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폭스바겐 사태, 산업 전쟁의 산물인가

입력 2015-09-25 15:43  


 폭스바겐 사태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미국에선 집단 소송이 쏟아지고, 각 나라마다 소프트웨어 조작 여부를 두고 조사에 착수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폭스바겐의 소트프웨어 조작 이면으로 고개를 돌리면 이번 사안은 무엇보다 각 나라의 자동차와 에너지 산업의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간 디젤차를 기반으로 성장해 온 독일 중심의 유럽과 가솔린의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의 산업 경쟁이 자리했다는 뜻이다.






 이미 알려져 있듯 디젤 엔진은 1897년 독일 출신의 '루돌프 디젤'이 개발했다. 그는 디젤엔진을 독일은 물론 영국과 프랑스가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특허를 풀었고, 덕분에 유럽은 이들 3국을 중심으로 디젤 승용차가 가파르게 증가했다. 게다가 디젤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다는 점에서 친환경으로 불리며 승승장구했다. 특히 디젤을 적극 밀었던 독일은 디젤 연료의 세금 비율을 낮춰가며 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덕분에 보쉬 등 디젤 기술에 강한 부품 기업도 크게 성장했다.

 그러는 사이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 디젤에 밀려 점차 자동차산업의 입지가 좁아들었다. 그러자 영국은 매연 등을 빌미로 디젤 택시의 퇴출을 선언했고, 프랑스 파리도 도심 내 디젤차 진입을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나타냈다. 이를 두고 '디젤차 퇴출론'이 불거졌지만 일부에선 디젤에 밀린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 디젤의 확산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을 내놓은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디젤 배출가스의 유해성이 계속 지적되며 환경 규제가 강화되자 독일은 산업 근간을 떠받쳐 온 디젤 강국을 이어가기 위해 다양한 정화장치를 고안해냈다. 매연여과장치를 만들어 매연을 줄였고, 선택적촉매환원장치(SCR)를 통해 질소산화물을 감소시켰다. 결코 디젤을 포기할 수 없었던 독일로선 배출가스 규제에 적극 대응하는 방식을 선택했고, 독일 정부도 유럽연합의 디젤 규제 움직임을 반대하며 이른바 '독일 디젤 지키기'에 힘을 보탰다. 덕분에 디젤은 이산화탄소 뿐 아니라 매연과 질소산화물 배출마저 적은 친환경으로 더욱 부각됐다. 디젤을 앞세워야 했던 독일 정부는 '독일=디젤'의 이미지를 구축했고,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클린 디젤' 논리를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폭스바겐은 속임수를 썼다. 여기서 속임수란 소프트웨어 조작을 의미한다. 배출가스 시험을 할 때만 정화장치가 작동하도록 했고, 시험 모드가 아니라면 효율과 성능이 높아지도록 했다. 소비자들로 하여금 '고효율' 체감을 유도해 디젤의 우수성을 부각시켰다는 얘기다.

 디젤의 배출가스를 줄이는 여러 장치가 있음에도 폭스바겐이 소프트웨어 조작을 선택한 것은 기본적으로 '이익' 때문이다. 유럽보다 배출기준이 까다로운 북미 시장의 디젤 확산을 위해 질소산화물 저감장치인 SCR을 부착하면 손쉽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지만 가격이 비싼 만큼 제품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가격에 민감한 소형차에서 SCR의 적용은 가솔린 대비 비싼 가격을 형성할 수밖에 없고, 이 경우 디젤차에 대한 구매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디젤을 앞세워 미국 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려던 폭스바겐의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했던 셈이다. 이에 따라 소프트웨어 조작을 선택했는데, 이는 개별 소비자의 경제적 이익에도 부합하는 조치로 여겼다. 운행 중 질소산화물 배출이 기준을 훨씬 초과해도 효율만 보면 소비자도 이익이니 눈을 감아버렸다. 그 결과 폭스바겐은 인위적으로 환경을 오염시킨 '나쁜 기업'’으로 추락했다.

 이번 폭스바겐 사태는 향후 각 나라의 자동차와 에너지 정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먼저 미국은 디젤의 배출규제를 더욱 강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어차피 디젤 기술은 독일과 경쟁하기 어려운 만큼 가솔린 위주의 북미 시장을 지켜야 미국 자동차산업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불어 유럽도 디젤 배출규제 강화에 나설 수밖에 없다. 독일 디젤의 성장을 견제해야 한다는 시선이 적지 않아서다.

 하지만 소비자의 시선은 조금 다르다. 디젤의 배출가스가 환경에 유해한 점은 알고 있지만 효율이 가솔린 대비 좋다는 점에서 경제적 이익과 직접 부딪치기 때문이다. 이른바 '환경과 경제적 이익'이 정면 충돌하는 양상이다. 더불어 이번 디젤 사태는 국내 에너지 업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정부가 디젤 규제를 강화하면 LPG 쪽이 상대적으로 반사이익을 볼 수도 있어서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디젤 감축이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 먼저 규제는 두 가지를 가정해볼 수 있다. 디젤 가격 인상으로 연료 자체의 수요를 줄이는 방법과 배출규제 강화로 디젤차 판매를 위축시키는 방안이다. 그러나 전자는 화물 등 산업계의 반발이 불가피한 만큼 현실적인 대안은 후자가 꼽힌다. 후자는 배출규제 대응에 따른 제품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들의 관심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가솔린으로 수요가 이동하면 정부는 세수도 늘릴 수 있다. 가뜩이나 디젤차 확산으로 유류세가 줄어드는 마당에 디젤 규제 명분이 생겼으니 현 사태를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사실 이번 사태는 폭스바겐의 소프트웨어 조작에서 시작됐지만 크게 보면 각 국의 산업 및 에너지정책과 깊게 맞물려 있다. 디젤을 적극 앞세우는 독일, 가솔린으로 시장을 방어하려는 미국, 그리고 연료의 세수를 고민하는 각 국의 정부까지 네트워크는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 조작은 폭스바겐이 했지만 해당 사안을 두고 각 나라가 여러 부문에서 개별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배경이다.  

 권용주 선임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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