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도리화’를 닮은 배수지의 노래

입력 2015-11-25 08:38  


[bnt뉴스 이린 기자 / 사진 김치윤 기자] 벌이 향기마저 아름다운 꽃을 찾듯 목소리에 짙은 향기를 품은 진채선과 어느 샌가 닮아간 그에게 눈길이 간다. 그를 처음 스크린에서 만난지 3년이 지난 지금, 가수로서 그리고 배우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한 가수 겸 배우 배수지가 우리 앞에 다시 섰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bnt뉴스와 만난 영화 ‘도리화가’(감독 이종필)의 배수지는 소녀의 순수함과 여인의 성숙함을 모두 지니고 있었다.

‘도리화가’는 1867년 여자는 판소리를 할 수 없었던 시대, 운명을 거슬러 소리의 꿈을 꿨던 조선 최초의 여류소리꾼 진채선(배수지)과 그를 키워낸 스승 신재효(류승룡)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부모님을 일찍 잃은 후 홀로 기생집에서 귀동냥으로 소리의 꿈을 꾼 진채선의 일대기를 그린다.


그렇기에 ‘도리화가’는 조선 최초의 여류 소리꾼 진채선의 성장기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실존 인물을 연기할뿐더러 진짜 소리꾼다운 소리를 낼 수 있을지 예비 관객들의 관심이 배수지에게 쏠렸다. 특히 많은 이들이 생각했듯이 ‘도리화가’는 배수지에게 영화 ‘건축학개론’(감독 이용주) 이후의 의외의 선택이자 도전이었다.

“몰론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해 염려가 됐어요. 자료도 많이 없었고 조심스러운 부분도 많았어요. 그래서 소리에 대한 진심이 잘 전해질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처음 실존인물을 연기해 해봤는데 느낌이 많이 다르더라고요. 제가 진채선이라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상상하면서 준비했습니다.”

단순한 감정을 실은 노래가 아니라 한국의 미를 담은 우리의 소리 판소리인 만큼 적지 않은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배수지는 그 우려를 씻어내며 진채선에 점점 녹아들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선택한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 중 하나도 소리와 연기가 같이 있었던 작품이기 때문이었어요. 소리 역시 대사에 음을 붙인 거라고 생각했어요. 낯선 판소리 장르를 처음 배워봤지만 배우면서 느꼈던 건 ‘친근하고 좋구나’라는 마음이 컸어요.”


배수지는 진채선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찾았다. 폭우 속 밧줄을 허리에 감은 채 득음을 위해 악을 쓰지만 결국엔 털썩 주저앉고 마는 그의 모습에서 울컥함을 느꼈다는 그. 지금의 배수지가 있을 수 있었던 것 역시 노력, 또 노력이었다.

“진채선보다는 상황이 나쁘진 않았지만 과거 가수를 한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을 때 반대가 컸어요. 부모님을 설득시켜야 했었죠. 부모님에게 진심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기 전 길거리 공연을 하는 댄스 동아리에 들어가서 단장님께 ‘연습생으로 받아달라’고 무작정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엄마에게 연습실 주소를 알려드렸는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연습하고 있는 절 몰래 보고 가신 적도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공연을 처음 올라가는 날에도 보러 오셨어요. 그 다음부터는 응원해주시더라고요.”

“그런데 연습생으로 들어와서가 다가 아니잖아요. 집이 멀어서 늦게 오고 일찍 가는 저만 뒤쳐지는 기분 때문에 악바리처럼 했어요. 그렇게 진채선이 한계에 부딪히는 부분들이 저와 겹쳐보여서 많이 공감이 갔습니다. 많은 신들에서 대본에는 없었지만 저도 모르게 목소리부터 떨리더라고요.”


진채선에게 스승이자 연모의 상대 신재효가 있었듯 배수지에게도 류승룡의 존재는 기라성 같은 연기 선배로서 큰 힘이 됐다.

“진채선에게 신재효처럼 류승룡 선배님도 제 진짜 스승님이시잖아요. 어느 날 차에서 쪽잠을 주무시고 있는 모습을 보고 ‘괜찮냐’고 여쭤본 적이 있었어요. 그때 ‘물어봐줘서 고마웠다’고 사소한 것까지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처음에 선배님이 굉장히 어려워서 쉽게 여쭤보지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고 있었는데 마음을 열라고 해주시면서 잘 챙겨 주셨어요. 제가 많이 부족한 점들을 캐치하셔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두 번째 스크린 나들이인 만큼 처음의 이미지가 여전히 굳혀져 있는 것이 사실. 이에 배수지는 “‘국민 첫사랑’이라는 수식어는 넘어야할 산인 것 같다”며 “이번 영화를 통해서 희미해지기만 한다면 나에게는 좋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끝까지 그 수식어를 가져갈 수는 없는 거지 않냐”며 해사한 미소를 지었다. 그 때와는 또 다르게 제법 아름답다.


더불어 배수지는 ‘도리화가’에 대한 행복한 기억을 털어놨다. 진채선이 신재효와 가장 특별하고 애틋한 마음을 공유하며 성장한 것처럼 배수지에게도 ‘도리화가’가 배수지를 훌쩍 크게 만들어 준 것은 틀림없었다.

“너무너무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뭐든 다 좋은 추억으로 남겠지만 유독 기억나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아름다웠던 곳들의 바람이 기억나요. 흙냄새, 폭포소리까지 오래오래 진하게 배어있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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