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스물’ 이병헌 감독, 누구에게나 있는 순간

입력 2015-03-27 08:20  


[bnt뉴스 최송희 기자] 크게 웃는 법이 없다. 목소리에도, 표정에도 일말의 동요가 없다. 이따금은 ‘웃는 타이밍인가’ ‘농담이 맞나’ 고민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병헌 감독은 ‘재밌는’ 감독이라는 것이다.

과장된 몸짓이나 농담 없이도 시종 대화를 주무르는 그의 ‘말 발’은 이병헌 감독이 제일 좋아하는 칭찬처럼 “약을 빤 것” 같다. 신선하고 더할 나위 없이 가깝게 느껴지는 대화들. 마치 ‘스물’ 속 치호나 경재, 동우 같았다.

최근 영화 개봉 전 한경닷컴 bnt뉴스와 만난 이병헌 감독은 그의 작품 속, 한 인물 같았다. 담담하고 은은하되 유쾌함을 잃지 않는 모습은 딱 그의 영화였다.


‘힘내세요 병헌씨’도 그렇지만 ‘스물’에서도 특유의 코미디가 살아있다. 평소 그런 개그 스타일을 좋아하나 보다

그게 내 취향이다. 내 스타일의 유머 방식인 것도 같다. 평소 성격도 오글거리는 걸 견디지 못한다. 진지하게 끌고 이어가지도 못하고. 그런 게 영화에 많이 삽입 돼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그런 코미디를 유지하지 않을까 싶다. ‘스물’이 노출되고 나면 제 개그 스타일이 파악될 것 같다. 먹히지 않으면 어쩌지. 그래도 먹힐 때 까지는 해먹어야겠다.

‘힘내세요 병헌씨’가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니 ‘스물’도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게 만든다

자전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아주 익숙한 남자들을 표현하고자 했다. 자기가 겪었던 일일 수도 있고. 물론 이야기 안에 제 이야기도 있을 수는 있다. 그 흔한 남자들 가운데 하나인지라. 하지만 내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20대 남자들의 이야기니까.

그럼 세 인물 중 감독님과 가장 가까운 캐릭터는 누군가?

모두 다다. 저는 잉여로운 생활도 해봤고, 약간의 우연을 가지고 영화를 시작하게 되기도 했다.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하는 걸 보면 치호 같은데. 경재나 동우가 내 모습이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짝사랑도 해봤고, 서른 살 이후에는 영화 공부도 열심히 해봤으니. 조금씩, 조금씩 다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치호에게서 가장 비슷한 면이 많이 보이는 것 같다. 가장 아픈 손가락도 치호인가?

다 아프긴 한데. 치호가 가장 그런 것 같다. 소소반점에서 짬뽕을 먹는 신이 있었는데 그 장면이 그렇게 마음에 와 닿는다. 실제 제가 겪은 일이기도 하다. 소민이 ‘넌 비뚤어질 수가 없어. 네 부모님이 올바른 분이니까’라는 대사를 하는데 실제로 제가 가출했을 때 막내이모가 한 말이기도 하다. 그걸 보면 옛날 기억이 많이 난다.

그럼 반대로 너무 닮아서 부끄러운 캐릭터는 누군가?

동우? 과거 미술학원을 다니고 싶어 했던 적이 있다. 좋은 대학 갈 성적도 안 되고 학교를 너무 싫어해서 미술학원에 다니겠다고 했던 거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문제아가 고등학교 내내 놀더니 미술학원에 가겠다고 하니까. 당연히 이해가 안 됐을 것 같다. 그런데 부모님이 반대해서 홧김에 군대에 입대했다. (웃음) 영화를 보면 그 미술학원이라는 공간이 제 기억에서 나온 것 같다. 나도 다니고 싶었는데….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 말해놓고 나니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감독님의 20대를 돌이켜보면 어땠나?

답답한 고민들이 있었다. 보통의 고민은 저도 다 했다. 진로를 늦게 찾아서 그렇기도 했다. 그런 고민은 비슷하고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난 것 같다. 술을 그렇게 먹었다. 그렇게 공부를 했으면…. 그 돈만 모았어도…. 힘든 걸 위로한다는 위장으로 그냥 노는 게 좋았던 것 같다. 술 말고 특별히 무얼 안 한 건 후회가 된다. 빅 후회까지는 아닌데, 에너지 넘쳤는데 뭔가 할 걸 싶기도 하고.

지금도 에너지가 넘치지 않나? 나이든 것 같다고 생각되나 보다

처른부터 슬슬 체력이 달리더니 ‘스물’ 찍을 땐 깜짝 놀랐다. 내가 어린 나이가 아닌가 보다. 이 정도까지 갈 건 아닌 것 같은데. 스트레스 탓인가? 촬영하면서 7kg가 빠졌다. 촬영 끝나고 회복됐지만 내 몸으로 느껴진다. 이제 운동을 해야 하나 보다. 청춘으로서의 체력은 보장할 수 없는 나이가 된 것 같다.

감독이 되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고 하던데

4년 계획안이 있었고 10년 계획안이 있다. 공모전에서 술값을 벌겠다고 해서 영화를 시작하게 됐다. 점점 일이 커지면서 각본으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자고 생각했고. 절반은 성공한 셈이었다. 포기는 너무 이른 것 같았고. 그렇게 글 작업을 하다 보니, 연출 욕심 생기더라. 단계를 밟기 위해 서른 살에 단편 영화를 찍었다. 언제 입봉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마흔까지 일을 계속하자고 다짐했다.

첫 번째 준비할 때 투자가 안 되는 거다. 예상했다. 심사 기다리는 데 그게 너무 싫었다. 체력이 달리는 시간이었다. ‘힘내세요 병헌 씨’를 그때 찍었다. 후반 작업할 돈이 없어서 다른 글 작업 알바도 했었다. 가까스로 돈을 벌어서 ‘힘내세요 병헌씨’ 후반 작업을 했는데 그게 또 괜찮은 반응을 얻어서 ‘스물’의 연출까지 맡게 됐다. 아…내 새끼. (웃음) 처음 영화판에 오게 된 시나리오니까. 감회가 남다르다.

지금은 10년 계획의 중간 지점인 것 같다. 쉬지는 못할 것 같다. 되게 운 좋게 흘러가고 있다. 계획을 길게 잡은 것 같다. 체력 없어질 거란 예상 못하고.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타입인가 보다. 계획안도 잘 실천해나가고 있고

사실 그렇진 않다. 그냥 생각했던 대로 맞아떨어져서 계획을 잘 지키는 것처럼 됐다. 대강 하자고 생각했는데 계획대로 된 것처럼 돼서 그냥 밀고 나가기로 했다.

나이가 있다 보니 스무 살을 돌이켜봤을 때 미화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저도 청춘으로서의 기운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가진 감성을 믿고 갔다. 20대들에게 맞춰서 가려고 한 건 아니다. 3, 40대도 재미를 느꼈으면 했다. 그런 지점을 가지고 가길 바라서 내 감성대로 가자고 했다. 모니터 받을 때 20대 친구에게 물어보니 시대를 묻더라. 2002년 정도 되는 것 같다며. 의도했던 바였다. 요즘 친구들의 감정이나 정서는 저보다 세고 멀어서.

요즘 20대는 어떤가? 감독님과 잘 안 맞았나보다

그냥 같이 만나서 술을 먹고 웃고 떠들었다. 이들의 느낌을 ‘스물’로 가져올 순 없었다. 너무 세다. 그냥 신기하기도 했다. 외계어들을 주고받는 것 같아서 알아듣지를 못했다. 그리고 우리 때보다 훨씬 더 암수 구분 없이 노는 것 같기도 하고. 자유롭게 성적인 농담을 하더라. 정통 욕설도 아닌 꾸며진 욕을 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모르겠다. 기자 앞이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정말 못 알아들어서 흉내를 낼 수가 없다.


‘스물’을 보니 반가운 얼굴들이 많더라. 박혁권, 홍완표, 김영현도 그렇고. 전작 호흡이 좋아서 간 건가?

단순 의리? 아쉽지 않나. ‘힘내세요 병헌씨’가 잘 돼야 하는데. 아니야 그건 걔네가 잘 못해서 그래. 벌써 2년이나 지났는데. 오디션도 잘 보고 해서, 배역도 따내야지. 변변하게 한 작품 하지도 못하고. 그건 내 잘못이 아니지 않나.

‘힘내세요 병헌씨’와 맡은 역할도 비슷했다. 일부러 그렇게 한 건가?

그런 것도 있다. 걔들의 차기작은 내 다음 차기작이 될 것 같다. 돈도 못주고 찍었으니까. 워낙 친하다. 형, 동생하고 지내기도 하고. 더욱 큰 역할에서 만날 수 있게 역량을 키워줬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힘내세요 병헌씨’가 서른의 느낌과 가깝지 않나 싶다. ‘스물’이 잘 되면 ‘서른’을 집필한다고 했는데. 만약 시나리오가 나온다면 ‘서른’은 어떤 방향이 되나?

현장에서 한 농담이 진짜 이렇게 나왔다. ‘스물’이 아직 개봉도 안 했지만 팬들 반응이 좋다. 그들에게 준 이런 풋풋하고 기분 좋은 느낌들이 ‘서른’으로 가면 유지가 안 될 것 같다.

내가 하면 ‘병헌 씨’의 느낌이 될 것 같다. 환상을 깨버리게 될 것 같아서. 속편을 하려면 ‘스물2’가 나을 것 같다. 제대 후의 이야기로 말이다.

‘서른’은 현실적 접근을 많이 하게 될 것 같다. ‘아기공룡 둘리의 오마주’ 같은 스타일로. 너무 그렇게 우울하진 않겠지만. 아니면 아예 다른 신인 감독에게 맡기는 건 어떨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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