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7세대 LF를 내놨다. 1983년 이후 7번 변신을 거치며 지금은 당당히 주력 차종이 됐다. 덕분에 현대차의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1983년 'Y' 프로젝트로 시작된 쏘나타는 한국 자동차산업 근대사를 보여주는 차종이기도 하다. 작은 차에서 벗어나는 디딤돌이 쏘나타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본지는 쏘나타 역사를 통해 한국차의 현대사를 되돌아 봤다. <편집자>
쏘나타 개발로 국내 중형차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온 현대는 이후에도 성능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쏘나타 시리즈를 잇달아 내놓아, 고성능 및 고품질로 중형차 붐을 주도해 나갔다.
1989년 7월 시판에 들어간 1990년형 쏘나타는 1989년형과 동일한 가격이면서 새로운 사양을 적용, 안전성과 편의성을 크게 개선시켰다. 1.8ℓ(GLi)와 2.0ℓ(GLSi) 두 모델로 나온 90년형 쏘나타에는 지금이야 소형차에도 들어가 있는 시동키 제거 경보장치, 시트벨트 착용 경보장치, 시동키 홀 조명장치, 운전석 선바이저 화장거울, 자동변속기 파워기능 등을 새로 적용했지만 당시로선 신기능이었다. 또 라디에이터 그릴,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 기어 레버, 계기판 조명 조절, 시트 커버, 리어 스피커 그릴 등의 형상변경으로 외관미를 고급화 했다. 이어 쏘나타 2.0ℓ는 웨이스트라인 몰딩 컬러를 검은색에서 차체와 같은 색으로 통일시켜 세련미를 더했다.
1990년 7월에는 2,400㏄ MPI 엔진을 새로 장착한 최고급 쏘나타 2.4i가 시판돼 고성능을 선호하는 소비자 욕구를 충족시켰다. 쏘나타 2.4i는 그 당시로선 동급 최고의 마력(123마력)을 자랑했으며, 자동정속 주행장치(Auto Cruise Control)를 적용해 장거리 주행 시 피로를 감소시켰다. 계기판 식별이 용이하도록 첨단 감각의 액정식 계기판이 채택됐고, 국내 최고급 차종에 적용하는 오디오 리모콘 스위치를 스티어링 휠에 장착했다. 이밖에 가죽시트, 가죽 도어트림, 스티어링 휠, 가죽커버 등 최고급 내장 가죽 패키지를 적용해 고급스런 실내분위기를 연출했다. 195/70R14 광폭타이어는 접지력을 향상시켰다.
1991년 2월20일부터 시판에 들어간 뉴 쏘나타는 기전 쏘나타의 외관형상을 변경하고 사양을 고급화한 현대적 감각의 승용차였다. 뉴 쏘나타는 기존 쏘나타 1.8ℓ GLi를 다양화 한 1.8 GLi/1.8 디럭스 팩 등 2가지와 2.0 GLSi 기반의 2.0 골든 팩 등 2가지로 개발됐다. 또 같은 해 7월에는 국내 최초로 2,000㏄ DOHC 엔진이 적용된 쏘나타 2.0ℓ 골드가 시판에 들어갔다. 137마력 2,000㏄ DOHC 엔진과 ABS를 장착, 높은 성능과 안전성을 최대한 확보해 중형차의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한 고성능 파워세단으로 인기를 모았다.
쏘나타 출시와 관련해선 재미나는 일화도 있다. 85년 11월18일 현대차 인력개발원에 낯익은 두 사람이 들어왔다고 한다. 오후 3시, 쏘나타 1호차(구형)를 인수하기 위해 방문한 주인공은 영화배우 신성일과 엄앵란 부부였다. 이들은 카탈로그를 보자마자 스타일과 각종 전자시스템에 반해 즉시 계약을 했다고 말했는데, 1호차의 주인공이 될 줄은 몰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1968년 운전면허증을 취득한 후 각종 외국차를 운전하는 등 베테랑급 드라이버임을 자처했던 신성일 씨는 쏘나타를 시운전해 본 후 "내부 시스템이 전자동 전자장치로 돼 있고, 시트가 안락하다"며 크게 만족해 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한편, 93년 5월30일 출고된 쏘나타Ⅱ 1호차는 부산공고 이석우 교장선생님이 인수했다(현대차 30년사).
이렇게 시작된 쏘나타 신화는 쏘나타Ⅱ로 이어지며 쏘나타 문화를 만들어 가기에 이른다. 현대는 93년 5월13일 쏘나타Ⅱ를 출시했는데, 이 또한 차세대 수출 전략형 차종이었음은 변함이 없었다. 88년 코드명 Y-3로 시작된 쏘나타Ⅱ 개발은 5년여에 걸쳐 완성된 셈이다. 쏘나타Ⅱ는 최신 설계의 올라운드 클린 보디(All-Round Clean Body)에 146마력의 2.0ℓ DOHC 엔진을 탑재하고, ABS 브레이크 시스템과 전자식 현가장치가 적용됐다. 또 환경보호를 위해 신냉매 에어컨을 부착하고 자원 재활용을 위한 리사클링 개념이 도입됐다.
안전과 신기술의 결정체로 탄생한 쏘나타Ⅱ는 울산공장에서 각종 자체 시험을 거친 후 미국 FMVSS․EC 인증시험․캐나다 CMVSS 등 각국의 성능․안전도․배기가스 규정에 모두 합격해 수출 증대의 길을 열어 놓았다. 이를 바탕으로 쏘나타Ⅱ는 1.8ℓ GL/2.0ℓ GLS/2.0ℓ 골드 등 3가지 제품이 93년 7월부터 본격 수출길에 올랐다.
쏘나타를 출시하며 현대는 무엇보다 쏘나타 문화 만들기에 주력했다. 쏘나타야말로 대표적인 한국인의 중형차이며, 세계로 뻗어가는 수출 전략형이라는 점에서 쏘나타를 한국의 상징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 필요했던 것이다. 뒤늦게 자동차사업에 뛰어 든 현대지만 세계 시장에서 인정을 받는다는 점을 소비자들에게 알리는데 주력했고, 전략은 주효했다. 국내에서 '중형차=쏘나타'라는 등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학 입학 시즌이 되면 서울대 이니셜인 'S'를 가지면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는 소문이 나돌며 수험생들이 쏘나타 엠블렘을 떼어가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단순한 학생들의 근거 없는 소문이었지만 현대 내부에선 쏘나타가 성공한 것처럼 쏘나타 엠블렘을 가져가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수험생들에게 확산된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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