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홍재의 핫 카]미쓰비시 파제로와 현대정공 갤로퍼

입력 2014-10-24 12:26   수정 2015-02-27 11:48


 오늘날 도로 위 자동차는 모두 달라보이지만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제조사마다 개성 넘치는 디자인 차별화를 부각시키며 신차를 쏟아내도 형태는 비슷해서다. 브랜드 라벨을 떼어 놓고 보면 구분이 쉽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일까? 가끔 오래된 차를 보며 옛날 디자인에 감탄하거나 추억속에 잠길 때가 있다. 영국의 유명 카 디자이너 피터 호버리는 자동차를 '현대인의 말(馬)'이라 부른다. 주인의 정성어린 애정과 관심 덕분에 한 평생 같이 다니는 게 자동차여서다. 그래서 해외에선 클래식카를 소장하고, 해당 차종이 건재했던 시대를 떠올리며 회상에 잠기기도 한다. 이른바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문화가 존중받는 셈이다다. 지금처럼 인터넷의 보급, 보다 안정적인 수입, 개인 취향의 존중, 주5일 근무, 캠핑 문화의 붐, 교포 및 해외거주자들의 국내 거주가 확산 등으로 국내 소비자들의 안목이 높아져도 '나만의 말'은 평생 기억에 남는 법이다.  
  





 최근 현대자동차 '리브 브릴리언트(Live Brilliant)' 캠페인 광고를 보며 한국도 자동차문화가 많이 성숙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현대차는 한국에서 오랜 기간 국민의 말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소비자에게 욕은 엄청나게 먹지만 정말 국민들과 함께 충실히 달려온 말임에 틀림없다. 물론 현대차도 이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현대차를 언급한 것은 국내 소비자의 향수를 자극시키는 추억의 차종으로 '갤로퍼'를 꼽고 싶어서다. '갤로퍼(Galloper)'는 '말이 뛴다'는 의미의 영어 단어다. 그래서 로고도 말이었다. 정통 4WD 디자인. 충실한 기능성. 4륜 락 기능의 후륜구동 플랫폼, 정통 짚의 프레임바디, 뛰어난 연비 등의 기억이 떠오른다. 

 사실 갤로퍼는 지금 현대모비스의 전신이었던 현대정공이 1991년 미쓰비시 파제로 1세대를 그대로 도입한 게 시작이다. 현대차가 승용과 상용을 만들 때 현대정공은 SUV를 판매했다. 그래서 전면 외부 범퍼를 제외한 모든 부분이 동일했다. 1996년 내놓은 싼타모 또한 미쓰비시 샤리오를 기반으로 했는데, 승용 부문의 현대차와 생산 차종이 겹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미쓰비시 파제로는 일본 최초 SUV로, 과거 미쓰비시가 윌리스 짚을 제작하면서 쌓은 노하우로 제작된 정통 SUV였다. 버블경제 시대의 중간기인 80년대 초반에 등장해 폭발적인 레저 수요로 인기를 누렸으며, 영국에선 험로 주파성이 뜨거운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이름도 여러가지였다. 영국에선 쇼균, 미국은 닷지 레이더, 이외 지역은 '파제로(Pajero)'가 붙었고, 한국에선 갤로퍼로 팔렸다. 지금도 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선 80년대 1세대 파제로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그만큼 내구성이 뛰어났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1세대 파제로는 1973년 동경모터쇼에 나온 뒤 1982년 소비자에게 인도되기 시작했다. 1983년에는 파리-다카르 랠리에 출전했고, 2년 뒤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덕분에 지금도 '파제로=파리 다카르' 이미지가 형성돼 있을 정도다. 

 엔진 라인업도 많았다. 1세대만 롱바디와 숏바디에 2.0ℓ 자연흡기 가솔린부터 2.5ℓ 터보디젤 그리고 3.0ℓ 6기통 가솔린(총 7가지)까지 있었고, 악세사리 옵션 또한 지금보다 더욱 다양하고 아기자기했다. 1세대는 세계적으로 30만대나 판매돼 충실한 말의 역할을 해왔다.

 파제로의 한국 버전인 현대정공 갤로퍼는 2003년까지 1세대 파제로를 기반으로 꾸준히 생산됐고, 유럽에도 수출됐다. 프랑스 알프스에선 지금도 간혹 갤로퍼를 볼 수 있다. 이름은 달랐지만 오랜 기간 말의 역할을 충실히 한 차, 자고 일어나면 신차가 쏟아지는 시대에 오랜 동안 꾸준히 사랑 받은 차를 바라볼 때의 느낌은 그저 묘할 뿐이다. 
 
신홍재(자동차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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