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는 게 대세다. 한 때는 '없는 사람이 빌리는 것'으로 여겼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히려 비용절감 차원에서 빌린 것을 당당히 알려주는 '허, 호, 하' 번호판이 우대받는다. 중소형 수입차보다 국산 중대형 '허' 번호판이 호텔에서 더 인기다. 사회적 지위가 확실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굳이 살 필요가 있느냐'이다. 덕분에 리스와 렌탈 시장은 매년 성장을 거듭한다. 자동차의 소유 개념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자동차를 오랜 기간 빌리는 방식은 두 가지다. 리스(lease)와 렌트(rent). 한 마디로 초점을 물건에 맞추느냐(리스) 아니면 비용(렌트)에 두느냐의 차이일 뿐 본질적인 개념은 같다. 이는 법률상으로도 마찬가지다. 렌트는 주로 단기 동산계약에 사용되고, 리스는 장기 동산계약에 사용되는 것 외의 차이는 없다. 따라서 리스와 렌트 중 어느 것을 선택해도 남의 소유인 자동차를 빌려서 운행하는 것은 같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다를까? 첫째는 사업자가 다르다. 렌트는 사업자가 자동차를 임대용으로 구입해서 매월 일정액을 받고 빌려준다. 한 마디로 자동차 대여업이다. 자동차 대여업은 여객자동차운수관리법 적용을 받아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사업용 자동차 관리차원에서 지정된 '허, 호, 하' 글자를 번호판 앞에 부착해야 한다. 또한 영업용이어서 LPG 연료를 사용할 수도 있다. 반면 리스는 자동차 대여업에 속하지 않는다. 돈을 빌려주는 금융사업자가 자동차를 구매해서 일정 비용을 받고 개인에게 운행을 허가하는 방식이다. 돈 대신 자동차를 빌려주되 매월 일정액을 환수하는 것이어서 일반 번호판이 부착된다. 또한 이용자가 정해져 있어 개인에게 맞는 보험 상품도 가입할 수 있다. '누구나 운전'에 따른 보상 범위 확대로 보험료가 비싼 렌터카와 대비되는 항목 중 하나다.
▲빌리는 것이 대세, 소유욕 줄어
지난해 6월 한국소비자원이 '소비자리스 관련 법제의 현황 및 개선방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가운데 눈여겨 본 것은 자동차 리스 시장의 성장세다. 자동차 리스는 2002년 국내 시장 규모가 6,635억원에 불과했지만 2012년 5조8,247억원으로 무려 8.8배나 증가했다. 자동차 리스가 전체 리스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02년 27%에서 10년 후인 2012년은 57%로 크게 뛰었다.
렌터카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 렌터카의 주 구매층이었던 법인 외에 개인 사용자가 꾸준히 늘었다. 국내 렌터카 점유율 1위인 kt금호렌터카에 따르면 개인장기렌터카 시장은 지난 3년간 연평균 65.8% 성장했다. 지난 2010년 전체 렌터카에서 7.2% 비율이던 개인장기 렌터카 비율은 2011년 9.3%, 2012년 13%를 나타냈다. 빌려 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완전 사라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거부감 감소의 주 이유는 시선 변화와 비용 절감이다. 리스와 렌트에 소요되는 비용은 사업자일 경우 필요 경비로 인정을 받는다. 자동차 이용 대금 전액을 업무상 경비로 인정받다보니 사업자로선 리스와 렌터를 쓰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리스와 렌터의 필요 경비 인정은 고가차 구매의 기폭제로 작용하기도 했다. 재벌 자녀들이 등하교를 할 때 이용된 고가의 수입차도 리스였고, 업무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구입한 뒤 개인용도로 쓰는 것은 일상화 된 지 오래다. 중대형 차종의 리스 구매율이 40%를 넘는다는 통계도 있으니 그야말로 고급차를 빌려 타지 않으면 바보(?) 소리까지 듣는 세상이다. 다시 말해 빌려 타는 것이 좋은 게 아니라 비용 절감 차원에서 빌려 타지 않을 수 없는 시장이 형성된 셈이다.
이 가운데서도 리스 시장의 규모 확대는 금융사와 무관치 않다. 돈 빌려줄 곳이 마땅치 않은 금융사가 자동차를 돈 대신 빌려주면서 시장이 급성장했다. 이자를 받을 수 있다면 빌려주지 못할 게 없다는 금융사의 사업 정신이 한껏 빛을 발했다는 얘기다. 물론 이면에는 필요 경비 인정에 따른 '절세' 효과를 내세웠다.
▲리스 이용금액 제한 법률은 잠 잔다
지난 2007년 당시 민주당 소속 이계안 의원을 만난 적이 있다. 현대차와 현대카드 최연소 사장을 거친 현대차그룹 핵심 경영진 출신 가운데 한 명이다. 국회의원이었던 이 전 의원을 만난 이유는 자동차 리스 비용에 대한 필요 경비 인정 제한 때문이다. 1억원에 판매되는 자동차를 사업자 리스로 운용하며 실질적으로 개인이 사용하는 것을 바로 잡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필요 경비를 인정하되 한도 금액을 설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물론 당시 이 전 의원의 법안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중대형차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자동차회사가 이를 반길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6년이 지난 2013년, 비슷한 주장이 또 다시 제기됐다. 새정연(당시 민주당) 민홍철 의원이 '소득세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현재 소관위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주요 내용은 자동차 리스에 필요한 비용의 일부만을 사업비용으로 인정해 주자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제시된 기준은 '배기량 2,000㏄ 미만은 전액', '2,000㏄ 이상이고, 5,000만원 이하는 취득가의 50%', '5,000만원 초과 1억원 미만은 취득가액의 20%', '1억원 초과는 필요경비 전액 제외'로 나누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구분법에 따르면 차종별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배기량은 2,000㏄ 미만이되 가격이 6,000만원을 넘는 차종과 배기량은 2,000㏄를 넘어도 가격이 6,000만원을 넘지 않는 차종이 즐비해서다. 예를 들어 BMW 525d x드라이브는 가격이 7,000만원을 넘지만 배기량이 1,995㏄로 구입비 전액이 사업에 필요한 비용이 된다. 반면 6,000만원인 현대차 제네시스는 배기량이 3,000㏄를 넘는 만큼 필요경비는 신차 가격의 20%에 불과하다. 단순히 국산차와 수입차를 떠나 오히려 값 비싼 차종에 혜택이 많이 돌아가는 현상이 발생하는 셈이다.
이외 배기량 기준은 통상 문제로 연결될 가능성도 높다. 법안을 전문적으로 검토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송대호 전문위원은 보고서에서 "사업자가 업무용차를 넘어 고가의 승용차를 구입(리스)해 업무용보다 사적용도로 사용하는 비용이 전액 필요경비로 인정돼 세금 탈루가 발생한다"고 지적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용도의 명확한 구분이 어렵고, 배기량 기준의 필요 경비 제한은 한미 자동차 FTA 통상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에 따라 대안으로 떠오른 방안이 배기량을 배제한 가격 기준이다. 필요경비 한도를 설정해 가격과 관계없이 필요경비의 한도를 설정하자는 것. 송 위원은 "영국도 자동차 리스비용의 필요경비는 차종과 상관없이 기본 2,000만원을 인정하고, 그 이상은 사업비용으로 처리해주지 않는다"며 "개인용도와 업무용 구분이 불가능한 접대비를 매출액의 일정 금액만 인정하는 것처럼 업무용차 구입비용도 경비 인정 한도 가격을 정하거나 또는 매출액의 일정 한도 내에서만 인정해주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법안을 발의한 민홍철 의원실은 "배기량 기준은 친환경 요소도 고려했던 것"이라며 "한도액 설정이 대안으로 제시된 만큼 여러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그리고 현재 해당 법안은 소위원회에 계류만 됐을 뿐 이후 진행은 전혀 되지 않고 있다. 그만큼 관심 밖에서 밀려난 탓이다.
▲논란의 중심은 필요 경비
자동차 구입비 전액을 필요 경비로 인정할 것이냐, 아니면 일부 제한을 할 것이냐의 문제는 국내 자동차 업계가 민감하게 주목하는 제도 가운데 하나다. 시행 여부에 따라 중대형 고가차 판매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만약 금액 기준만 적용된다면 기준 금액에 맞추어져 있는 제품의 수요가 급증할 수 있다. 반면 기준 금액을 훌쩍 뛰어넘는 차종은 순식간에 휘청될 수도 있다. 앞서 든 예처럼 필요경비 전액 인정 기준이 4,000만원으로 결정되면 4,000만원 내외 차종의 인기는 오르는 반면 4,000만원이 훌쩍 넘는 6,000만원 차종은 줄어들 수 있다. 설령 줄지 않는다 해도 증가세의 둔화 여지는 충분하다.
그래서 빌려 타는 시장은 철저히 제도에 따라 흥망성쇠가 달려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언제나 자유로운 것은 개인이 구매하거나 또는 정식 자동차 대여업을 통한 임대일 뿐이다. 렌터카 사업자들이 지속적으로 리스 이용금액의 한도를 설정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자동차회사도 중대형 판매가 많을수록 수익성이 높으니 법안 도입에 찬성의 목소리를 낼 이유는 없다. 하지만 어떻게든 재정 건전성을 확보해야 하는 지금의 정부 상황을 감안하면 도입 가능성이 전혀 없지도 않다. 게다가 선진국도 하고 있다니 말이다. 비용 한도 제한, 현재 상태라면 법안은 자동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흐지부지 된다는 뜻이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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