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馬車이야기⑩]'인마일체(人馬一體)'의 짚 랭글러

입력 2015-12-01 09:43  


 승용차의 일차적인 목적은 이동이다. 그리고 '이동'이라는 목적을 드러내기 위해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른바 '스토리텔링'이다. 특히 차명(車名)을 정할 때 이야기는 빠질 수 없는 재미 요소다.  

  이런 목적에 가장 부합한 게 짚 '랭글러’(Wrangler)'가 아닐까. 영어로 '카우보이' 또는 '승용마를 돌보는 사람'이란 뜻을 지닌 랭글러 이미지는 드넓은 들판 혹은 자동차로 갈 수 없는 험한 곳, 장애물이 있는 길이라도 거침없이 달려간다는 뜻을 담고 있다. 즉 자연스럽게 말(馬)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짚(JEEP)은 1940년대 미군이 사용하던 군용차 윌리스 MB가 모태다. 윌리스는 전쟁 후 AMC로 바뀌었고 1987년 현재의 크라이슬러에 합병됐다. 짚(브랜드명) 랭글러(차명)는 두가지로 출시됐다. 천장이 플라스틱으로 된 정통 오프로더인 '루비콘'과 전체가 강판이 된 현대식 모델의 '사하라'가 그것이다. 그러나 여기선 주제에 맞게 '루비콘'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루비콘을 돌보는 사람' 또는 '루비콘=카우보이' 공식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랭글러는 공통적으로 배기량 2.8ℓ 디젤과 5단 자동변속기, 파트타임 사륜구동(네바퀴굴림) 방식으로 조합됐다. 분당 엔진회전수(rpm) 3,600에서 최고 200마력을 낸다. 최대토크는 1,600rpm일 때 46.9㎏m다. 

  랭글러 루비콘 운전대 좌측을 보면 '스웨이 바(Sway Bar)'와 '액슬 록(Axle Lock)'이란 버튼이 있다. 스웨이 바란 코너링 때 좌우 흔들림을 막기 위해 바퀴 상하 움직임을 제한하는 스태빌라이저를 무력화하는 기능이다. 액슬 록은 차축을 잠궈 바퀴마다 구동력을 일정하게 나눠주는 기능으로, 보통 험한 도로를 탈출할 때 사용한다. 군용차, 오프로더의 DNA를 갖추다 보니 편안함보다 극한의 환경에서 성능을 높이는데 초첨이 맞춰져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카우보이란 랭글러 이미지와 맞는 말(馬)은 어떤 게 있을까? 우선 카우보이라고 하면 소몰이, 로데오가 떠오른다. 여기에 부합되는 말은 단연 미국의 '쿼터호스(Quarter Horse)'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쿼터호스는 단거리 경주(400m 경주)에 아주 뛰어나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미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 데려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17~18세기 사이 동부지역에 정착한 영국인들이 자신들이 데려온 말과 스페인 혈통의 말을 교배시켜 양질의 만능 역용마(役用馬)로 활용했다. 밭을 가는 등 힘든 일도 거뜬히 해내고 굳세고 다부진 성격 때문에 쿼터호스는 정착민들의 '오른팔'이 됐다. 또한 활발하고 겁 없이 소떼 사이를 잘 누비고 다닌 탓에 서부 개척 시절에는 소몰이용으로 유용하게 활용됐다. 빠른 속도에서도 소떼의 움직이는 방향 및 멈추는 타이밍 등을 예측할 정도로 '소 감각'이 타고났다. 덕분에 비좁은 단거리 공간에서 말 경주를 즐기던 영국인들의 애마로 인기가 높았다.

 이처럼 즉석 시합에서 만능 재주꾼이었던 쿼터호스는 단거리 경주용으로 본격 활용되기도 했다. 이름에서 말해주듯 후구가 엄청나게 발달해 단거리 경주 때는 출발 지점부터 전속력으로 질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더러브레드 경주가 생겨나면서 쿼터호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목장산업이 기계화되며 쿼터호스 역시 다른 승마용처럼 지금은 레저용 말이 됐다. 오늘날 쿼터호스는 장애물 경주, 로데오, 단거리 경주와 같은 서구형 경주에서 매우 크게 활약하고 있으며, 최근 이런 스포츠들이 다시 인기를 얻으며 동시에 쿼터호스도 주목받는 말 품종 가운데 하나로 다시 우뚝 섰다.  
  




  랭글러의 다른 뜻 '승용마를 돌보는 사람'처럼 말과 관련된 산업에는 독특한 직업이 의외로 많다.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말 치과의사(Equine Dentist)', '동물 랭글러(Animal Wrangler)', '동물 법의학 전문가(Animal Forensic Specialist)', '호스 위스퍼러(horse Whisperer)' 등이다. 

 이 가운데 호스 위스퍼러는 1998년 영화 '호스 위스퍼러(The Horse Whisperer)'로 제작됐을 정도다. 영국의 작가 니콜라스 에반스의 원작을 로버트 레드포드가 연출하고, 직접 주연한 드라마로 원작자가 영국 남서부지방에 머물 때 대장장이에게서 들었다는 호스 위스퍼러에 관한 이야기다. 심한 정신적 충격으로 고통받던 말을 어떤 호스 위스퍼러가 귓속의 속삭임으로 감쪽같이 치유했다는 얘기에 감동받은 원작자는 말(馬)을 통해 상처입은 영혼을 가진 사람에게 초점을 맞췄다. 

 영화의 내용은 흥미롭다. 뉴욕 잡지사 편집장 애니의 딸 그레이스는 승마를 하다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는데, 충격을 받은 애마도 사나워진다. 딸의 좌절과 방황을 보다 못한 애니는 말의 영혼을 치유해준다는 조마사 호스 위스퍼러를 찾아 말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도시 삶에 찌들린 인간의 마음도 변화한다는 과정을 세심하게 표현했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조마사 톰 부커 역을 맡았는데 석양이 지는 어느 날, 광활한 초원에서 사나워진 말에게 다가가기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무릎을 꿇고 몇 시간을 눈으로만 대화한 결과 말이 마음을 열고 톰에게 다가오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다. 원제 '말에게 속삭임(Horse Whispering)'이란 용어는 인간과 말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나타내주는 표현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승마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듣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과 말이 하나라는 뜻을 지닌 '인마일체(人馬一體)'라는 표현이다. 때로는 눈으로, 때로는 마음으로 교감을 나누는데 비록 감정이 없는 차(車)라도 인류의 이동수단에 대한 상상력이 대개 말(馬)에서 나왔던 만큼 말(馬)과 차(車), 그리고 인간과의 소통 방법은 동일하지 않을까 한다. 

 송종훈(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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