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정주영, 정몽구 그리고 정의선

입력 2015-03-11 19:11  


 1968년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앞두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작심을 한다.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자동차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만큼 자동차사업을 본격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포드와 현대차가 신속하게 제휴를 했지만 한국의 열악한 도로 조건에서 미국차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1974년 현대차는 포니를 시작으로 기술 독립을 선언했고, 이후 1988년 올림픽 전후로 불어 닥친 한국의 자동차 대중화에 부응했다. 고속도로에서 영감을 얻은 정 명예회장의 선택은 지금 현대차그룹의 초석이 됐던 셈이다.






 이후 현대차는 지금의 정몽구 회장이 1998년 기아차 인수에 성공한 후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왔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몸집 불리기에 나서게 된다. 실제 2000년 248만대였던 판매대수는 2005년 355만대로 늘었고, 2009년에는 464만대로 껑충 뛰었다. 급기야 2012년에는 713만대, 지난해는 800만대를 돌파했다. 






 이처럼 양적 성장이 가능했던 이유는 적극적인 현지화가 꼽힌다. 미국, 유럽,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등 시장이 큰 곳에 공장을 짓고, 해당 지역 소비자들의 입맛을 맞춘 게 주효했다. 내수에서 수입차 등에 일부 시장을 내준 반면 해외는 적극적인 공략으로 두 배 이상 시장을 빼앗는데 성공했다. 지난해만 해도 800만대 중 685만대가 해외 판매일 만큼 해외 시장에 공을 들였다.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초석을 다졌다면 정몽구 회장은 '현대차'라는 기업의 존재감을 글로벌에 각인시킨 셈이다.

 이런 가운데 이제 관심은 정의선 부회장에게 쏠린다. 선대가 이뤄놓은 덩치 큰 현대차의 방향키를 쥐었기 때문이다. 선장의 경영능력이 곧 기업의 미래임을 감안할 때 정 부회장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안팎으로 들리는 정 부회장에 대한 평가 중에는 '합리'가 많다. 정몽구 회장이 직관으로 그룹의 덩치를 키웠다면 정의선 부회장은 '합리'로 질적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얘기가 많이 들린다. 실제 정 부회장을 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임원들은 한결같이 그가 '합리주의자'라는 말을 꺼낸다. 이치에 맞다면 무엇이든 과감하게 밀어 붙인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정의선 부회장은 최근 현대차의 '질적 성장'을 언급하고 나섰다. 지금의 덩치는 유지하되 군더더기 없는 몸매로 바꾸겠다는 복안이다. WRC 참여는 물론 고성능 제품 개발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흔히 양이 많아지면 질이 바뀐다는 얘기가 있다. 마르크스 엥겔스 철학에 등장하는 '양질전화의 법칙'이다. 한 두 방울은 걱정 없지만 폭우는 다르고, 한 개의 화살을 부러뜨리는 것은 쉽지만 몇 개가 합쳐지면 질적으로 강해진다는 법칙이다. 이 말을 현대차그룹에 적용하면 질적인 변화가 일어날 만큼 양적인 발전은 충분히 달성했다. 그래서 정의선 부회장도 '질적 성장'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양질전화'가 반드시 좋은 뜻으로만 해석되는 것은 아니다. 그 중 하나가 국내 소비자들의 불만도 양적으로 많아졌다는 점이다. 판매대수가 많아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역시 양이 많아지면 질이 변하기 마련이다. 그런 측면에서 정의선 부회장의 질적 성장론에는 소비자 불만의 양을 줄이는 것도 포함돼야 한다. 불만의 목소리가 많아지면 질적으로 외면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질적 성장은 곧 소비자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닐까 한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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