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자동차 위협하는 비밀병기, '대중교통'

입력 2014-05-14 08:36  


 수입차가 국산차를 위협한다. 이미 오래 전 얘기이자 현재 진행형이다. 그런데 국산이든 수입이든 가리지 않고 전방위 공격을 퍼붓는 싸움꾼이 있다. 체급과 무대조차 가리지 않는다. 대한민국 5,000만 모두가 그들의 흡입 대상이다. 뭐든지 집어삼키는 괴물 같아서 상대가 기세마저 갖지 못하게 만든다. 무턱대고 덤비면 한방에 무너질 수 있다. 다윗은 현명함으로 골리앗을 이겼다지만 이번 골리앗은 다르다. 대단히 똑똑한 골리앗이다. 그래서 어림도 없다.
 





 서울에서 부산 갈 때, 부산에서 강릉을 갈 때, 그리고 강릉에서 대전을 갈 때…. 걸어갈 수는 없다. 무언가를 타고 가야 한다. 1960년대만 해도 걷다가 버스 오면 간신히 몸을 얹어 비포장의 흔들림을 감수했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며 시간도 빨라지고, 불편함도 줄었다. 하지만 고속도로 개통으로 자동차도 점차 호황을 맞았다. 달릴 수 있는 도로가 생겨나면서 너나없이 자동차를 구입했다. 1980년대 자동차 시대가 도래 했을 때 공장은 가동되기에 바빴다. 만들어 내놓으면 앞 다퉈 돈을 주고 자동차를 사갔다. 이후로 20년 동안 자동차는 기하급수로 늘었고, 1,900만대 시대가 열렸다 인구 2.6명당 자동차 한 대를 보유한 셈이다.

 그런데 자동차가 늘어나니 문제도 적지 않았다. 도로는 정체되고, 길 위에 낭비하는 기름만 한 해 수 백 억원이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자동차는 연평균 4.1% 증가한 반면 도로증가율은 1.8%에 그쳤다. 도로는 그대로인데 자동차만 넘쳐나는 형국이다.

 국민들은 끝없이 불만을 제기했다. 바쁜 일상의 속도전을 펼쳐야 하는 사람들에게 정체나 서행은 그야말로 돈의 낭비였다. 하지만 해결하기엔 상황이 녹록치 않았다. 추가로 개설할 도로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간신히 길을 뚫어 놓으면 언제 개통했냐는 듯 자동차가 몰려 또 다시 혼잡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결국 위정자들은 한 가지 대책을 세웠다. 자동차 이용이 불편하도록 각종 운행 규제를 내세우는 대신 여러 사람이 동시에 이용하는 대중교통 확대에 치중했다. 자동차 증가 속도를 최대한 억제하려 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억제해도 문제는 발생했다. 세수가 줄었다. 자동차 판매가 줄면 한 대에 부과되는 12가지 세금이 함께 사라졌다. 복지 지출 늘면서 자동차 세수 의존도가 높아진 상황에선 줄이는 게 능사도 아니었다. 오죽하면 판매가 줄어들 때 세금을 깎아주기도 했다. 외형상 내수 진작이지만 진심은 세수 증대였다. 제조사나 정부의 '윈-윈' 전략이었으니  개별소비세 감면은 시시때때로 등장했다. 물론 세금 감면은 구입자의 부담도 줄였다. 그래서 지금 한국은 자동차 2,000만대 시대로 접어들었다. 5,000만명 가운데 법적으로 운전이 불가능한 사람을 제외하면 1인당 1대를 소유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늘어날수록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새로운 개인 이동 공간의 출현은 만족하지만 이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주차장을 나서면 또 다시 거대한 도로 주차장이 펼쳐졌다. 좁은 틈으로 먼저 가기 위한 운전 기교가 성행했고, 정지하라는 신호는 애써 무시했다. 그렇다보니 운행하다 사고도 빈번했다. 사망자는 늘고, 평생 불편한 몸을 갖게 되는 일도 다반사였다. OECD 운운하며 대대적인 사고 줄이기 캠페인이 20년째 벌어지지만 자동차 증가와 맞물려 좀처럼 줄지 않았다.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은 다시 대중교통으로 모아졌다. 어떻게든 대중교통을 통한 이동의 편리함을 준다면 자동차 운행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대중교통 활용해도 자동차 보유 욕구는 살아 있으니 신차 구입하되 가급적 세워두는 쪽으로 유도했다.

 정부의 대책은 주효했다. 주말에만 승용차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신차 판매는 크게 줄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손해는 소비자가 봐야 했다. 구입 후 세워만 놓아도 가치가 하락하는 게 자동차여서다. 세금 내려주면서 자동차 구입은 장려한 뒤 이용하지 말라고 운행제한을 두니 중고차 가치만 떨어졌다. 또한 세워 둘 공간이 많아져 대한민국은 주차장 공화국으로 변모해갔다. 비교적 한산하다는 평일 도심의 아파트 주차장도 빈 공간을 찾기 어려울 만큼 주차난이 발생했다.






 그러는 사이 운행을 제한하는 것도 한계에 부딪쳤다. 개인 재산권 침해소지가 높았다. 그래서 자동차에 맞먹는 편리한 이동 수단 발굴에 주력했다. 시속 100㎞에 머물던 기차 속도를 300㎞까지 끌어 올린 게 대표적이다. 또한 자동차 나눠 타기(카쉐어링)도 적극 권장했다. 장거리 이동 후에는 편리하고, 저렴하게 잠깐 자동차를 빌릴 수 있도록 연계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동차로 가는 것보다 저렴하고, 빠르고, 편하게 만들었다.

 상황 변화는 자동차 수요 시장에 많은 변화를 일으키는 중이다. 극도의 피로가 수반되는 운전에 부담을 느낀 이들의 대중교통 이용이 폭주했고, 그에 따라 자동차 운행거리가 줄자 ‘굳이 자동차 필요할까’를 고민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직접 자동차를 구입하지 않아도 이동에 불편함이 없어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나아가 운전 자체가 싫다는 사람도 슬슬 고개를 들었다. 운전에 쏟아 붓는 시간이 아깝기만 했다. 스마트 기기 보급으로 이동 중에도 업무를 수행할 수 있고,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게 된 만큼 직접 운전하는 것은 말 그대로 시간과 노력 낭비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정체로 시간이 허비되고, 서 있는 동안 공회전으로 기름 값이 공중으로 날아갔다. 게다가 월급봉투 두께는 그대로인데, 써야할 돈은 많아졌다. 자동차는 구입 순간부터 매년 세금을 내야하며, 보험료를 부담해야 했다. 운행거리가 많지 않아도 6개월에 한번 씩 오일도 바꿔주어야 한다. 오래 세워두면 배터리가 방전돼 추가 비용 부담도 발생한다. 그야말로 돈 삼키는 괴물이 됐다. 도심에 한번 끌고 나오면 주차비도 걱정해야 한다.

 언제 움직일지 모르는 도로에선 제대로 된 스마트 기기 활용도 불가능했다. 인터넷에서 스마트폰으로 급격히 이동 중인 웹 3.0 시대는 젊은 층의 수요를 감소시키는 중이다. 미국과 일본의 20대 운전면허 취득자가 줄어드는 것도 결국은 같은 맥락이다. 즐거움을 주던 자동차가 점차 거추장스러운 기계로 바뀌어 가는 과정이다.

 수요 감소는 20대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급격한 노령화 또한 자동차 수요 감소의 요인으로 지목된다. 50-60대의 대중교통 이용 만족도가 높다는 교통안전공단의 조사 결과는 여러 복합적인 의미를 내포했다. 인지 능력이 떨어질수록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는 과학적 사실에 기초할 때 자동차 수요는 앞으로 증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자동차업계의 고민은 깊어갔다. 공공의 적인 대중교통과 스마트 기기, 그리고 노령화에 대비하는 기능을 쏟아내고 있다. 스마트폰의 블루투스 연동은 20-30대를 잡기 위한 아이디어였고, 차선이탈방지는 노령자를 위한 안전 대책이었다. 그러나 제 아무리 기능을 늘려도 상대할 수 없는 공공의 적은 대중교통이었다. 강원도 산골 오지까지 그물처럼 연결된 대중교통, 그리고 시속 110㎞에 묶인 자동차 제한 속도와 달리 시속 400㎞에 도전하는 고속열차의 확장은 자동차에 엄청난 위협이 되는 중이다.

 대중교통 또한 자동차를 위협하기는 마찬가지다. 고속열차 각 좌석에 비치된 매거진에는 자동차광고가 일절 없다. 열차만 이용해도 전국 구석구석 이르지 못할 데가 없음을 강조하는 셈이다. 열차 타고 편하게 가면 되는데, 굳이 사고 조심하며 힘들게 운전할 필요가 없음을 은근히 내세웠다. 자동차 타고 들르는 휴게소 대신 열차 안에 식당도 구비했다. 고속열차와 일반열차를 혼용하면 시골 곳곳의 모든 역까지 도착할 수 있다며 그렇게 갈 만한 여행지를 속속 소개하는데 치중했다. 동시에 자동차를 멀리할수록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점도 잊지 않았다. 50세를 넘어가면 최고의 관심사로 '건강'이 꼽힌다는 점을 집중 공략했다. 제주도 못지않게 전국에 산재한 둘레길 소개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 것도 자동차 배제의 목적이 숨어 있었다. 걷기 위해 가는데 굳이 자동차로 이동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문이었다.






 이런 대중교통의 도전에 자동차회사들이 꺼내 든 카드는 오토캠핑이었다. 출발부터 필요한 장비를 싣고 갈 수밖에 없는 캠핑의 특성을 살려내 대중교통 이용을 억제했다. 조금 멀리 떨어져도 캠핑장이 좋다면 자동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국산차와 수입차 너나 할 것 없이 캠핑마케팅에 뛰어든 데는 문화적인 현상도 있겠지만 이른바 ‘대중교통 멀리하기’도 포함돼 있다. 대중교통이 소비자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자동차가 멀어지는 현상을 막아야 했고, 그래야 생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덕분에 SUV 판매가 날개를 달았지만 중요한 것은 캠핑도 한 때라는 점이다. 캠핑 인구가 600만명을 넘지만 시장 규모가 계속 유지될 수는 없었다. 과거 전국에 콘도미니엄 바람이 불고, 이후 펜션 광풍이 일어났다. 캠핑은 펜션을 대체하는 새로운 트렌드일 뿐 자동차 수요 증가를 견인하는 결정타는 아니었다. 그저 세단형 차에서 SUV로 수요가 이동했을 뿐 신차 시장 자체를 키우는 기관차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고민의 방향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로 모아졌다. 심사숙고, 그리고 수많은 조사 과정을 거쳐 얻어낸 결론은 복합성격의 제품군 확대였다. 전통적인 세단과 SUV의 경계선을 허물고, 세단과 쿠페의 구분을 없애는 것이 최선이라는 해답을 얻어냈다. 소형 SUV, 중형 CUV, 좌우 도어의 숫자가 다른 해치백과 쿠페가 합성된 차가 연 이어 등장하는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국산차든, 수입차든 중요한 것은 생존이기 때문이었다. 비단 이런 현상은 한국 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지역만 다를 뿐 연령에 따른 정서적 유대감은 본질적으로 같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뇌세포 숫자는 12세까지 늘다가 멈춘다고 한다. 이후 각 세포의 촉수에 해당되는 시냅스의 연결이 지능과 지식의 발달을 가져온다. 시냅스가 많이 연결될수록 머리가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다시 말해 대중교통의 시냅스가 많아질수록 자동차회사의 고민 중량도 무거워지는 셈이다. '경량화(輕量化)'를 부르짖는 마당에 '중량화(重量化)'의 대중교통을 걱정하는 시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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