았다"면서 "드라마 하면서 주변 분들에게 연락을 많이 받는데 그분들을 보니 남자 취향이 갈리더라. '누구하고도 안 됐으면 좋겠다'는 반응도 있고 '개인적으로 이희준은 좋지만 빠마머리랑 있는 게 더 재밌어' 이런 반응들도 있다"고 웃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희준 같은 경우엔 캐릭터보다 이희준 그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사실 나도 이희준이 무정한보다 낫다고 생각해요. 주변을 배려하고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건 무정한과 같지만 무정한 보다는 더 진중한 남자랄까요. 그런데 그걸 시청자들도 느끼는 것 같아요. 아마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상사를 핑계로 이희준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요."
'모태솔로'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세심했던 무정한에 여자들이 열광했다면 초딩멘탈에 빠글빠글한 '빠마머리'가 인상적인 장규직은 주로 나이 어린 사람들이 선호했다.
"조카들이나 친구의 자식들 등 대개 연하들은 제일 재밌는 사람이 '빠마머리'래요. 미스김은 2위고 그다음은 계경우 삼촌(조권)이라고 하더라고요. 어린 조카는 내게 '왜 빠마머리 삼촌이 혜수 고모를 괴롭히는 거예요?'라고 묻기도 하던데요?"
오지호와 이희준, 둘은 캐릭터도 다르지만 겉보기로는 생김새도, 성격도 전혀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누가 더 좋았을까?
이 질문에 김혜수는 "둘 다 괜찮다"며 "오지호는 장규직처럼 철없지 않다. 성실하고 대본을 보면 정갈한 면도 있고 생각도 깊어 '인간 오지호'는 매우 매력적이다. 쾌활하며 남성성도 넘친다. 현장이 즐거운 건 오지호의 공이 컸다"고 극찬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오지호는 늘 웃는다. 억지로 웃는 게 아니라 천성적으로 선하고 능동적이다"라면서 "사실 처음에 쇼 프로에서 봤을 땐 말이 없고 너무 착해 오지호가 장규직 역할을 맡았을 때 의아했는데 처음 대본 리딩 현장에서 깜짝 놀랐다. 개그 센스가 정말 좋다"라며 그의 인성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았다.
이희준에 대해서도 "굉장히 좋은 배우다. 매우 신중하고 진지하고 의지가 강하다. 재능도 많고 음성도 좋고 이상적인 미덕을 많이 갖춘 사람이다"라고 칭찬하면서 "오지호-이희준 조합도 좋았고 캐릭터가 다른데 둘 다 잘 살았다"고 덧붙였다.
칭찬을 일삼던 김혜수였지만 캐릭터에 대해서는 냉정(?)했다. 그는 "실제 캐릭터로는 무정한도 싫고 장규직도 싫다. 일하면서 만나는 정도지 사적인 만남을 유지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사진: bnt뉴스 DB) ★ 인터뷰: 김혜수, 미스김이 퍼스트클래스에 탄 순간? "나 이거 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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