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오토타임즈 10년, 자동차산업 변천사를 보다

입력 2013-12-06 08:30  


 지난 10년간 국내 자동차업계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매년 되풀이하는 노사문제, 쌍용자동차 파업, 국제 유류가격 급등, 자동차 보유대수 증가 등이 그것이다. 수입차가 내수시장 점유율 10%를 돌파했고, 다채로운 차종도 등장했다. 지난 10년의 자동차산업을 돌아본다. 편집자

 ▲2003년 





 가장 큰 뉴스는 '자동차업계 노사협상 난항'이다 그 해의 노사협상은 주 5일제 근무, 노조의 경영참여, 비정규직 처우개선 등이 핵심 쟁점이었다. 협상과정에서도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특히 노조의 경영참여를 부분적으로 허용, 사회적으로 노조 요구가 지나치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따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당시 노사관행을 합리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2004년
 연초부터 급증세를 보이던 자동차 수출실적이 사상 처음으로 3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2004년 국내 전체 수출 예상액인 2,450억 달러의 12.7%를 차지하는 수치로, 자동차산업이 국가 기간산업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특히 현대차는 1976년 에콰도르에 포니 6대를 처음 수출한 이후 28년만에 수출누계 1,000만 대를 달성했다. 그러나 내수시장은 경기침체, 유류가격 급등, 가계 신용불량 등으로 고전했다. 자동차 판매대수도 IMF 때인 1998년을 제외하고 1991년 이후 최저인 110만 대에 그쳤다.

 ▲2005년 





 국내 자동차시장에 디젤 승용차시대가 열렸다. 기아차 프라이드를 시작으로 현대차, 푸조, 폭스바겐 등이 디젤 승용차를 속속 출시한 것. 국내 자동차 보유대수는 1,500만 대를 돌파했다. 자동차 1대 당 인구는 3.2명(승용차 4.5명)으로, 본격적인 1가구 1차 시대에 진입했다. 명실공히 자동차가 생활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2006년 
 국내 승용차 시장에서 수입차 판매액 비중이 13.6%로 급증했다. 특히 배기량 3,000㏄가 넘는 승용차는 판매액 비중이 무려 52.6%로 나타났다. 수입차 판매대수 기준으로 2000년 이후 연평균 47.6%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자동차시장 점유율은 4.3%까지 상승했다. 한편, 자동차번호판이 2004년 1월부터 2열 배열의 전국 번호판으로 교체됐지만 세련되지 못하다는 이유로 퇴출됐다. 여론에 따라 11월부터 흰색 바탕에 검정색 글씨를 사용한 1열 배열의 유럽형 번호판을 도입했다.

 ▲2007년 





 국내외 자동차 생산이 연간 기준으로 사상 처음 500만 대를 넘어섰다. 이는 국내 생산실적이 405만 대로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해외 생산분도 기아차 슬로바키아공장 가동으로 115만 대를 상회했다. 이에 따라 한국차의 세계 생산 점유율은 7.2%까지 높아졌다. 생산이 늘어난 건 자동차업체들의 노사 무분규 타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현대차 노사는 10년만에 임금과 단체협상을 무분규로 타결했다. 쌍용차, GM대우(현 한국지엠), 기아차도 무분규 협상을 마치거나 조기 마무리했다.

 ▲2008년





 '저탄소 녹색성장'이 향후 60년간 새로운 국가비전으로 제시되면서 친환경 고효율 그린카 개발을 본격화했다. 각 회사는 연구조직 확대 등을 통해 하이브리드카 양산 시점을 2009년 하반기로 앞당기고, 클린 디젤 조기 상용화에 주력했다. 1월1일부터 경차 범위를 배기량 기준 800㏄에서 1,000㏄로 확대했다. 여기에 LPG 허용, 유류세 환급 등이 더해져 경차 판매실적이 13만5,000대까지 늘었다. 이는 전년 대비 150% 증가한 수치다.

 ▲2009년
 쌍용차가 77일간 장기파업으로 고통을 겪었다. 회사의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노조원들이 평택공장을 점거하면서 시작했다. 정부가 중재에 나섰고, 결국 경찰력 투입이라는 극단적인 처방을 내렸다. 이 밖에 현대차와 기아차가 야심차게 선보인 LPi 하이브리드가 시장에서 참패했다. 개발기간 3년7개월, 개발비용 2,509억 원을 투입한 대형 프로젝트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아픔이 컸다.

 ▲2010년 





 토요타 대규모 리콜사태가 펼쳐졌다. 이후 각 회사마다 작은 리콜이 이어지면서 토요타 리콜이 일종의 점화작용을 한 게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국내에선 무소불위 판매를 자랑하던 현대차 쏘나타가 처음으로 기아차 K5에 역전당했다. K5는 디자인경영을 앞세운 기아차의 총아로, 출시 2개월만에 중형 세단 1위라는 기염을 토했다. GM대우는 마티즈에 핑크색을 추가해 인기를 끌었다.

 ▲2011년





 토요타를 비롯해 닛산, 혼다 등 일본 완성차업체들과 부품회사들이 지진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생산시설이 멀쩡한 업체들도 발전소 붕괴로 전력 사용이 원활치 않아 제품 생산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여파로 일본 내 업체는 물론 일본에서 부품을 수급하는 글로벌 자동차회사들이 생산차질을 빚었고, 이후 '수입선 다변화전략'이 화두가 됐다. 그 사이 현대·기아차는 해외시장에 신차를 적극 내놓고 점유율을 높여갔다.

 ▲2012년 





 자동차 수출(부품 포함)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EU 재정위기 등 글로벌 경기부진에도 320만 대의 실적을 기록한 것. 자동차부품을 포함한 수출액은 718억 달러에 달했다. 지속적인 품질향상, 수출시장 다변화·고부가가치화, 한·EU FTA와 한·미 FTA 발효로 가격경쟁력·대외신뢰도 향상 등이 요인으로 꼽혔다. 그러나 현대·기아차는 미국에서 거액의 집단소송에 휘말렸다. 제품 13종 효율을 과장해 팔았다는 것. 회사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판매한 2011~2013년형 제품 13종에 대해 추가 연료비를 보상키로 했으나 소유주들이 보상을 거부하고 소송을 냈다. 소송은 아직 진행중이다.

 ▲2013년
 2011년 2,150억 원의 영업손실, 2012년 전년 대비 판매 40% 이상 하락 등 극심한 부진을 겪었던 르노삼성차가 2013년 새로운 기지개를 켰다. 한 때는 매각설까지 불거졌으나 닛산 로그의 생산이 본격화됐고, 르노-닛산그룹과 미쓰비시가 합작하는 차세대 D세그먼트 생산도 담당하게 된 것. 내수에서는 무너진 판매를 회복하는 일에 시동을 걸었다. 전기차 판매도 본격 시작, 시장 선점에 들어갔다. 회사 인수 문제로 오랜 기간 고생했던 쌍용차 역시 부활의 날개를 폈다. 레저를 타깃 삼아 시작한 제품 마케팅이 큰 효과를 본 것. 대부분 SUV 제품으로 이뤄진 쌍용차였기에 가능했던 전략이다.

박진우 기자 kuhiro@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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