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카로체리아' 어디로 갔나

입력 2015-03-03 08:50   수정 2015-03-03 22:17


 자동차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카로체리아(Carrozzeria)는 업계의 아이디어 뱅크로 통한다. 컨셉트카, 프로토타입 제작을 통해 완성차 회사에 영감을 제공해 온 것. 그러나 최근 완성차회사가 자체 디자인 능력을 키우면서 카로체리아도 점차 사라지는 중이다.

 카로체리아는 이태리어로 '자동차 공방'을 뜻한다. 자체 디자인은 기본이며 소량 제품 생산도 가능하다. 어원에 맞게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대표적인 카로체리아로는 이탈디자인 쥬지아로(Italdesign Giugiaro S.p.A)와 피닌파리나(Pininfarina)가 꼽힌다. 그러나 주요 고객이던 완성차 회사가 자체 디자인 역량 강화에 이어 소량 제품 위탁 생산마저 줄여 존폐 위기를 맞고 있다. 이에 따라 위기에 처한 이들의 노력에도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먼저 1968년 설립한 이탈디자인 쥬지아로는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조르제토 쥬지아로가 이끄는 카로체리아다, 대표작은 해치백 대명사로 꼽히는 '폭스바겐 골프'와 '람보르기니 가야르도'가 있다. 1970년대엔 전자제품 등으로 영역을 넓혀 산업 디자인 전반에 진출했다. 국내와 인연도 깊은데, 현대차 포니를 시작으로 스텔라, 대우차 마티즈, 라노스, 레간자, 매그너스, 쌍용차 렉스턴, 코란도C 등을 빚어냈다. 그러나 경영난을 맞이하다 2010년 람보르기니 홀딩스에 90.1%의 지분이 인수되며 폭스바겐그룹에 매각됐다. 이후 그룹 내 많은 브랜드의 컨셉트카를 선보이고 있다.






 피닌파리나는 1930년 창립 이래 페라리를 주로 디자인했던 카로체리아로 유명하다. 양사 간 우정은 지난해 협업 60주년을 맞이해 내놓은 '페라리 세르지오'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6대 한정판이며 차명은 2012년 숨진 디자이너 세르지오 피닌파리나에서 가져왔다. 국산차는 현대차 라비타, 대우차 누비라 레조 등을 디자인했다.

 피닌파리나는 1980년대 중반 자동차에서 IT, 건축 등으로 분야를 확장했다. 축적한 노하우를 기반으로 지난 2011년 유벤투스 홈구장을 세운데 이어 싱가폴에 '페라 콘도'를 계획 중이다. 현재 진행 중인 가장 큰 프로젝트이며, 2017년 완공 목표를 설정했다.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지만 대형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고비는 넘겼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건재함을 자랑하듯 지난달엔 '피닌파리나 푸오리세리에'란 30대 한정판 자전거를 선보이기도 했다.






 세계 3대 카로체리아로 꼽히는 베르토네(Bertone)는 지난해 부도 처리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창립 102년만의 일이다. 람보르기니 미우라, 쿤타치 등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쐐기형 스타일을 유지했던 점이 특징이다. 마르첼로 간디니, 조르제토 쥬지아로 같은 유명 디자이너를 배출하는 등 카로체리아의 화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과는 대우차 에스페로 등으로 인연을 맺은 바 있다.

 이밖에 투어링 슈퍼레제라(Touring Superleggera)는 1926년 설립, 1931년 알파로메오 8C부터 자동차를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이후 알파로메오, BMW, 마세라티, 페라리, 벤틀리, 미니 등의 프로토타입을 만들며 카로체리아 명맥을 잇고 있다. 마라찌(Marazzi)는 1967년 알파로메오 33 스트라달레를 통해 업계에 뛰어들었다. 알파로메오, 람보르기니, 피아트, 메르세데스-벤츠 제품 기반의 컨셉트카를 출품해왔다. 현재 경찰 및 군용차 등 특수 목적차를 전문으로 개조하고 있다. 우아한 외관으로 유명한 '폭스바겐 카르만 기아'를 만든 기아(Ghia)는 1970년 포드에 인수돼 회사 디자인을 이끌고 있다.

 격변을 겪는 카로체리아 업계를 두고 한 완성차 회사 디자이너는 "카로체리아의 가장 큰 강점은 차별화된 디자인"이라며 "특별한 디자인을 찾는 소비자들과 산업디자인 발전을 위해선 존재해야 한다"고 카로체리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구기성 기자 kksstudio@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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