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t뉴스 김예나 기자] <마초적인 성향이 강한 힙합 장르는 더 이상 남성들의 전유물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최근 방송 프로그램부터 음원 차트, 언더그라운드 씬까지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활약이 돋보이고 있기 때문. 그들은 말한다. 성별을 떠나 그저 묵묵히 힙합의 길을 걷고 있는 똑같은 뮤지션일 뿐이라고. 여기 힙합을 사랑하는 여성 뮤지션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최근 한경닷컴 bnt뉴스와 릴레이 인터뷰를 가진 열두 번째 여성 힙합 뮤지션은 래퍼 제이스(JACE)다. 흑인음악 레이블 브랜뉴뮤직 소속 뮤지션이자 그룹 미스에스(Miss $) 래퍼인 제이스는 최근 ‘해시태그’ ‘성에 안차’ 등 싱글 앨범을 발표하며 솔로 래퍼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음악이 유일한 낙이었던
숨 쉴 틈이 필요했다. 학창 시절 펜싱선수로 활동 했던 제이스는 언제나 묘한 신경전 속에서 여유 없는 생활을 견뎌내야만 했다. 그때 그 치열한 경쟁 속 ‘음악’은 제이스에게 탈출구와도 같았다. 잠시나마 평온(平穩)하게 안식(安息)할 수 있는, 유일한 ‘낙’ 이었다.
“펜싱 선수였을 때 너무 힘들었어요. 여유가 없었고, 늘 경쟁하고 신경전이 있었죠. 그래서 잠잘 때랑 운동할 때 빼고는 음악을 들었어요. 잠깐 쉬는 시간에 친구들은 등나무에서 쉬는데 전 늘 이어폰을 꽂고 있었죠. 지금도 동기들 하는 말이 제 이름을 불러도 돌아보지 않았대요. 그 정도로 늘 음악만 듣고 살았어요. 돈이 생기면 무조건 음악 CD를 사서 들었고요.”
워렌 지(Warren G)와 투팍(Tupac) 음악에 매료돼 힙합에 빠졌다. 가수가 되겠다는 마음보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연습하고 놀며 즐기는 힙합이 좋았다. 홈 레코딩으로 데모를 만들고 직접 돌리기도 하면서 래퍼로서 한 발 한 발 걸어갔다.
결코 서두르지는 않았다. 욕심내지도 않았다. 홍대 클럽에서 래퍼들과의 교류가 재밌었고, 그들의 문화를 함께 하는 자체에 행복함을 느꼈다. 제이스는 20대 초반 힙합 음악을 즐기던 당시를 회상하며 “돌이켜보면 제가 래퍼가 된 것은 정말 자연스러웠다”고 입을 열었다.
“당시 힙합 음악이 지금만큼 대중화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홍대 클럽에 가면 유명한 래퍼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어요. 더구나 국내 활동하는 여성 래퍼들이 적었기 때문에 희소성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이어 제이스는 “여성 래퍼의 희소성은 분명 긍정적인 점이었다. 때문에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가장 좋았던 점을 꼽자면 여성으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들에 대한 공감을 잘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어렸을 때는 사랑 이야기가 주를 이뤘지만 지금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만큼 제가 성숙해졌고 보는 시야도 넓어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성에 안차’, 뻔한 사랑 이야기는 싫어
이를 증명하듯 제이스는 최근 새 싱글 ‘성에 안차’를 발표, 여성 래퍼로서 색다른 이야기를 풀어내 화제를 모았다. 신곡 ‘성에 안차’는 외모를 무기 삼아 남성들을 물질적으로 이용하는 일부 몰지각한 여성들을 꼬집는 내용을 담고 있는 곡. 제이스 특유의 또렷하고 시원한 발성의 래핑과 피처링으로 참여한 여성 래퍼 키썸과의 여여 케미가 돋보인다.
“1년 전쯤 작업을 시작한 ‘성에 안차’는 제가 많이 아끼는 곡이에요. 키썸과 함께 작업하면서 완벽히 완성 된 것 같아요. 제 스스로 ‘그러지 말아야지’하는 다짐도 담겨있죠. 제 주변에 남성을 이용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고, 마치 제 능력인 것처럼 구는 여성들을 많이 봤거든요. 그들에 대한 일침이에요.”
제이스는 “뻔한 사랑 이야기는 싫었다. 당당한 한 주체로서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성에 안차’의 메시지를 설명했다. 허나 신곡 ‘성에 안차’는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 가사가 왜곡 해석되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에 관해 제이스는 “당당한 여성을 지지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모든 여성들에 대한 비난이 결코 아니다. 저 역시 한 여성이다”고 말을 이어나갔다.
“‘성에 안차’는 전부터 해 보고 싶었던 스타일의 곡이였어요. ‘언프리티 랩스타’ 출연 전부터 준비했는데, 출연 이후 인지도가 올라가게 되면서 조금 더 자신이 생겼어요. 미스에스 멤버가 아닌 제 개인적인 색깔을 조금 더 보여줄 수 있는 곡이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색깔”에 관한 제이스의 소신은 뚜렷했다. 그는 “무엇보다 촌스러운 게 싫다”며 “노래든 랩이든 제 스타일이든 촌스럽지 않고 세련됐다는 느낌을 줬으면 좋겠다. 제 스스로 보여주기 창피하다면 싫다”고 밝혔다.
“제 색깔을 드러내기 위해 이런 저런 스타일을 다 시도해보려고 해요. 장르를 딱 정해놓지는 않아요. 어떤 비트를 받았을 때 프리스타일로 랩을 해 보고 제 단점을 최대한 가려주면서 장점을 돋보이게 할 수 있겠다 싶은 느낌이 오는 곡이 있어요.”
후회 없는 삶을 위해
데뷔 8년 차 제이스는 현재 스스로와의 경쟁 중이다. 한 단계씩 발전해온 지난 나날들을 되돌아보면 제이스에게 있어 “노력”을 떼놓을 수 없었다. 그는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 역시도 하나의 과정이라 생각 하고 노력 중이다”고 말문을 열었다.
“전 성공의 반대말이 실패가 아니라 포기라고 생각해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한다면 빛을 보는 것 같아요. 언젠가 제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한 번이라도 제 한 몸 불사 지른 순간이 있었나 생각 할 거예요. 그 순간이 없다면 전 정말 후회할 것 같아요. 후회 없는 삶을 위해서라도 더욱 제 열정을 쏟아 붓고 싶습니다.”
제이스는 인터뷰 과정에서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제 나이가 되면 여러 경험이 많아진다. 때문에 여유 있고 다양한 생각들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며 “저만의 강점이 아닐까 싶다. 언니의 조언으로 들어 달라”고 웃어 보였다.
“계속 즐기면서 지금까지 왔어요. 있는 모습 그대로 자연스러운 모습을 꾸밈없이 보이려고 노력했고요. 지금도 마찬가지로 욕심을 내지는 않아요. 다만 꾸준히 발전하면서 누군가 제 랩을 듣고 제이스 언니처럼 랩 하고 싶다고 말한다면 전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언젠가 조금 더 어른이 되면 어떤 생각과 경험들로 채워지게 될까 생각한다. 제 스스로 칭찬해줄 수 있을 위해 지금의 하루에 최선을 다하길 바라본다. 제이스의 말대로 저마다의 성공적인 삶의 원동력은 포기하지 않고 제 스스로 일궈가는 하루하루에 있을 테니 말이다. (사진제공: 브랜뉴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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