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시장이 연간 6,900대에 불과했던 1995년, 한국에 처음 지사를 설립한 BMW는 그 해 판매대수가 714대였다. 그리고 이듬해 BMW코리아가 활동을 본격화하면서 1,447대로 껑충 뛰었고, 1,000대 이상 판매는 1997년에도 계속됐다. 하지만 기분좋은 출발도 잠시, 외환위기가 닥친 1998년 판매대수는 320대로 폭락했다. 연간 8,000대에 달하던 수입차시장 규모가 2,000대로 쪼그라들어 나타난 현상이지만 BMW로선 치명적이었다. 그리고 회복을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1999년에도 833대에 그쳤다.
당시 상당수 수입차업체들은 한국에서 철수할지 모른다는 소문에 휩싸였다. 수입차를 타는 일만으로 사회적 지탄이 되던 시절이었던 데다 넘치는 재고를 본사로 되돌려 보내는 회사가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BMW는 달랐다. 한국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 본사에서 파견한 독일인 대표를 불러들이고 한국인인 김효준 부사장을 신임 대표로 선임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본사의 기대는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한 때 1,400대에 달했던 판매대수를 회복하기만 해도 성공으로 평가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김 대표는 달랐다. 회복을 넘어 1위를 하고 싶었다. 결국 대표이사 취임 첫 해인 2000년 단숨에 2,700대를 찍었고 2002년 5,100대, 2010년에는 1만6,700여대를 기록했다. 그리고 지난해는 드디어 4만 대 벽을 넘었다. 그야말로 놀라운 성장이 아닐 수 없다. 덕분에 한국은 BMW 내에서 여덟 번째 중요 시장으로 올라섰고, 가파른 성장세에 독일 본사는 놀랐다. 급기야 판매비결을 알기 위해 한국을 공부했고, 결국 그를 본사 임원으로 선임하며 신뢰를 드러냈다.
물론 BMW코리아의 성장에는 '타이밍'도 한 몫했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 새로운 소비시장이 살아날 때 미리 준비했던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고, 소득증가 흐름이 수입차로 시선을 이끌 때 다양한 프리미엄 제품을 내놨다. 'BMW' 자체를 이른바 '고급의 상징'으로 만들었던 점이 폭발적인 판매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성장에는 늘 성장통이 있는 것처럼 일부에선 BMW의 거침없는 행보를 비판하기도 한다. 무리한 판매확장 욕심이 만들어낸 아픔이 적지 않아서다. 그럼에도 김 대표에게 보내는 시장의 믿음은 아직 탄탄하다. 한국 내 최초의 드라이빙센터를 유치해 그가 말하는 '가치'를 높인 덕분이다. 게다가 수입사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사회공헌도 미래재단을 통해 해결하는 현명함을 보였다. 비록 독일에 기반한 외국계 기업이지만 국내 정서에 부합하려는 노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며칠 전 BMW코리아 20주년 출범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김 대표는 20년을 회고하면서 지금은 다시 변화된 세상을 읽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리고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한국에 BMW의 다섯 번째 연구개발센터를 만들것이며, 이를 통해 다른 사물과 끝없이 연결되는 자동차를 연구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간 생산자와 판매자 중심의 시장이 이어져 왔다면 이제는 소비자와 시장 중심의 문화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 결국 기업의 생존권 차원에 비춘다면 BMW코리아의 또 다른 20년은 이제 소비자에게 달려 있다는 의미다.
그의 말은 BMW뿐 아니라 모든 완성차회사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한국은 그 동안 기업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시장이 형성돼 왔다. 대표적인 게 고급화 및 대형화다. 그리고 시장에서 고급화 및 대형화는 이미 완성됐다. 이런 상황에서 BMW코리아가 다음 행보를 '소비자'로 삼은 건 어저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포화시장에서 성장이란 소비자를 붙잡아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국산차 보유자들이 수입차를 구입하는 것도 국산차에 머물만한 '무엇'이 없어서라는 지적을 떠올린다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한국 자동차시장은 이제 소비자가 주도한다. 소비자의 힘이 막강한 시대이니 말이다. 소비자가 바꾸는 자동차시장, 과연 어떻게 변해 갈 것인지 기대된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 기아차, 브랜드 높이려면 상품에서 차별화돼야
▶ 벤츠, C350 PHEV ℓ당 47.6㎞ 효율 달성
▶ 포드 신형 엣지 스포트, 최고 315마력
▶ 쌍용차 티볼리, 아반떼 흔들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