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Diesel). 우리말로 풀어쓰면 경유(輕油), 말 그대로 가벼운 기름(light oil)이다. 여기서 가벼움이란 비중이지만 현실에선 가격과 효율로 비유된다. 원유를 증류할 때 섭씨 220-320도 사이에서 얻어지며 값 싸고 효율 높은 디젤 엔진 연료로 사용된다. 1ℓ에 포함된 탄소함량이 700여개로 휘발유 대비 100여개, LPG와 비교해선 230여개 많다. 탄소가 많아 주행거리도 그만큼 길지만 배출되는 탄소 또한 많다. 그러나 배기가스보다 소비자 입장에선 오로지 들어가는 기름 가격만 우선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경유 가격을 정부가 그냥 두지 않을 것 같다. 결코 그렇지 않다고? 아니, 그럴 것 같은 근거는 의외로 쉬운 곳에서 발견된다.
2015년 7월 현재 국내 정유사가 대리점이나 주유소에 공급하는 휘발유 1ℓ는 1,511원, 경유는 1,249원이다(한국석유공사 기준). 대리점이나 주유소는 여기에 유통 마진을 넣어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그런데 외형적 차액이 주목되는 휘발유와 경유의 실제 공장 출고가격은 627원과 606원으로 21원 차이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공급 가격이 다른 이유는 세액이 달라서다. 휘발유는 ℓ당 529원, 경유는 375원의 교통에너지환경세가 부과돼 있다. 이후 교육세와 주행세, 부가세가 따라 붙는다. 그래서 두 연료의 가격차는 정유사 공급가격 기준으로 262원에 달한다.
▲경유 사용 늘어날수록 유류세는 줄어
자,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세제 개편 가능성의 틈새가 엿보인다. 정부 입장에선 휘발유 1ℓ가 소모되면 기름 값의 58.4%인 883원의 세수가 확보되는 반면 경유 1ℓ는 51.4%인 642원에 그친다. 이 계산법을 동급 배기량 휘발유차와 경유차에 대입한 뒤 연간 유류비를 계산하면 결코 적지 않은 차액임을 알게 된다. ℓ당 15.9㎞를 주행하는 경유차와 ℓ당 9㎞의 효율인 배기량 2,000㏄급 휘발유차를 기준해 분석하면 경유차는 연간 117만원의 연료비인 반면 휘발유는 251만원이 필요하다(연간 1만5,000㎞ 주행 기준). 따라서 정부가 확보 가능한 세수는 휘발유차가 107만원으로 경유차의 60만5,000원으로 무려 46만5,000원 가량 많다. 휘발유차 보유자가 경유차로 유종을 바꿀 때마다 연간 약 50만원의 유류세가 줄어드는 격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사실을 알면서도 방치한 이유는 경유차로 옮겨 간 수요층 때문이다. 휘발유차가 아닌 LPG차의 경유차 전환이 많았다는 얘기다. 지난 2000년 정부는 1차 에너지세제개편을 예고했고, 그 결과 2001년부터 7월부터 2006년 7월까지 5년에 걸쳐 휘발유:경유:LPG 상대 가격은 100:50:34에서 100:75:60으로 조정됐다. 휘발유 대비 경유와 LPG 가격 인상에 초점을 둔 정책이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상대적으로 세금이 저렴한 LPG 연료 사용량 증가를 묵과하지 않았다. 1997년 7만3,000대에 불과했던 LPG차 판매는 IMF를 거친 1999년 저렴한 연료차로 인식되며 한 해 판매대수만 19만대에 이를 만큼 인기가 급상승했다. 2000년에는 연간 최고 기록인 29만대까지 치솟았다. 심지어 정부가 LPG 유류세 인상을 예고한 2001년에도 21만대를 찍었고, 2002년에도 20만대를 넘겼다. 정부로선 LPG차가 증가할수록 유류세가 감소하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이유로 1차 에너지세제개편은 사실상 LPG 가격 인상에 초점이 맞춰졌다. LPG에 집중된 수요를 휘발유와 경유차로 분산시켜야 유종별 유류세 균형이 맞춰진다고 판단했다. 결과는 적중해 LPG차는 점점 줄었다. 2002년 휘발유 대비 36%였던 LPG 가격이 이듬해 44% 수준에 이르자 LPG차 내수 판매량은 15만대로 떨어졌고, 49% 수준까지 오른 2004년은 11만대로 감소했다.
그러자 소비자 관심은 즉시 경유 승용차로 모아졌다. 2001년 휘발유 대비 50% 수준이었던 경유 가격이 2004년 67%에 도달하고, 2005년에는 75%, 2006년에는 82%에 이르렀지만 효율을 고려할 때 경유 가격이 LPG보다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났고, 경유 소비도 점차 증가했다.
▲2차 에너지세제 개편이 남긴 것은
이렇게 5년에 걸친 에너지세제개편이 끝난 2006년 휘발유와 경유, LPG 가격비는 100:82:50이었다. 정부는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2005년 7월 곧바로 2차 에너지세제개편에 착수했다. 목표는 2007년까지 가격비를 ‘100(휘발유):85(경유):50(LPG)’으로 맞추는 게 핵심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2007년 7월 휘발유는 세금 총액 745원, 경유는 559원, LPG는 242원이 되도록 가격비 조정이 완료됐다. 기름 값은 워낙 민감한 사안이어서 정부로선 충격을 느끼지 못하도록 장기간에 걸친 점진적 인상을 선택했고, 국민들은 가랑비에 옷 젖은 꼴이 됐다.
하지만 문제는 가격비 조정이 끝난 이듬해인 2008년에 발생했다. 당시 이라크 사태 등으로 경유 가격이 폭등해 휘발유 대비 경유 가격이 95%까지 도달한 것. 한 마디로 소비자들의 경유 승용차 구입의지를 완전 꺾어버린 셈이다. 덕분에 디젤 엔진이 탑재된 SUV 판매는 하염없이 바닥을 향해 내려갔고, 수요는 세금 비중이 높은 휘발유로 집중됐다. 당시 SUV 비중이 높았던 쌍용차가 휘청댄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자 균형을 잡아야 하는 정부도 난감했다. 국제 유가 인상으로 유류세입이 목표보다 많은 30조원이 확보됐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국민들은 세입증대에 혈안이 된 정부를 성토했다. 국민 목소리에 귀가 따갑던 당시 이명박 정부는 해결책으로 유류세 인하가 아닌 부담 경감 명목의 유류세 환급 카드를 꺼내 1인당 30만원 가량을 되돌려줬다. 환급총액이 6,000억원 정도였지만 한 해 유류세는 어느새 30조원을 넘었다.
휘발유 대비 가격차가 크지 않았던 경유 승용차가 서서히 관심을 얻기 시작한 것은 2011년부터다. 경유 가격이 휘발유 대비 91%였지만 디젤 엔진 기술이 발전하며 고효율이 부각됐다. 쉽게 말해 휘발유나 경유, LPG 모두 가격이 올랐지만 경유 1ℓ로 주행 가능한 거리가 늘어난 점이 시선을 끌어 모았다. 특히 유럽산 고효율 수입 디젤이 쏟아져 들어오며 경유 승용차에 대한 진동소음 편견(?)이 많이 누그러진 점도 한몫했다. 구입 가능한 가격대의 다양한 수입차 등장, 고효율, 그리고 진동소음 감소 등 3박자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며 수입 경유 승용차는 재빨리 시장을 점유해나갔다. 2011년 전체 수입차 판매의 45%였던 경유 승용차 비중이 올해는 지난 6월까지 70%로 확대된 것은 ‘열풍’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수입 경유 승용차 수요 폭증은 국산차의 제품 방어로 연결됐다. 르노삼성 SM5 디젤, 현대차 그랜저 디젤, 쉐보레 말리부 디젤 등이 인기를 얻으며 휘발유 자리를 조금씩 잠식해 나갔다. 당초 10% 내외에 머물 것으로 예측됐던 국산 경유 승용차 비중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20%를 상회하는 인기여서 제조사도 적잖이 놀란 눈치다. 하지만 내수 시장 전체 신차 판매가 증가하면서 경유 승용차 비중이 확산되면 걱정할 것 없지만 휘발유차 수요가 경유차로 이동한다는 점은 3차 에너지세제개편의 당위성을 만들었다. 다시 말해 경유차 늘어날수록 정부로선 연간 50만원 정도의 세수 감소를 대비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처럼 세제개편 예측을 가능케 하는 또 다른 항목은 재정 부족과 경유값 하락이다. 가뜩이나 기초노령연금 및 사회복지와 국방 등에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때에 경유차 증대로 휘발유 소비가 감소하거나 정체된다면 정부로서도 쓸 돈이 부족하게 된다. 특히 소득에 따른 직접세보다 부가세와 개별소비세, 교통에너지환경세 등의 간접세 비중이 높은 한국의 세제 특성은 경유 소비 확대를 반기지 않는 이유로 꼽힌다.
하지만 현재 정부가 지켜보는 것은 바로 경유 값 하락이다. 지난해 ℓ당 평균 1,496원(오피넷 기준)에 달했던 경유 가격은 올해 1,240원(정유사 공급가격 기준)으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휘발유도 1,698원에서 1,471원으로 내려갔지만 인하 금액은 경유가 256원으로 휘발유의 227원보다 많다. 게다가 경유는 국내 정유사의 고도화시설 확대로 공급량이 넘쳐난다.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저렴한 벙커C 또는 아스팔트를 휘발유 및 경유로 열심히 바꾸었다는 얘기다. 경유 가격이 오랜 기간 하락세였다는 점은 그만큼 경유 사용에 따른 세입도 감소했다는 말과 같다는 의미다.
이런 여러 정황을 감안할 때 3차 에너지세제개편은 경유 가격 인상에 초점이 맞추어질 수 있다. 다만 언제부터 조정 시기를 잡느냐가 관건이다. 만약 가격비 조절에 들어간다면 경유 승용차 인기는 시들해질 수 있다. 그래서 소비자가 휘발유 고효율인 하이브리드로 옮겨 가면 정부는 유류세입이 늘어난다. 휘발유 하이브리드와 경유 승용차의 ℓ당 효율이 같다고 할 때 정부로선 휘발유 판매에 따른 세입액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걸림돌은 LPG다. 정부가 경유 세액을 인상해 결과적으로 휘발유와 가격차가 사라지거나 좁혀들면 다시 LPG로 돌아설 가능성이 농후해서다. 경유 세액 인상이란 현재 100:90:56인 가격비가 결과적으로 유럽처럼 100:100:56으로 달라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앞서 설명했듯 과거에 이미 벌어졌던 사례다. LPG 세액 인상에 따라 휘발유차로 돌아섰고, 휘발유 가격 인상은 경유 승용차를 주목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경유 세액 인상은 다시 LPG로 수요가 돌아오는 효과를 낼 수도 있다. 그럼 다시 LPG 세액 인상을 검토할 것이고, 수요는 휘발유와 경유로 또 다시 이동하게 된다. 제조사가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무척 민감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소비자 또한 에너지 가격에 따라 각자의 자동차 유지비가 결정되니 세제개편은 늘 관심거리다.
▲경유 세액 인상보다 휘발유 세액을 내린다면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사람들은 걱정 없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에너지가 무한히 공급되면 원유를 놓고 여러 나라가 싸울 일도 없다. 국가도 필요한 재정이 땅에서 솟아나면 유류 세제 개편은 신경조차 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결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한정된 자원을 찾으려는 노력은 지금도 여전하고, 국가는 재정 마련에 혈안을 쏟는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 '세금은 공소시효가 없다'는 말은 그만큼 국가를 유지하는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경유 승용차 증가로 경유 사용량이 증가해 휘발유 세액이 줄어든다면, 게다가 경유 값 하락으로 유류에 포함된 각종 주행세와 교육세, 부가세 등이 감소한다면, 그리고 유류세입을 대체할 만한 마땅한 세금 부과 품목이 없다면, 나아가 점차 복지에 지출해야 할 비용이 늘어난다면 재정 책임자로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휘발유, 경유, LPG 가운데 세액 인상의 명분이 가장 높은 연료로 경유가 지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가 3차 에너지세제개편 카드를 만지작 댄다는 소문이 들린다.
권용주 선임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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