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해가 푸르게 보이는 靑年 조달환의 '인생학개론'①

입력 2013-09-25 12:04  


[윤혜영 기자] "이런 인터뷰 처음이죠?"

KBS '우리동네 예체능' 녹화 후 편안한 차림으로 나타난 배우 조달환은 저렇게 물었다. 그의 말처럼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눈 것도, 질문도 하지 않았는데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경우도 이전에는 없었다.

마치 동네 슈퍼에 라면을 사러 나가는 듯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보였던 조달환. 약간은 두서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그가 몸으로 이리저리 부딪쳐서 자신만의 철학을 확고히 만든 느낌이었다. 인터뷰 내내 그에게는 자신이 직접 경험하며 구축해놓은 자신만의 세계가 그대로 녹아있었다.

하지만 처음 마주한 낯선 인터뷰이에 도대체 어떻게 써야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약 2시간 동안 조달환이라는 사람의 인생을 담은 책을 한 편 읽은 듯했다.

◆ 제 1장, 날카로웠던 어린 시절
쓰디 쓴 경험만큼 인생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게 또 있을까. 어렸을 때 돌아가신 아버지, 평생 월세방 등… 이미 인생의 쓴맛을 너무 많이 봐서일까. 어딘지 다른 차원에서 온 도인 같았던 조달환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가감없이 털어놨다.

"8살 때부터 엄마랑 장사를 했어요. 최소한 연기자 중에서 갯지렁이 아르바이트는 저밖에 안 해봤을 걸요? 하나에 5백원씩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했거든요. 중학교 때는 산업체에서 발암물질 나오는 페인트를 벗겨내는 작업을 했어요. 경험이 많죠. 저는 살아야했으니까. 생활고가 있었으니까. 그렇게 살지 않으면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거든요."

'가정사'는 보통 공개하기 꺼려한다. 하지만 민감한 부분까지 스스럼 없이 밝힌 그는 앞서 TV 프로그램에서도 살아온 얘기를 공개한 바 있다.

"치부를 드러내면 안된다고 하잖아요. 근데 치부를 드러내면 편해요. 비밀 감추는 게 얼마나 힘들어요. 저도 아트테라피를 하지만 우울증, 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대부분 어렸을 때 자기를 치료하지 않았던 거예요. 5살에 자아가 형성되거든요. 그때 엄마가 어떤 단어를 사용하고 어떤 철학으로 키웠고 어떤 학대, 상처를 받았는지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져요. 지금 즐겁고 싶으면 그때를 버리고 사과해야 돼요."

조달환 역시 어릴 때 아버지로 인해서 혹독하게 자랐다고 했다. 사실 그의 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간암에 복수가 차면서 5년 이상을 투병하다 결국 유명을 달리했다. 비록 조달환은 심하게 상처를 받았지만 그는 '아버지가 나쁜 게 아니라 그저 병을 얻은 것 뿐'이라며 아버지를 이해했다.

그는 "이후에 방어해줄 수 없는 나에게 미안해서 사과했다. '널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라고. 그렇게 치료하고 다독여 주는 거다. 그리고나서 다시 시작하면 점점 치료가 되는 거다"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반대로 어머니는 '평생 월세로 살지만 불행하다고 하지 않는다'고 해서 관심을 모았다. 어머니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표한 조달환은 "어머니가 항상 그러신다"라며 "전셋집으로 가서 행복하면 지금은 불행한 거냐고. 집 없으면 어떻고 평생 월세 살면 어떠냐.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즐거우냐가 중요한 거다"라며 계속해서 소신을 전했다.

"성인이 돼서 사람이 만난다는 건 죽을 고비를 세 번 이상 넘기고 만나는 거래요. 그러니 진솔하고 감사해야되는 거죠. 돈은 발이 네 개고 사람은 두 발이기 때문에 아무리 쫓아가려고 해도 쫓아갈 수가 없대요. 두 다리만 달고 정직하면 네 발 달린 돈이 따라오는 거죠. 그래서 신경을 아예 안 써요. 주변에 돈에 노예가 된 사람 많죠. 그럼 불행해지기 시작해요. 그런 사람들만 또 모이거든요. 전 지금도 15년 된 60만원짜리 마티즈를 몰고 다녀요."


◆ 제 2장, 배우의 길… 그리고 靑年 오달수
말하는 내내 어딘지 독특했던 조달환은 주변의 권유로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어렸을 때 '목소리가 독특하다' 혹은 배우지 않았는데 '화술이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라면서 "연기는 본인이 하고 싶다고 하는 게 아니라 주변에서 만들어주는 거다. 개그맨도 옆에서 '너 웃기다'해서 하는 거다"라고 전했다. 그렇게 배우의 길에 들어선 조달환은 연기에 대해 남다른 철학이 있었다.

"사람이 주는 기운이 있대요. 우리가 흔히 연기를 하고 있을 때 어떤 한 사람이 들어오잖아요. 그럼 배우들은 공기가 달라지는 걸 느낀대요. 저는 배우를 꿈꾸는 연기자이긴 한데 그걸 느껴야 된대요. 대사를 치려고만 하지 말고 이 사람이 가져온 공기를 받아줘야 되는 거예요. 이 사람이 뛰어왔든 걸어왔든 나랑 호흡이 다르잖아요. 그걸 받아줘야 되는 거죠."

겸손하게 말했지만 사실 조달환에게는 연기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하는 것마다 큰 주목을 받고 있는 탤런트 클라라 역시 그의 제자다. 연기수업에 대해 조달환은 사람들과 수업과 상담의 경계를 넘나들며 감정을 교류한다고 전했다.

"연기수업을 하지 않고 감정수업을 해요. 그러지 않고서는 내 앞에서 연기를 보여주려고 하지 않거든요. 배우들은 예쁜 척 하면 안돼요. 진짜 편하면 뭐든지 자연스럽게 나오거든요. 관객들은 예쁘고 아름다운 걸 바라는 게 아니에요. 그건 연예인이죠. 배우들에겐 인간적인 걸 바라죠. 그래서 영화 끝나고 돌아갈 때 캐릭터가 보이면 안돼요.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가 궁금해지는 게 배우에요. 연기가 일상이 되고 일상이 연기가 되는 순간, 배우가 되는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예요."

특히 그는 3년 전, 영화 '공모자들'(감독 김홍선)을 통해 만난 오달수에 대해 쉬지 않고 언급했다. 그는 "오달수 선배님은 친하고 가깝다. 일상에서 만나도 즐겁고 서로 추구하는 게 같다. 같이 연극을 하면서 돈이 결국엔 내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돈이 처음부터 네 거였어? 돈은 빚이야'라고 하시더라. 그분이 왜 남들한테 사랑 받는지 알게 됐다"라며 "닮아가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옷은 남루해도 그분의 인상이 패션의 끝이다. 어떤 명품보다 그분의 얼굴이 더 좋다"고 무한한 믿음을 보였다.

그러면서 조달환은 TED 형식의 강연프로그램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자신이 했던 강연의 마지막 부분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달수 선배님이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하셨어요. '달환아 청년이 무슨 뜻인지 아나?', '무슨 뜻인데요?', '그것도 모르고 연기를 해? 해가 떴어. 해를 봐. 해가 푸르게 보여. 그게 청년이야' 푸를 청(靑)-해 년(年) 그게 청년의 뜻이래요. 그만큼 많은 감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거죠. 사람은 동심을 잃는 순간 늙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마음이 늙는다는 얘기고 마음이 늙으면 외모도 빨리 늙기 시작하는 거죠. 저도 이제 조금씩 해가 푸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일에 떠오른 태양이 여러분에게도 조금씩 푸르게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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