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 시장조사기관 워즈오토는 현대기아차를 지목해 향후 북미지역 점유율을 높이기 쉽지 않을 브랜드로 진단했다. 이유는 단 하나, CUV와 픽업 부재를 꼽았다. 그리고 전망은 맞아 떨어지는 중이다. 석유가격 하락으로 유지비 부담이 급격히 줄자 미국 내 픽업트럭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하는 중이다. 전통적인 베스트셀링카인 포드 F시리즈와 쉐보레 실버라도 등은 생산이 부족할 만큼 효자 차종이 된 지 오래다.
픽업트럭의 인기는 올 초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모터쇼에도 어김없이 반영됐다. 포드 F-150의 여러 버전을 비롯해 쉐보레 콜로라도, 토요타 타코마, 닛산 타이탄 등이 무대에 올랐다, 빅3 외에 일본 브랜드도 앞 다퉈 픽업트럭을 내보이며 시장 흐름에 동참했다.
이처럼 빅3를 포함한 북미 진출 완성차회사들이 픽업트럭을 적극 앞세우는 이유는 한국과 달리 미국 내 픽업트럭을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시선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단순히 픽업트럭의 다목적성에 주목하는 게 아니라 픽업트럭 자체에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는 의미다.
실제로 픽업트럭의 긍정적 이미지를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얼마 전 쉐보레는 "픽업트럭을 타면 잘생겨 보일까?" 또한 "건장하고, 믿을 만하다는 인식이 있을까?"를 조사하기 위해 몇몇 소비자그룹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 결과 응답자의 80% 이상이 세단보다 픽업트럭 보유자에게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유투브에 공개된 쉐보레 소비자 그룹 인터뷰 영상은 실제 쉐보레가 콜로라도 신형 픽업의 마케팅 활동으로 진행했다. 회사측은 먼저 소비자그룹을 아이, 노인, 젊은 미혼 여성, 부유층 여성 주부, 턱 수염을 기른 남자들로 구분한 뒤 이들에게 픽업트럭과 세단 앞에 서 있는 동일한 남자의 사진을 보여주고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먼저 동일 인물임에도 어느 쪽이 더 잘생겼냐는 질문에 참석자의 85%가 픽업트럭 남자를 꼽았다. 또한 픽업트럭의 남자는 재주가 많을 것 같다는 의견이 76%, 멋진 애완견이 있을 것 같다는 의견은 무려 100%에 달했다. 그만큼 픽업트럭에 대한 미국인들의 애정을 입증한 실험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본다면 현대차 또한 픽업트럭의 필요성은 명확해진다. 미국 시장에서 픽업은 점유율을 보조하는 제품이 아니라 끌어 올릴 주력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픽업트럭의 위험성도 있다. 미국 빅3에 대한 소비자들의 애정(?)이 워낙 견고해 후발 주자로서 벽을 넘지 못할 가능성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이 점차 세분화되면서 전략 차종으로서 픽업트럭의 필요성은 다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게다가 미국 내 픽업트럭은 기름 값 안정으로 향후에도 성장이 예상되는 만큼 이를 대비하지 않으면 현대기아차의 성장이 멈출 수도 있다. 엔화 약세 대응 방안으로 세단의 인센티브를 늘려 점유율을 늘리는 것은 한계가 명확해서다.
그럼에도 미국에서 픽업트럭의 필요성은 절대적이다. 이런 이유로 현대차 미국법인 데이브 주코브스키 사장 또한 올해 초 공개된 픽업트럭 싼타크루즈 컨셉트가 양산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픽업트럭 물량 충당을 위해 미국 공장의 증설도 언급했다. 더불어 그는 뒤늦은 픽업 시장 진출의 약점을 효율과 기능의 다양성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 픽업트럭의 제품화를 기정사실화 했다. 늦었지만 제품의 필요성 만큼은 절실했던 셈이다.
흔히 쓰는 영어 속담 중에 'Better late than never'라는 말이 있다.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르다'는 뜻이다. 어쩌면 지금 현대차 픽업트럭에 가장 어울리는 속담일 것이다. 빅3나 일본에 비해선 많이 늦었지만 현대차로선 처음이니 가장 빠른 행보여서다. 그래서 현대차의 픽업트럭 전략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중국에선 통한 '현대속도'가 미국 내 픽업트럭 시장에서도 이뤄질 지 말이다.
권용주 선임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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