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어려우면 항상 사활을 걸어 만드는 제품이 등장한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 기업도 마지막 히든 카드에 부활을 맡겼던 경우가 부지기수다. 물론 사활을 걸었지만 맥없이 쓰러진 기업도 한 둘이 아니다.
그런데 사활을 걸 만큼의 히든 카드라면 시장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제품을 사주는 소비자가 머리를 끄덕어야 하고, 감탄사를 내뱉어야 한다. 그래야 입소문이 퍼지고,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평판이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쌍용차 티볼리 얘기를 하면서 '히든 카드'를 언급한 것은 그만큼 티볼리가 쌍용차의 히든 카드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게다가 막연하게 가졌던 쌍용차에 대한 일종의 편견(?)을 깬 것도 티볼리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쌍용차를 경험한 것은 정말 오래된 일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쌍용차'라는 이름이 생소할 정도로 관심 밖이었다. 그런데 티볼리를 타보면서 생각은 180도 달라졌고, 스스로 '편견'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전의 쌍용차 느낌과 차원이 전혀 다른 정말 눈부신 업그레이드가 아닐 수 없다.
1.6ℓ의 적은 배기량에 6단 아이신 자동변속기 조합은 기본에 충실한 제품으로 다가왔다. 물론 주행 경험 결과도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도심 구간에선 더없이 편안한 운행이 가능했고, 하체의 노면 충격은 각종 부싱에 의해 흡수가 잘 됐다. 충격흡수장치와 스프링의 절묘한 조화로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승차감을 살리는데 노력했다. 진동과 소음도 상당한 수준의 완성도를 나타냈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시속 20㎞에서 악셀 오프 상태의 탄력주행을 하다 페달을 다시 밟으면 저단 기어와 높은 토크로 백래쉬 현상이 발생한다. 이 부분을 보완한다면 더없이 만족스러운 주행이 될 것이다.
효율은 고속화도로에서 정속일 때 18㎞/ℓ까지 무리없이 나왔다. 시내구간도 12~14㎞/ℓ 정도이니 비교적 좋은 수준이다. 내장재의 마감과 소재 사용 등은 쌍용차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요인이 되고도 남는다.
개인적으로 쌍용차에 대한 바람은 한국의 랜드로버 혹은 짚과 같은 회사로 성장하는 것이다. 물론 1950년대 하동환 자동차정비소로 출발한 후 지금까지 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전통과 역사 만큼은 쌍용차 또한 결코 뒤지지 않아서다. 그 시절, 비록 영국이나 미국처럼 체계화된 자동차 제작과정은 아니어도 타고 다닐 수 있는 차를 만들었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니 말이다.
사견이지만 자동차는 두 종류라고 생각한다. '타고 싶은 차'와 '탈 만한 차'가 그것이다. 그 중에서 이왕이면 타고 싶은 차를 타는 게 일반적인 바람일 것이다.
현재 국내 자동차기업은 타고 싶은 차와 탈 만한 차를 잘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개별 기준의 차이는 있겠지만 분명 두 종류의 차가 존재함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경지에 오르려면 '탈 만한 차'에서 조금 더 '타고 싶은 차'로 옮겨 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타고 싶은 차를 만드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제조사의 역사와 철학, 기업의 현재 환경이 모두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도 저도 아닌 그냥 팔기 위한 차, 기업의 이윤만을 내기 위한 차를 만들다보면 자동차 철학의 의미가 퇴색될 수도 있을 것이다.
티볼리 시승을 계기로 필자는 오프로더 제작사로 출발한 국내 최고의 4WD SUV 기업인 쌍용차에 '한 우물 파기'를 권하고 싶다. 지금처럼 세단(체어맨), 미니밴(로디우스) 등의 여러 차종을 보유하기보다 진정한 SUV 우물 말이다. 최근의 치열한 경쟁에 여러 제품으로 물량 공세를 퍼부어야 하는 것도 맞는 말이지만 티볼리의 완성도를 보면 SUV에만 전념해도 재기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여겨진다.
물론 지금도 쌍용차는 대한민국의 대표 SUV 기업이다. 전통과 철학은 60년에 이른다. 그러나 앞으로 100년을 채우려면 과거를 반면교사 삼아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레인지로버, G바겐, 그랜드 체로키 같은 정체성이 확립돼야 한다. 훗날 후대들이 역사와 철학이 담긴 쌍용차 SUV를 찾게 하려면 말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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