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피아트 가격 인하, 책임져야 하고 피해 보상해야 회사 존립

입력 2014-06-11 08:09   수정 2014-06-11 08:09


 결국 예상했던 일이 터졌다. 크라이슬러코리아가 피아트 500의 판매가격을 처음 진출 당시보다 1,160만 원이나 낮춰 내놓은 것. 수입사가 얼마나 다급했는 지 불문가지다.

 얼마 전 업계 관계자로부터 크라이슬러코리아가 피아트 500을 '쉽 백(ship back)'해야 할 지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전적으로 '회송'의 의미를 담은 이 용어는, 즉 해외에서 들여온 물건을 다시 돌려보낸다는 뜻이다. 판매가 안돼 재고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때 생산지나 다른 판매지역으로 보내는 행위다. 

 지난 1997년 우리나라가  IMF 구제금융을 받았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모든 수입차업체들이 '개점휴업'의 상황을 맞았을 때, 수입차를 타고다니면 손가락질을 받던 그 당시 상당수 수입사들이 재고를 감당하지 못해 본사나 대만 등 제3국으로 차를 쉽 백해야 했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처음 맞은 외환위기 상황이어서 본사에서도 충분히 이해했다. 지금은 평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서두에 '예상했던 일'이라고 썼다. 크라이슬러 관계자는 지난해 피아트 브랜드를 출범하며 기자에게 "미국에서 1만 달러대에 파는 차를 한국에서 프리미엄카라고 내세우며 3만 달러 가까이 받겠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느냐"며 하소연했다. 판매가격을 정하면서 회사 내부적으로 이견이 많았지만 한국측 임직원들의 의견은 무시되고 결국 피아트측 주장을 받아들여야 했다는 것. 그 때부터 파국이 시작됐다. 






 500은 장점이 많은 차다. 예쁜 디자인에 다양한 가지치기모델 등으로 원산지인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에서도 큰 인기를 끌며 판매부진에 빠졌던 피아트의 회생을 도운 효자차다. 그러나 500은 대중적인 소형차였기 때문에 많이 팔렸다. 3만 달러 가까운 가격을 매긴 고급차였다면 절대 거둘 수 없는 성적이다.

 그런 '탱자'가 왜 한국에 오면서 '귤'도 아닌 '한라봉'으로 변했을까. 크라이슬러코리아는 대중차를 프리미엄카라고 하면 우니라나 소비자들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그 정도로 한국시장이나 한국 소비자를 우습게 본 것일까. 
 
 2000년대 초반 한국시장 재진출을 노리던 피아트 관계자는 이탈리아 현지에서 만난 기자에게 "한국시장에서 성공하면 어느 나라에서나 통할 수 있다"며 "그 만큼 중요한 테스트마켓이어서 재진출을 위해 여러가지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 그 때의 자세는 어디로 간 것일까.

 출시 이후 극심한 판매부진에 시달리던 500은 결국 20% 가까운 상시 할인체제를 가동하다 판매가격을 인하했고, 이번엔 200대 한정이라고는 하지만 최초 차 가격에서 1,160만원이나 싸게 파는 충격적인 고육책을 써야 했다. 아마도 업계에 나돌던 '쉽 백'에 해당하는 차들로 보인다. 2015년형 수입을 앞두고 내린 극약처방인 셈이다.       
 
 판매가 안되면 가격을 내려서라도 재고를 없애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크라이슬러코리아는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미 500을 산 고객들의 재산가치 하락분을 어떻게 보전해주느냐와, 향후 2015년형 500의 판매가격을 어떻게 정해야 소비자들이 믿고 구입할 것이냐다. 

 그렇지 않아도 졸지에 본인이 산 차의 중고차가격이 뚝 떨어지자 관련 기사에 단 기존 고객들의 댓글을 보면 실망감을 잘 읽을 수 있다.     
 
 '철지난 과일 팔아 넘기듯 기존 고객을 철저히 무시하고 배 째라는 식의 마케팅도 마케팅이라고 당당도 하시네요. 피아트라는 브랜드 가치는 말할 것도 없고. 미니만큼은 바라지도 않지만 나름 그렇게 문화를 형성하는 친퀘첸토 오너들을 크라이슬러코리아에서 한방에 '호갱인증'을 시켜도 정도껏이죠. 2,990만 원→2,540만 원→1,830만 원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4개월도 못돼 710만 원 날강도 맞은 입장에서 현금 뱉어내라는 소리는 먹히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 잘 압니다. 적어도 기존 고객을 눈꼽만큼이라도 생각하는 크라이슬러코리아라면 서비스 쿠폰이나 무상서비스 등 조금의 혜택이라도 제공하려는 성의는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정말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크라이슬러코리아 차는 구매하지 마세요. 안팔리면 가격 덤핑 금방 들어갑니다'

 분노를 넘어서서 크라이슬러코리아에 대한 불매운동이라도 벌일 기세다. 이래가지고는 고객만족이란 꿈도 꿀 수 없다. 교만이나 착각에 빠져 시장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잘못 내린 한순간의 결정이 크라이슬러코리아 전체에 대한 크나큰 불신을 낳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제 200대를 이렇게 다 팔고 나면 2015년형의 판매가격은 어떻게 정할 것인가. 상식적인 마케팅이라면 현재의 가격을 내세우기는 어렵다. 그나마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 2,000만 원대 초반이다. 그 것도 소비자들이 크라이슬러코리아의 판매정책을 믿어줄 때 받아들일 수 있다.

 크라이슬러코리아로선 500의 이번 가격인하는 재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것도 철저한 인재(人災)다. 충분히 예견됐고, 많은 한국 임직원들이 반대했는데도 누군가 독단적으로 내린 결정이라면 그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 향후 또 다른 인재를 피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건 가만히 앉아서 재산상의 피해를 본 기존 고객들에 대한 납득할 수 있는 조치다. 그래야만 크라이슬러코리아의 존립에 당위성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강호영 기자 ssyang@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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