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t뉴스 최송희 기자] 능청스럽고 천연덕스러운 웃음.
정우에 대한 인상을 떠올리자면 그랬다. 영화 ‘바람’과 드라마 ‘응답하라1994’ ‘쎄시봉’에 이르기까지. 가깝고 친근한 인상의 그를 찬찬히 살펴보면 어린애처럼 천진한 모습을 보곤 했다. 하지만 그 장난기 너머, 상대에 대한 진심이 여과 없이 드러난 눈을 마주하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먹먹함을 느끼게 된다. 언제나 순정. 언제나 청춘. 배우 정우의 이야기다.
최근 영화 ‘쎄시봉’(감독 김현석) 개봉을 앞두고 한경닷컴 bnt뉴스와 만난 배우 정우는 그야말로 순정이란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상대를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그의 눈은 사랑에 빠진 남자,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순정은 한 여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연기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는 걸. 그와 나눈 대화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한효주 씨와의 로맨스는 이런 저런 계산을 하지 않아서 좋았어요. 대본에 충실하고 시나리오에 충실했죠. 그렇게 기본에 충실한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첨가물 없이. 있는 그대로.”
드라마 ‘최고의 이순신’ 손태영과 ‘응답하라1994’ 고아라 그리고 영화 ‘쎄시봉’ 한효주까지. 결코 혼자서 빛내는 법 없이 상대와 함께하는 방법을 택한다. 그리고 그것은 곧 정우가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자 무기가 되는 셈이었다.
“에이. 저보다 여배우들이 예쁘니까 그렇죠. (웃음) 상대 배우분들이 저보다 빼어난 외모를 가지고 계신 덕분에 제가 연기하기 편하죠 뭐.”
농담처럼 웃어버리기에, 그가 가진 섬세한 감정의 결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전 정우 씨의 우는 모습이 그렇게 좋던데요. 볼 때마다 따라서 울게 돼요” 말을 던지자 와하하 웃어버린다. 그리고는 “감정 연기는 본능에 충실하려고 한다”고 대꾸한다.
“우는 연기나, 화내는 연기. 이런 것들은 말 그대로 본능에 충실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특히나 다른 외적인 것은 신경 안 쓰려고 해요.”
섬세하고 세밀한 감정들. ‘쎄시봉’ 속 오근태를 보고 있으면 그가 느끼는 일련의 감정들, 그 미세한 떨림 같은 것까지 공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물결치는 그 감정들을 함께 나누다 불현 듯 궁금증이 일었다. 이 모든 감정의 결들은 정우가 만들어낸 걸까 하고.
“특별히 생각하고 연기하진 않았어요. 그 순간 제가 느끼는 대로 움직였던 것 같아요. 공기와 함께, 분위기와 함께? (웃음)”
문득 드라마 ‘응답하라1994’의 김재준이 떠올랐다. 그런 부분에서도 “특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거나 의식하려고 들지 않”고 시나리오에 충실하게 맞춰나갔다. 다만 순간순간 근태가 느끼는 감정과 자신의 감정을 동일시하며 스스로 오근태가 되려 했다. 그의 답변을 들으며 다시 또 궁금해졌다. 이따금은 일일이 배우가 숨을 불어야 하는 캐릭터를 만날 때가 있고, 반대로 작품이 이끄는 대로 정석적인 연기를 해야 할 때도 있기 마련이니까.
“‘쎄시봉’은 두 가지 느낌이 공존했어요. 작품 속에 합류하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비율적으로 따지자면 반반이에요. 만들어가는 부분과 착실하게 시나리오를 따라가야 하는 부분도 있었죠.”
그렇다면 정우가 불어넣은 오근태의 ‘숨’은 무엇일까. 그는 “감독님이 생각하는 오근태는 조금 더 착했던 것 같다”며 다시금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사실 전 약간 건들건들한 남자를 떠올렸거든요. 초반에는 일반적인 순정남과는 다른 모습이잖아요. 그러다가 자영이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더 유해지고, 착해지죠.”
순정의 기본. 매끄럽지 않고 투박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감정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극 초반 ‘쎄시봉’ 멤버들과 기 싸움을 벌이고, 술집에서 싸움을 일으키는 오근태가 민자영을 만나게 되며 유약하고 온순해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제껏 김현석 감독님의 작품 중, 과격한 행동을 하는 남자 배우가 없었어요. 자영이의 집 대문을 거칠게 발로 차거나, 건들건들 거리는 행동들이 그랬죠. 그건 제가 감독님께 제안한 부분이기도 해요. 그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했더니 흔쾌히 허락해주시더라고요. 근태의 입장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어요.”
‘쎄시봉’은 중간중간, 추억의 음악들을 삽입해 더욱 분위기를 부드럽고 매끈하게 다듬는다. “쎄시봉을 이야기 하면서 음악을 빼놓을 수 없기”에 그 시절, 낭만 가득한 음악들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평소에도 들국화 선생님, 쎄시봉 선생님들의 음악을 들어요. 이번에 비싼 돈 주고 LP판을 구입했어요. (웃음) LP판은 특유의 그 긁는 듯한 소리가 좋더라고요. 저를 그 시대로 데려가는 것 같아요. 잠시나마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수많은 명곡이 있었다. ‘하얀 손수건’ ‘담배가게 아가씨’ ‘웨딩 케이크’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딜라일라’. 평소 너무도 아끼고 좋아하는 곡이었지만 “실제로 부르게 되니 이렇게 부끄러울 수 없었”다. “기계의 발전으로 거북한 건 조금 사라진” 듯한 기분이었지만 “아직도 듣기는 부끄러웠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도 하늘이나 복래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그 애들은 노래를 잘하거든요. (웃음) 잘 묻어갈 수 있어서 든든했죠. 중간에 실수하는 부분이 있어도 잘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말끝에 웃음이 그득하다. “음악이 있어서 더욱 유하고 즐거운” 분위기였다는 ‘쎄시봉’ 촬영 현장에서, 정우가 가장 좋아했던 음악은 무엇이었을까.
“‘웬 더 세인트 고 마칭 인(when the saint go marching in)’이 제일 즐거웠던 것 같아요. 같이 합주하는 맛도 나고요. 노래 분위기도 밝다 보니, 촬영 현장에서도 인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아늑하고 따듯하다. ‘쎄시봉’의 음악을 이야기 하면, 자연스레 영화의 장면이나 선율이 떠올랐다. “혹시 OST는 안 나오나요?” 개인적인 바람을 담아서 물었다. “영화를 보고나면 꼭 갖고 싶을 것 같은데”라고 덧붙이자 그는 와하하 웃어버린다.
“제가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웃음) 그때 당시 엉망진창으로 불렀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격려와 사랑을 보내주셔서. 가슴으로 부르고자 했는데 듣는 분들은 어떠셨을지 모르겠어요. 목이 아닌 가슴으로 불렀어요. 진짜. 그래서 동정표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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