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t뉴스 최송희 기자] 대중의 마음은 갈대 같다. 하나의 작품에 휘청하기도 하고, 한 번의 실수에 꺾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정우는 두 마리 토끼를 양 손에 쥔 것과 같다. 배우와 감독. 두 이름으로 관객들의 믿음을 얻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관객들에게 엔터테이너가 되고 싶어요. 제가 연기하고, 만들 걸 보고 재밌어 하길 바라요. 그리고 그것으로 위안이 되고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같이 늙어갈 수 있다면 더더욱 좋겠죠.”
최근 영화 ‘허삼관’(감독 하정우) 개봉 전 한경닷컴 bnt뉴스와 만난 하정우에게 ‘믿고 보는’ 배우와 감독으로서의 삶에 대해 물었다. 신뢰감만큼이나 무거운 것이 또 있을까.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진 그였지만 오랜 시간 갈고 닦아온 만큼 명쾌함이 있었다.
“원작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과정에서는 어떤 ‘선택’의 과정이 있었다고 볼 수 있죠. 어떤 장면을 취하느냐, 방대한 양의 소설을 어떻게 영화로 만드느냐가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소설의 반을 쪼갠 것이 영화의 전반부라고 볼 수 있죠. 소설의 후반부는 중국의 색이 많이 묻어나기 때문에 중국의 정치적, 사회적 이슈들을 생략하게 됐어요.”
‘허삼관’은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돈 없고, 대책도 없지만 뒤끝만은 낙낙한 남자 허삼관(하정우)이 절세미녀 허옥란(하지원)과 결혼하게 되고, 세 아들로 인해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처음 ‘허삼관 매혈기’가 영화화된다는 소식에 일각에서는 “이 작품을 어떻게 한국 작품으로 각색하느냐”며 걱정을 내비쳤다. 중국의 정치적, 사회적 이슈를 빼놓고 ‘허삼관 매혈기’를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정우는 그런 걱정들을 간단하게 정리해버렸다. “마음을 비우”고 “소설과 영화를 분리”하게 된 것이다.
“저는 이 영화를 동화처럼 만들고 싶었어요. 위화의 캐릭터들이 사실적이지는 않잖아요? 극화된 부분이 있으니까요. 어떤 분은 소설을 읽고 다른 걸 느낄 수 있고 발견할 수 있죠. 내가 읽었을 때는 블랙코미디이긴 하지만 동화적인 판타지처럼 비쳐졌고 굉장히 코미디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주 사소한 것에 대한 가치를 이야기하고 싶었죠.”
사소하고 소소하지만 따듯한 것. 하정우가 런닝타임 124분 간 말하고 싶었던 것도 바로 그것이다. 가족 이란 이름이 주는 따듯함은 극 중 만두로 표현되기도 했다. “우리와 가까이 있는데도 잊고 있는 것들 중 하나”인 만두는 “이를테면 일종의 그림자”이기도 했다.
“전 부모자식 간의 관계도 그림자라고 보거든요. 같이 있지만 인식하지 못하는 것, 사소한 것에 가치를 부여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슈들이나 그런 것들을 제하고 제가 소설을 통해 느꼈던 소소한 것들의 낭만을 이야기하고 싶었죠.”
두 마리 토끼. 배우 하정우와 감독 하정우를 꼭 닮은 ‘허삼관’은 웃음과 감동의 코드를 절묘하게 버무려놓은 작품이다.
영화는 초반과 후반의 톤이 극명하게 나뉜다. 이를테면 웃음코드와 감동 코드. 하정우 역시 “‘허삼관’은 두 가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며 “최대한 전반부는 위화의 문체를 형상화 시키려고 애를 썼던 것 같다. 후반부는 허삼관이 겪는 매혈기만 따와서 새롭게 구성했다”고 밝혔다.
“전반부와 후반부를 어떻게든 용을 써서 결합시키려고 했던 결과물이에요. 유명한 소설이라서 어떻게든 전개 과정을 가져가려고 했었는데 동시에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죠.”
영화는 익숙한 얼굴들과 낯선 캐릭터들로 절묘한 합을 이룬다. 하정우와 수차례 합을 맞춰본 이경영, 조진웅, 김성균, 최규환, 김재화를 비롯해 조금은 낯선 민무제까지. 각자 독특한 캐릭터와 질감을 드러낸다.
특히 하정우는 “영화 전반부터 마을사람들에게 회자되는” 하소용(민무제) 캐릭터에 대해 “이탈리아에서 살다 와서 그런가 그런 필이 있다. 영화에도 잘 나온 것 같다”며 웃었다. 그를 발견한 것에 대한 자축 같은 말씨였다.
“계속 회자되는 인물이지만 오히려 그런 하소용을 인지도 없는 배우가 맡게 되면 신비로울 것 같았어요. 하지원 같은 경우는 신뢰감이라는 것이 있었죠. 하지원이 들어와서 중심을 잡아준다면 허옥란이라는 인물의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방대한 원작을 두 시간으로 축소시키다 보니 캐릭터에 대한 많은 부분이 생략돼 있죠. 그래서 더더욱 더 믿을 수 있는 배우들이 참여를 하게 된다면 관객들이 쉽게 보고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어요.”
캐스팅부터 웃음, 감동 코드까지. 어딘지 ‘롤러코스터’와는 다른 질감의 대중성이 느껴진다. “조금 더 대중성을 지향하게 된 건가요?” 묻자 그는 담담하게 대답한다.
“‘롤러코스터’는 그야말로 제 입맛대로 찍은 영화에요. 감독으로서 과연 제 색깔을 드러낼 만큼의 역량이 되느냐 라는 걸 생각해봐야죠. ‘허삼관’은 그것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의 영화에요. 제 취향과 제 것을 드러낼 만큼의 거장이 된다면, 업그레이드 된 ‘롤러코스터’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배우로서의 하정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극으로 시작해 저예산 영화를 거쳐 지금까지 오게 된” 그는 17년이라는 시간을 돌아보며 “감독이라면 더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배우로서 관객에게 힘을 갖기까지 오래 걸렸”으니 “감독으로서는 더 오래”일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저는 코미디에 특화된 감독을 꿈꿔요. 다른 장르는 워낙 잘 찍는 감독들이 많잖아요. 연기는 지금까지 이것저것 해왔으니 즐겁게 할 수 있는데 연출만큼은 코미디 장르였으면 좋겠어요. 우디 앨런이나 쿠엔틴 타란티노 같은 블랙코미디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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