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 차명에 과학이 숨어 있다면 고개를 갸우뚱거릴 사람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K’ 차명 도입이 확정된 데는 과학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사실 기아차가 알파벳과 숫자를 조합한 차명을 도입한 배경은 차명의 한계 때문이었다. 수많은 자동차회사가 다양한 차명을 등록해 놓은 탓에 마땅히 쓸 만한 이름이 없었고, 결국 알파벳과 숫자를 사용키로 정한 뒤 여러 차명을 놓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당시 신규 차명에 대한 사람들의 뇌 반응을 살폈던 곳은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다. 실험을 주도한 정재승 교수팀은 한국인 100명, 외국인 100명을 대상으로 여러 차명에 대한 설문을 취합한 뒤 자기공명영상장치(fMRI)를 통해 참가자들의 뇌 반응을 연구했다. 특정 브랜드를 볼 때 뇌의 선호와 혐오 영역 변화를 살폈더니 'K, T, N, Y, Z' 등 5가지가 도출됐다고 한다. 그 중 마지막까지 경합이 치열했던 글자는 'T'와 'K'였지만 'T'는 경쟁사 상표등록이 이뤄져 결국 'K'가 선택됐다.
지금이야 한풀 꺾였지만 K7은 등장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심지어 현대차 그랜저 아성을 넘으며 승승장구하기도 했다. 당시 정재승 교수는 동아비즈니스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K7 차명에 대한 소비자들의 뇌 반응이 뜨거워 성공은 출시 전부터 예견된 것"이라고 하면서도 "차가운 느낌이 있어 지나치게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의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는 것 같다. 올해 9월까지 K7은 1만9,000대에 그친 반면 현대차 그랜저는 6만6,000대가 팔렸다. 소비자들의 뜨거웠던 뇌 반응의 결과는 2년 정도만 지속됐을 뿐 그 이후는 계속 차가웠기 때문이다. 정 교수의 지적대로 지나치게 강한 어감이 오히려 반감을 일으킨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뜨거웠던 순간적 뇌 반응의 열기는 식은 지 오래다. 만약 순간 외에 지속적 반응도 측정할 수 있었더라면 열기가 식지 않는 방법을 찾아냈을 것이지만 아쉽게도 그런 결과는 없는 듯하다.
한번 온도가 떨어진 K7은 기아차가 그 어떤 마케팅을 도입해도 다시 뜨거워지지 않는다. 그 이유를 두고 기아차 내부에선 지나치게 역동만이 강조된 점이 문제로 떠오르곤 한다. K7 구매층의 전반적인 특징이 역동보다 품격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다는 얘기다. 초기 뜨거웠던 반응은 대다수에 섞여 있던 역동 선호층이 몰려 나타난 현상이고, 이들 대부분이 구매를 마치자 품격 선호층이 시선을 주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오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아차가 마땅히 꺼내들 카드는 많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주 구매층인 40-50대가 역동 선호층으로 변하기도 쉽지 않다. 이들에게 역동이란 자칫 무모한(?) 모험일 수도 있어서다. 앞만 보며 달리다 이제야 간신히 자기만의 울타리를 친 사람들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기아차가 해야 할 것은 분명해진다. 구매층의 성향이 변하기를 마냥 기다리는 게 아니라 역동으로 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다. 40-50대도 때로는 클럽을 가고 싶고, 그들만의 방식대로 젊음을 누리려 한다. 속마음은 모르면서 그저 골프 대회 열어주는 것으로 마음을 잡으려 한다면 온기는 더 식을 지 모른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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