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7세대 LF를 내놨다. 1983년 이후 7번 변신을 거치며 지금은 당당히 주력 차종이 됐다. 덕분에 현대차의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1983년 'Y' 프로젝트로 시작된 쏘나타는 한국 자동차산업 근대사를 보여주는 차종이기도 하다. 작은 차에서 벗어나는 디딤돌이 쏘나타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본지는 쏘나타 역사를 통해 한국차의 현대사를 되돌아 봤다. <편집자>
1988년 6월1일부터 국내 시판에 들어간 쏘나타는 감성 중형차로 주목받았다. 쐐기(Wedge)형 기본형상에 곡선을 조화시킨 진보된 스타일로 CAD/CAE 기술이 활용돼 차체가 설계됐으며, 세계적 추세인 공기역학 개념을 받아들여 공기저항계수(Cd) 0.34를 실현했다. 또 그랜저 메커니즘을 계승해 전자제어 MPI(Multi Point Injection; 다중 전자제어 연료분사 방식) 시리우스 엔진 탑재로 120마력 파워를 뱔휘했다.
이외 TCU(Transmission Control Unit) 컴퓨터로 조정하는 오버드라이브와 록업(Lock-up) 기능의 4단 자동변속기가 조합됐다. 특히 독립 현가장치와 일체축 현가장치 장점을 조화시키고 소음 차단을 위한 이중 방진장치와 제로캠버(Zeor Camber)를 실현해 코너링 시 방향안전성과 주행안전성을 높였으며, 앤티다이브 지오메트리(Anti Dive Geometry)라는 특수구조를 통해 급제동 시에도 차체 및 승객 상체가 앞으로 심하게 숙여지지 않도록 배려했다.
아울러 고장력 강판을 주요부분에 사용해 미국 자동차협회의 NCAP(New Car Assessment Program) 35마일 충돌시험을 만족시켰다. 그리고 GE가 당시 개발한 첨단 신소재 제노이(Xenoy)를 실용화 한 초강력 제노이 범퍼를 세계 최초로 적용하기도 했다.
쏘나타는 이른바 '차체에 비해 실내는 넓게(Less Bulky, More Roomy)'라는 설계개념에 따랐다. 또한 공인 시내 주행 연비는 ℓ당 12.14㎞로, 경쟁차종인 당시 기아차 콩코드의 11.4㎞, 대우차 로얄 살롱의 9.6㎞에 비해 경쟁력이 높았다.
1988년 6월 첫 시판은 2,000㏄ 자동변속기와 1,800㏄ 수동변속기 두 가지였는데, 이후 8월 1일부터 1,800㏄급 자동변속기 및 2,000㏄급 수동변속기가 추가됐다. 북미 수출 차종으로는 1988년 8월부터 2,400㏄ GL/GLS 두 종류가 양산에 들어갔다.
1988년 7월4일부터 9일까지 전국 167개 점소에서 신차발표회를 갖고 본격 시판에 들어간 쏘나타는 시장에서 호평을 얻었다. 시판 직후인 8월 2,445대를 시작으로 연말까지 총 1만989대가 판매돼 인기가 입증됐다. 이로써 1988년 1월부터 6월까지 평균 56% 정도였던 현대차 중형 시장 점유율은 이후 연말까지 70%로 크게 높아졌다.
1989년 들어 인기는 더욱 치솟았다. 1~4월까지 전년과 비슷한 판매추세를 보이던 쏘나타는 5월에 월 판매 7,000대를 넘더니 8월부터는 월 1만대 이상으로 뛰었다. 1989년 1년간 판매량량만 7만9,679대에 달해 중형 시장 전체의 45%를 차지했으며, 덕분에 현대차 중형시장 점유율도 68%에 이르렀다.
한편 1988년 11월 16일에는 쏘나타 3,277대가 선적돼 대망의 대미(對美) 수출을 시작했다. 중형차로는 국내 최초로 이뤄진 쏘나타 미국 진출은 소형차(엑셀) 수출 경험을 바탕으로 이뤄졌는데,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미국 내 언론들과 전문가의 평가는 좋았지만 일본차의 높은 벽을 넘기는 역부족이었다. 이로 인해 현대차 캐나다 브로몽 공장이 폐쇄되는 아픔까지 겪게 된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쏘나타Ⅰ을 '절반의 성공' 차종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그 덕분에 북미 시장 성공 욕구는 더욱 강렬해지게 된다.
실제 당시 미국 내에선 호평과 혹평이 양립했다. 미국 '카 앤드 드라이버(Car and Drive)'는 자체 시험 결과를 토대로 쏘나타 실내장식과 외양 및 품질에 높은 점수를 준 반면 NBC TV의 대표 간판 토크쇼 프로그램 투나잇쇼(Tonight Show)의 진행자이자 자동차 수집광으로도 유명한 제이 레노는 쏘나타를 빗대 '밀어야 가는 차'로 깎아 내리기도 했다. 또한 일부 자동차 전문지는 '가난한 사람들의 중형차'라는 식의 보도를 내기도 했다.
4편에서 계속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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