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정 기자] 알리의 목소리는 단단하다. 폭발적이고 찰진 고음이 귀에 단숨에 꽂히는 힘이 있다. 그런데 단단함 속에 묘하게 여린 감성이 숨어있었다. 강렬한 고음으로만 알리의 목소리를 규정짓는다면 오산. 폭발하는 ‘한 방’ 뒤에 진한 여운을 남기는 숨소리는 알리의 가창력을 뒷받침하는 숨은 요소다. 목소리에도 겉과 속이 있다면 외강내유형이다.
터닝포인트. 알리는 ‘내유’의 감성을 전면에 보여주기 위한 작업에 매진했다. 이번 앨범은 ‘알리라는 음악 세계 안에는 청아함도 있다’는 사실을 대중적으로 공표하는 결정체인 셈이다. 외면적인 부분도 마찬가지다. 전환기를 맞이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대중의 반응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결과가 어떻게 펼쳐지든 목소리에서도 마음에서도 몸에서도 힘을 빼고 자신의 ‘속’까지 끄집어 보여줄 시도를 한 지금. 알리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Q. bnt와의 촬영은 재미있었나.
오래 전부터 bnt화보를 찍고 싶었다. 이별 노래로 이미지가 국한되어 있어 그 틀을 깨고 싶었는데 기회가 와서 신났다. 겉으로 드러나는 ‘알리’가 아닌 내 안에 살고 있는 ‘조용진’을 보여준 느낌이었다. 특히 니트를 입고 편한 분위기 속에서 촬영한 콘셉트가 좋았다.
Q. 새 앨범이 드디어 나왔다. 애타게 기다렸을 팬들이 많았을 텐데.
1년 반, 근 2년 만에 나오는 미니앨범이다. 창법, 장르, 편곡까지 내 손 때가 안 탄 곳이 없을 만큼 의견이 많이 반영됐다. 그만큼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가령 ‘미싱유(Missing You)’라는 곡을 보자면 리드에서 5음계 오리엔탈 느낌을 꼭 가미해 달라고 했다. 나는 곡이 더욱 서정적이고 풍성해 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Q. 그렇다면 창법은 어떤 의견을 반영했나. 특유의 창법에 변화를 준 것인가.
일단 대중들이 듣기 편하도록 창법을 가볍게 했다. 나는 워낙 철금성을 갖고 있는 보컬리스트라 호불호가 강하다. 어떤 이들은 ‘쇳소리가 나서 불편하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가슴이 뚫리는 듯 시원하고 통쾌하다’고 하고. 그런데 이번에는 좀 더 많은 대중을 끌어안아 보자는 생각을 했다. 쇳소리를 많이 덜어내고 이선희 선배님과 같은 청량한 창법을 구사하고자 했다. 성량은 키우되 까칠한 소리를 없애는 작업을 했다.
Q. 고유한 창법을 바꾸는 데 어려움이 따르지는 않았나.
작업할 때 순간순간 고민을 많이 하긴 했다. 변화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서. 그런데 결과물을 들어보니 더 담백해지고 사람들이 따라 부르기 편한 곡이 됐다. 목소리를 편안하게 하니까 내 음악적인 색깔이 오히려 뚜렷하게 나타나는 듯했다.
Q. 대중성을 확보하니 자신 고유의 색깔이 더 드러날 수 있었다는 말은 다소 모순적으로 들린다.
이번 앨범을 준비하며 처음에는 대중과의 타협을 하지 않으려고 생각하기도 했다. 자신의 색깔을 담는 방법은 대중성을 양보하는 것이라 이해했기 때문에. 하지만 그럴수록 나를 틀 안에 가둘 수밖에 없었고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강박을 버리고 편하게, 대중 친화적으로 가니 내 속에 또 다른 나를 찾을 수 있었다. 대중적인 것과 내 색깔을 고수하는 것이 결코 양립불가한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Q. 이런 마음의 변화를 계기로 앨범명도 ‘터닝포인트’로 지었나보다.
맞다. 바로 지금이 내 음악 인생에서 터닝포인트다.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좋은 음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시점이기에. 예전에는 어렸으니까 야망이 컸다. 음악적으로 보자면 ‘모든 장르를 아울러야 하겠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욕심을 버리고 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들을 재미있게 하며 살자는 삶의 모토가 생겼다.
Q. 그래서 외면적인 스타일도 바뀌었나.
예전에는 스모키 메이크업에 노란머리로 사람들에게 강렬함을 각인시키려고 노력했다면 지금은 본래의 내 모습, 얼굴을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나. 편안함이 그리웠다. 머리도 염색 안 한 내 본연의 머리색이다.
Q. 이제 욕심은 모두 버린 것인가.
물론 다른 방면에서 내 야망을 충족시키고 있긴 하다(웃음). ‘불후의 명곡’으로 장르의 다양성을 좇고 있지 않나. 또 어렸을 때 판소리를 했던 터라 국악으로 세계에 진출하겠다고 다짐했고 그것을 대중음악에 접목시킨 논문을 쓰고 있다. ‘대중음악에 활용할 수 있는 국악연구’라는 제목이다.
Q. 편한 마음을 가지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독립해서 산 지 3년, 강아지를 기르면서 느낀 바가 있었다. 예전에는 무엇이든 완벽한 것을 꿈꾸며 이것저것 요구하고 강요하는 일이 많았다. 나 스스로에게 조차도. 그런데 강아지를 키우며 내 모습을 대입해볼 때면 본능에 충실하며 사는 것도 행복할 수 있겠다고 느끼곤 했다. 아무리 내가 어떤 방향으로 이끌려고 해도 바뀌지 않는 관성이란 게 있더라. 이 사실을 인정하니 편해졌다.
Q. 아까 잠깐 언급되기도 했는데 알리를 이야기할 때 ‘불후의 명곡’을 빼놓을 수 없다. ‘불후의 명곡’은 알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친정이다(웃음). 또 내게 영감을 주는 공간이다. 지금 리메이크한 음악은 시간이 흘러 나의 음악적 자양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선배님들의 음악을 다시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값진 일이다. 더불어 요즘에 앨범보다는 음원 수익이 더 커지면서 음악시장이 어려워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 내가 선배님들의 음악을 존경을 해야 내 음악도 후배들로부터, 대중들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다고 여긴다.
Q. ‘알리 불후의 명곡’ 연관검색어로는 ‘최고점수’가 가장 먼저 뜨더라.
(웃음) 당시 얼떨떨하기만 했다. 사실 최고점수가 몇 점인지도 제대로 몰랐다.
Q. 특별한 비법이 있었나.
조영남 선배님의 ‘내 생애 단 한 번만’을 불러 좋은 평을 얻었던 건데 나는 그저 즐겼다. 내가 원곡을 듣고 느낌 가는대로 피아노를 치며 부른 노래를 편곡자에게 들려줘 다듬어 나갔다. 무대연출도 마찬가지로 내 느낌을 살렸다. 무대연출에 부드러운 춤이 꼭 필요하다고 느껴져 무용하는 친구에게 특별히 춤을 전수받아 췄다. 원래 왈츠를 의도했는데 사람들은 살풀이라고 이야기하더라(웃음).
Q. 춤도 춤이지만 그 무대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수화였다.
수화를 넣은 이유는 음악을 듣는 것뿐만 아니라 볼 수도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 곡은 정말 좋은 곡이기 때문에 보면서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다.
Q. 음악도, 무대연출도 모두 자신의 감각을 반영해 이룬 성과라고 하니 그쪽 방면으로는 탁월하게 타고났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타고 났다고 느끼는가?
사실 음악을 하기 위한 ‘톤’과 ‘통’은 타고났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음색을 결정짓는 ‘톤’이 좋다. 어머니는 성량을 만드는 ‘통’이 좋다. 그러나 타고남만으로 탄탄대로를 걸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가 다니던 동사무소 문화센터에 따라 가 판소리를 배우며 소리를 갈고 닦았고 대학 시절 실용음악을 전공할 때는 운이 좋게 빅마마, 휘성, 거미 뒤에서 코러스를 서며 이를 악물고 연습했던 것 같다.
Q. 결국 노력이 지금의 알리를 만들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성격도 엄청난 노력으로 바꿨는걸. 원래 나는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이었다. 그런데 방송을 위해 톤도 높이고 쾌활하게 지낸다. 방송에서 통편집이 될 정도로 말도 많아졌다. 무대에서든 일상에서든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위트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애쓴다.
Q. 그만큼 표현에 익숙해졌나.
나를 드러내는 것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긴 하다. 최근 인스타그램에도 내 사진을 많이 찍어 올린다. 할로윈데이에는 ‘블랙엔젤’이라는 콘셉트로 코스튬을 입고 깜짝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Q. 마지막으로 이 질문을 안 할 수가 없겠다. 알리가 생각하는 좋은 음악이란 무엇인가.
목 넘김이 좋아야 한다. 새로운 소속사인 쥬스엔터테인먼트 이름도 내가 지었다. 내가 좋아하는 보컬과 장르를 적절히 섞어 개성이 있으면서도 누구나 건강하고 맛있게, 그리고 편하게 마실 수 있는 곡이 좋은 음악이 아닐까. 오랜 시간 사랑받는 명곡의 조건이 바로 이런 것 같다.
기획 진행: 신현정
포토: bnt포토그래퍼 오세훈
영상 촬영, 편집: 박수민, 이미리
스타일리스트: 최유림
소품: 퀸비캔들
헤어: 박호준헤어 청담점 나미에 원장
메이크업: 박호준헤어 청담점 이초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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