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문인들의 멋스런 인장들이 한 자리에

입력 2014-01-19 18:18   수정 2014-01-19 18:13


-충남 예산 한국문인인장박물관

 한 때 외국 여행을 다녀온 이들이 그 나라의 인상적인 장면을 꼽을 때 '작은 박물관'에 대한 언급을 자주 했다. "선진국이 달리 선진국이 아니라 도시마다 마을마다 크고 작은 박물관이 꼭 자리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박물관은 한 나라의 문화수준을 말해주는 잣대가 됐다. 그런 기준에서라면 이제 우리나라도 문화 선진국이라 할 만큼 전국 곳곳에 크고 작은 박물관이 많이 자리하고 있다.

 경기도 부천이나 강원도 영월처럼 아예 박물관 고장임을 표방하는 지방자치단체가 있는가 하면 작은 도시와 마을, 인적 드문 외진 곳에도 작고 소박하나 이색적인 주제의 박물관이 곳곳에 있다. 충남 예산군 광시면 운산리에 위치한 한국문인인장박물관이 바로 그런 곳이다.






 박물관이라면 으레 눈에 띄는 외양과 안내표지판을 세워 멀리서도 한눈에 알 수 있게끔 하지만 이 곳은 그렇지 않다. 눈여겨 보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칠 만큼 그저 평범한 가정집이다. 더욱이 요즘같은 겨울철엔 이정표며 안내판이 눈 속에 묻혀버려 더더욱 길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소박한 외양이다.

 하지만 이 곳은 작은 박물관이 왜 존재해야 하는 지를 전시로 보여주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해주는 공간이다. 소설가 김동리, 오영수며 청록파 시인이라 일컫는 박목월·조지훈·박두진을 비롯해 한국 근·현대문학사를 주름잡았던 대표 문인들의 인장이 한 자리에 있다.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의 관인과 조선시대의 인장, 세계 각국의 인장 등도 볼 수 있다.






 사실 '인장'이란 용어를 요즘은 잘 안쓸뿐 더러 젊은 세대에겐 낯설고 생소한 단어인데, 쉽게 말하면 도장인 셈이다. 개인이나 관직, 장서, 서화 등에 표식을 해 증명으로 남기기 위해 만들었다. 최근들어 도장도 사인으로 대체하는 추세라 인장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있으나 이 곳은 그러한 인장의 가치를 새롭게 느끼게 해준다.

 한국문인인장박물관은 경기대에서 교편을 잡은 소설가 이재인 교수의 인장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만들어낸 결실이다. 이 교수가 인장에 관심을 갖게 된 건 10대 문학소년이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헌 책방에서 발견한 김소월 시집에서, 소월이 스승인 김억 선생에게 드리는 글을 쓴 뒤 서명하고 낙관을 찍었는데 그 낙관이 더없이 보기 좋았다.
 
 그 후 20대 때 소설가 오영수 선생의 제자로 그의 집을 드나들면서 서재에 있는 희귀한 인장을 보았다. 거북이가 정교하게 조각된 인장이 너무도 신기해 갈 때마다 어루만지니 오영수 선생이 그 인장을 가져가라고 했다. 그 때 얻은 인장이 이 곳에 전시돼 있는, 바로 흥선대원군의 인장이다.






 이렇게 시작된 이 교수의 인장 수집은 1,000여 과가 넘고, 지난 2000년 자신의 고향인 이 곳에 한국문인인장박물관을 열게 돼다.

 인장은 보통 나무나 돌, 수정, 금, 뿔, 상아 등에 조각한다. 모양 역시 흔히 '막도장'이라고 부르는 것에서부터 원형 인장, 사각 인장, 주먹만한 초대형 인장, 조형미와 회화성을 두루 갖춘 인장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백옥으로 만들어져 눈길을 끄는 김동리 선생의 인장을 비롯해 염상섭, 현진건, 김동인, 김유정, 이효석, 최서해, 안수길, 오영수, 노천명, 박종화,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 서정주, 조연현, 조병화, 이형기, 이문구… 등등 한국 근·현대 문학인들의 인장이 망라돼 있다. 작고 문인뿐만 아니라 생존 문인들의 인장도 전시됐다.






 이와 함께 고려 및 조선시대 인장과 수양대군, 추사 김정희 낙관, 흥선대원군 인장과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스탬프, 덴마크 국왕실 문장, 뉴질랜드 우정국 직인도 볼 수 있다.






 건물 2층으로 올라가면 나무도장으로 만들어진 우리나라 지도 모형이 눈길을 끈다. 입장료 대신 찾아오는 문인들에게 막도장을 하나씩 가져오라고 해 대한민국 지도를 만들고 있다. 박물관 주변에는 다양한 모양의 문학비도 눈에 띈다. 이 지방 문인들의 문학비와 시비다. 계절 좋은 때에는 산책로를 따라 문학의 향기에 취할 수 있다.






 조용하고 한가로운 농촌마을에 숨은 듯 자리한 한국문인인장박물관은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아름답고 가치있는 박물관의 전형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찾아가는 요령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당진~대전 고속도로로 갈아타 예산 수덕사 인터체인지로 나와 21-619-29번 도로를 탄다. 예산터미널에서 광시를 거쳐 청양으로 가는 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 폐교에 꽃피운 신비한 인도 미술 세계
▶ 구한말 비운의 삶 묻고 잠든 황실사람들
▶ 흐르는 세월 속에 저무는 또 하나의 가을
▶ 강변길, 호숫길 거닐며 만추의 서정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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