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인터뷰#3] 21세기형 옴므파탈 밴드 장미여관, 애인 없는 척 하는 나쁜남자들?

입력 2014-03-11 09:43   수정 2014-03-11 09:42

인디는 ‘독립적인’이란 뜻의 ‘인디펜던트(Independent)’의 줄임 말로 인디 뮤지션이란 ‘자신이 원하는 음악만을 하기 위해 대형 기획사에 소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음악인’을 말한다. [보석 뮤지션]은 숨겨진 보석처럼 고유의 색과 매력을 갖고 있는 뮤지션들을 찾아 소개하는 연재 인터뷰 컬럼이다. 


 
[윤소영 기자] 가요계가 수많은 꽃미남 아이돌들에게 슬슬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할 무렵, 정말 못생긴 오빠들이 나타났다. 동내 착한 백수 오빠 같은 비주얼에 구수한 사투리를 써가며 여관 가자고 대중들을 유혹하던 장미여관. 그들의 기습적인 유혹에 우리는 어느새 빠져들어있었다.

컬러풀한 그들이 허겁지겁 들어왔다. 보라색 정장, 얼굴만큼 큰 초록 장미 코사지, 그리고 육중완의 부시시한 머리. 카바레 가수를 연상케 하는 그들의 모습은 처음 홍대공연에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TOP 밴드 2’, ‘무한도전’에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쇼파에서 특유의 표정으로 멍 때리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육중완(기타 &보컬), 화보 모니터링을 하며 ‘너무 뚱뚱하게 나온다’고 투정하는 강준우(기타 & 보컬), 도착하자마자 소품 기타를 손에서 떼지 못하는 윤장현(베이스), 인터뷰 내내 자신이 비주얼 담당이라고 우기는 배성재(일렉기타), 그리고 잘생긴 외모가 싫다는 듯 자꾸 엽기적인 표정만 지어 포토그래퍼를 힘들게 한 유일한 꽃미남 맴버 임경섭(드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장미여관은 화보촬영 내내 천진난만한 말장난과 특유의 웃음소리로 스튜디오를 가득 채웠다. 커피의 카페인보다 담배의 니코틴보다 진한 그들의 에너지는 점심 직후의 나른한 수요일을 유쾌한 금요일 밤으로 만들었다. 

치명적인 페로몬을 풍기는 다섯 남자들. 자칫 정신을 놓았다간 정말 여관까지 따라갈 수도 있겠다 싶어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게 인터뷰를 시작했다.

◆장미여관 결성 스토리, 원래는 제 2의 유리상자가 목표?

“준우와 20살 즈음 각자 음악 하다가 만났죠. 부산에서 1,2위를 다투는 라이벌이었어요, 못생긴 걸로 (웃음). 유리상자같은 포크감성의 어쿠어스틱 듀엣으로 시작했는데, 완전 망했어요. 한번은 고구마라는 듀엣도 결성한적이 있어요. 고구마 같이 생겼다고 해서. 전 군고구마고 파트너는 물 고구마. 활동도 잘 못해보고 망해서 한 동안 지하실에서 곡만 만들고 살았어요. 그러다 장미여관이 됐죠.” - 육중완

그들의 노련한 퍼포먼스와 끈적한 팀워크가 무색하게 그들이 ‘장미여관’이라는 5인조 밴드로 음악을 한 건 불과 2년채 되지 않았다. 홍대 작은 공연과 여러 세션을 거쳐가며 10년넘게 각자의 음악을 이어가던 다섯 명은 하나의 사건으로 뭉치게 됐다. 그리고 그 사건은 그들의 음악인생을 뒤흔들어 놓았다. ‘TOP 밴드 2’

“4명이 밴드로 뭉쳐서 공연을 2번정도 했을 무렵 홍대 뮤지션들 사이에서 ‘TOP 밴드’ 바람이 불었어요. 온갖 유명한 인디밴드들이 나간다고 하길래 형들한테 나가자고 제안 했는데 형들이 반대했어요. 결성 된지 몇 달밖에 안된 우리가 어떻게 10년이 넘은 베테랑 밴드들을 이기냐고. 그래서 몰래 신청했죠. 뽑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상재형를 영입하고 지금의 다섯 명이 된 거에요.”  - 강준우 

라이브, 클럽무대에 간간이 오르며 지하 자취방에서 소박한 음악생활을 이어가던 장미여관은 작년 ‘TOP 밴드 2’에 출연 한 이후 홍대 ‘듣보잡’ 밴드에서 국민밴드가 되어 180도 다른 인생을 살게 됐다. 삼촌같은 비주얼과 구수한 지방 사투리, 농염한 퍼포먼스 등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그들의 오묘한 매력은 대중들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신청했던 500여 팀들 중에 저희 같은 팀이 없어서 뽑혔다고 들었어요. 처음에는 큰 욕심 없이 ‘방송 한번 타보자’ 하는 마음에 공연했어요. 음악을 알릴 기회가 많이 없었으니까요. ‘TOP 밴드 2’에 출연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4인조로 홍대를 누리고 있겠죠? ‘이상한 노래를 부르는 형들이 있다’며 조금씩 소문이 나고 있었거든요 (웃음).” - 윤장현

◆순박한 오빠들의 외로운 서울살이 

“1학년까지 법대를 다니다가 음악이 하고 싶어서 중퇴하고 한 학기 등록금과 기타 하나만 등에 메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어요. 아는 사람도 없고 잘 곳도 없고 해서 일주일 정도를 여관에서 지냈어요. 그러다가 반지하 월세를 구했죠.” - 배상재

다섯 맴버들 중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가 단 한 명도 없다. 현실과 꿈이라는 경계 사이에서 한참 헤매고 있었을 20대 초반 무렵, 다섯 명은 어린 자신감 하나로 음악이라는 흐릿한 오아시스를 찾아 상경했다. 안내판도, 친구도 없었던 서울의 빌딩사막은 춥고, 배고프고, 외로웠다.

“독립한지 정말 얼마 되지 않았어요. 몇 년 동안 남한테 얹혀 살다가 작년에 첫 옥탑방을 얻었어요. 상경하고 6년만에 제 스스로 떳떳하게 월세와 공과금을 내는 첫 집이에요. 처음 이사를 하고 옥상에서 한참 하늘을 보고 담배를 피웠던 기억이 나요. 집을 구한 내가 너무 신기해서.” - 육중완

마침내 작년 4월 정규 1집 [산전수전 공중전]을 발표함으로써 대중들에게 자신들이 어떻게 고독한 음악생활을 긍정마인드와 소주로 버텨왔는지 툴툴 털어놓았다. 그리고 대중들도 즐겁게 들어주었다.    

‘닥치는 대로 했고 술도 안마시고 열심히 살았네. 이래 애끼가꼬 집사고 차사고 다했네. 드디어 서울의 아가씨 만나보자. 아무리 봐도 없네 저기를 봐도 없네. 서울 아가씨들 모두다 이쁜 건 아니네. 허무한 마음에 웃음이 나오네’ - 장미여관 1집 [산전수전 공중전] 수록곡 ‘서울살이’ 중

◆이젠 ‘장가갈 돈 있는 남자’ ?
 
“엄청 바빠요. 한 달에 하루 이틀밖에 못 쉬는 것 같아요. 그래도 다른 일이 아니라 음악 때문에 바쁜 거니까 행복하죠. 아무 걱정 없이 음악만 할 수 있다는 게 유명해지고 나서 가장 좋은 점이에요."  - 임경섭

“수입도 많이 늘었고요. 심지어 간혹 가다가 잘생겼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가 유명하긴 하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웃음). 무엇보다 저희 노래를 들어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게 행복해요. 예전에는 앨범을 내도 몇몇 들어주지 않았는데, 이젠 앨범을 내면 관심을 가져주니까.” - 강준우

클럽투어만 해왔던 장미여관이 이젠 아이돌만 한다는 전국투어를 시작했다. 지난 1월부터 시작된 그들의 전국투어 `‘빈방없음’은 공연마다 매진 행렬을 이어가며 지금까지 총 누적관객 수 1만명을 기록하는 등 삼촌돌의 타오르는 인기를 실감케 했다.

◆오빠들은 못생겨서 좋아요 
 
“못생겼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거나 자존심이 상하지 않아요. 우리도 서로 얼굴을 보고 있으면 ‘와, 정말 답 없다’ 하고 매번 감탄(?)하거든요. 못생김에도 호감형 못생김과 비호감형 못생김이 있잖아요. 우리는 다행히 호감형 못생김이에요 (웃음).” - 강준우

세상은 확실히 변했다. 노총각 냄새 풀풀 나는 노래를 부르고 볼록한 뱃살을 드러낸 평균 36세 아저씨들에게 대중들은 섹시함을 느꼈고, 그건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끈적한 보사노바 풍의 감각적인 멜로디, 대놓고 여관 가자고 유혹하는 심히 솔직한 가사, 허스키하고 감미로운 반전 목소리……그들을 “더티섹시”하게 만든 여럿 요소 중 무엇보다 섹시한 건 그들의 자신감이었다.

◆장미여관은 연애도 ‘더럽게, 섹시하게’?


“믿기 힘드시겠지만 우리 다 여자친구가 있는 ‘품절남’들입니다. 숨길 생각은 전혀 없어요. 인터뷰나 방송에서 몇 번 말했는데 별로 관심도 없고 ‘웃기고 있네’라는 듯 웃고 넘어 가시더라고요. (웃음)” - 배상재

“장현이 형은 귀여운 매력이 있고 여자들한테 돈을 많이 써요. (웃음) 준우는 화면보다 잘생겼고 생각보다 나쁜 남자고요. 경섭이 형은 배려심이 강하고 보기보다 따뜻해요. 술만 안 먹으면. 상재는 한번 꽂힌 여자한테 올인하는 스타일이에요. 중완이는 무뚝뚝한데 여자친구한테 쩔쩔매요." - 임경섭 & 배상재

"최근에 맞장 한번 떴다가 졌어요 (웃음)." - 육중완

◆ ‘안쓰러운 노총각’ 이미지는 뜨기 위한 고도의 전략?

유부남 임경섭을 비롯해 다섯 맴버들 모두 달콤한 연애 중이다. 그런데 그들의 앨범은 ‘너 그러다 장가 못 간다’, ‘하도 오래되면’, ‘나같네’ 등 노총각의 외로운 인생을 담은 노래들로 가득하다. 쓸쓸한 노총각인 척하며 여성 팬들의 모성애를 자극하는 그들은 진정 옴므파탈의 나쁜남자다.

“안쓰러운 마음에 ‘앨범 하나 사주십쇼’ 하는 전략이 아닐까요? (웃음) 달콤한 사랑노래는 이미 너무 많잖아요. 우리까지 굳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공감을 얻으려고 억지로 쓴 노래 말고 우리가 겪었던, 현재 우리가 느끼는 감정, 진짜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러브송은 잘생긴 뮤지션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 육중완 & 윤장현 

대중음악에 가장 큰 핵심은 ‘공감’과 ‘캐치(catchy)’다.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본 사랑과 이별은 대중들의 공감을 끌어내기에 가장 쉬운 주제이기 때문에 가수들에게 있어 사랑노래는 필수사항 같은 것. 하지만 장미여관은 다르다. 그들의 노래는 ‘내 얘기 같은 노래’라기 보단 정말 ‘그들 같은 노래’다. 그들의 노래는 포장마차에서 소주와 곱창을 앞에 두고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털어놓는 오랜 친구 같다. 그래서 들으면 편안해지고 사뭇 다른 공감이 느껴진다. 

“사실 예전에 사랑노래를 많이 했었는데 망했어요. 전 군고구마였으니까요 (웃음)” - 육중완

◆세상 어디에도 없었던 음악
 
“딱히 추구하는 장르는 없어요. 어떤 장르를 하고 싶어서 모인 게 아니라 음악하고 싶은 친구들끼리 술 한잔 하다가 결성된 밴드에요. 그렇기 때문에 장르라기 보다는 메시지에 중심을 둬요. ‘이런 얘기를 하고 싶다’하면 그거에 어울리는 장르를 선택하는 거죠.” - 강준우

대중들의 무관심은 비평보다 무섭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뮤지션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음악보단 대중성을 따라가며, 그건 작가도, 영화감독도, 기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장미여관은 음반시장이 단골 포장마차라도 되는 마냥 자신들의 인생 이야기를 툴툴 털어 놓았고 대중들은 거기에 술잔을 기울어줬다. 이렇게 운 좋은 뮤지션이 또 어디 있을까?

“댄스, 발라드, 록 모든 장르를 다 해보고 싶어요. 그냥 느낌 가는 대로. 지금 앨범에는 30대의 저희 모습과 감성이 그대로 담겨 있어요. 40대면 40대에 느끼는 것들 50대면 50대가 느끼는 것들을 노래로 만들고 싶어요. 그게 장미여관의 매력이고 실력이라고 생각해요.” - 육중완


그들이 순식간에 국민밴드로 떠오른 이유는 못생겼기 때문만은 아니다. 코믹한 사투리에 야릇한 노래를 감칠 나게 잘 부르기 때문만도 아니다. 10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몸에 베어있었을 노련한 연주와 농염한 퍼포먼스, 그리고 대중성의 구애를 받지 않고 자신들의 음악을 끝까지 추구했던 그들의 자신감은 결국 대중들을 유혹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들의 음악은 전혀 우습지 않다. 그들만이 부를 수 있는 음악, ‘장미여관’이라는 자신들만의 장르를 가진 손에 꼽히는 뮤지션들이다. 언제나 그자리에 그대로 있는 시골의 아늑한 여관처럼 지금 털털한 모습 그대로 있어준다면 그들의 여관은 10년, 20년이지나도 변함없이 ‘장기투숙’ 손님들로 붐비는 ‘빈방 없는’ 명소로 남을 것이다.

사진: bnt포토그래퍼 오세운
영상 촬영: 박수민 PD
메이크업: 황정은 위드 뷰티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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