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파일]자동차, 마이너리티를 응원한다

입력 2014-01-06 10:05   수정 2014-01-06 10:00


 지난해 자동차 업계에서 유독 두드러진 현상은 다양한 차종이 국내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는 점이다.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그 동안 등한시됐던 수입 소형차가 다수 출시됐고, 가솔린 미니밴 등 틈새 차종도 자리잡았다. 폭스바겐 골프를 필두로 다양한 수입 해치백은 외연을 넓혔다. 연초 업계에선 2012년 대비 신차 부재를 걱정했지만 수억원을 호가하는 슈퍼카부터 3,000만원대 소형 오픈카까지 선택의 폭은 그 어느 때보다 넓어졌다.






 국내 5개사도 독특한 차종을 선보였다. 쌍용차 로디우스 후속으로 등장한 코란도 투리스모는 아웃도어 열풍에 힘입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쉐보레 트랙스는 소형 CUV라는 다소 낯선 장르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생산은 소수에 그쳤지만 현대차 스타렉스 캠핑카도 완성차 업체에선 찾아보기 힘든 시도였다. 주행의 즐거움을 강조한 아베오RS나 개성 넘치는 박스카 기아차 신형 쏘울은 수입차에 쏠린 젊은 소비층 공략의 첨병으로 나섰다, 연말 출시된 르노삼성차 QM3는 디자인과 고효율 디젤을 무기로 올해 본격적인 시장 공략에 나설 계획이다.

 그러나 개성 넘치는 신차 중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둔 차종은 소수에 불과했다. 마니아들의 열광적인 지지, '이 차가 나오면 꼭 구매한다'거나 '왜 이제서야 이 차가 한국에 출시됐나’는 식의 여론과는 사뭇 달랐다. 자동차 구매에 있어 여전히 보수적인 한국 자동차문화의 단면이 어김없이 드러난 셈이다.  

 물론 현실에서 기분 내키는 대로 지금 끌리는 차를 선뜻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집을 제외하면 자동차는 가장 비싼 소비재 중 하나인 데다 모험을 하기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또한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측면도 있다. 누군가 용기 있는(?) 시도를 했을 때 '왜 그 돈 주고 그 차를 사냐', '나라면 다른 차를 사겠다'는 식의 주위 입방아에 휘둘리다보면 결국은 무난한 차로 마음이 기우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한국 자동차 내수시장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이 가장 큰 요인이지만 대중교통의 발달과 카셰어링 등 공유 문화의 등장, IT기기 등 경쟁 소비재의 발달 등도 영향을 미친다. 반드시 자동차를 구매해야 할 이유가 엷어지는 것이다. 

 자동차 업계도 결국 하나의 생태계다. 자동차를 비롯한 관련 산업군이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건강한 생태계의 제1조건은 다양성의 담보다. 하나의 종(種)만 득세하면 예견치 못한 외부 충격에 대응치 못하고 무너져버리고 만다. 거대한 고목부터 한 포기의 풀까지 다양한 종류의 종이 어우러진 풍성한 숲처럼 말이다. 

 인류가 시작된 이후 농업 분야에선 다양한 작물이 재배돼 왔다. 하지만 병해에 강하다는 이유로, 수확량이 많다는 점에서 현실에서 접하는 작물의 종류는 많지 않다. 실제 1800년대 미국은 7,100종의 사과를 재배했지만 현재 6,800종은 이미 멸종됐다. 할인점에서 손쉽게 사먹은 사과의 대부분은 골든 딜리셔스 품종이다. 수확기 이전에 딸 수 있고, 쉽게 보관 가능하며, 운송과정을 잘 견디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반구와 남반구 모두에서 자랄 수 있어 사시사철 재배가 가능하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골든 딜리셔스 품종을 위협하는 바이러스나 새로운 병원균이 출몰한다면 인류는 사과를 먹지 못할 수도 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세단에 대한 지나친 수요 집중 현상은 자동차회사의 다양한 차종 개발 욕구를 포기하도록 독려하는 것과 같다. 결국 획일화 된 자동차 문화가 남을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올해는 소수의 마이너리티 차종을 응원하고 싶다. 그래야 자동차 문화 기반도 풍성해지기 때문이다.

안효문 기자 yomun@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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