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송곳’ 현우, 날카로운 발자국의 이야기

입력 2015-12-01 10:17  


[bnt뉴스 김희경 기자 / 사진 김치윤 기자] “제가 가진 송곳은 길어요. 무디더라도 오래 힘을 주면 결국 뚫어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송곳이죠. 마치 창 같은 송곳이랄까요?”

최근 종영된 JTBC 드라마 ‘송곳’(극본 이남규 김수진, 연출 김석윤)에 출연한 현우가 bnt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송곳’은 대형마트 직원들이 부당대우에 대해 대기업과 고군분투를 벌이는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12회의 짧은 드라마였지만 불편한 현실을 여과 없이 그려내며 묵직한 메시지를 던졌다. 현우는 극중 노조위원회의 한 축을 담당한 주강민 역을 맡아 열연했지만, 인생을 통틀어 노조를 접해보지 못한 그에겐 쉽지 않은 일들의 연속이었다.

“사실 저는 노조를 겪어보진 못해서 현실에 크게 와 닿는 느낌은 없었어요. 근로자의 입장이 아니었으니까요. 감독님과 배우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며 이해했던 것 같아요. 주변 지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많은 힌트를 얻었죠. 노조는 아니지만 부당 대우를 받은 적이 있거나 목격한 사람이 주변에 많잖아요. 어디서나 있을 법하고, 실제로 흔히 있고, 어떻게 보면 쉽게 없앨 수 있는 일들이지만 여전히 주위에 있는 현실이죠. 그 현실이 드라마의 내용이라고 생각하니까 공감되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정확하게 말하면 노조에 대해 100% 이해하긴 불가능했어요. 정말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담겨 있잖아요. 지방노동위원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왜 이렇게 사건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지 들었죠. 사실 제가 실제로 겪어본 일이 아니니까 납득이 사실 잘 안 갔고 너무 어려웠어요. 어렸다는 핑계보단 노조를 안 해본 게 이유 같아요. 제 나이에도 노조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결국 경험의 차이죠.”

그중 현우가 가장 힘들다고 느꼈던 것은 혼란스러운 감정 표현도, 법에 대해 나열하는 긴 대사도 아니었다. 법의 울타리에서 보호받지 못한 이들을 위해 몸 바쳐 싸우는 주강민의 마음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조절하는 일은 어떤 연기보다 힘든 부분이었다.

“노조 연기를 하니까 정말 기분이 좋지 않더라고요. 하면서도 열이 받는 느낌이랄까요? 나중에는 마트 앞에 서 있는 경호원 분들이 막는 연기를 하는데도 화가 났어요.(웃음) ‘송곳’의 배경이 비록 10년 전이지만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드니까 절로 짜증이 나더라고요. 게다가 앞으로도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감독님의 말도 마음에 걸렸고.”


“사실 ‘송곳’ 같은 이야기는 현실에 없을 거라 생각하며 살았어요. 하지만 이수인 역은 실존 인물을 토대로 만들어진 캐릭터잖아요. 그러니까 연기하면서도 ‘이 상황도 실제구나’ ‘이게 진짜 있는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드라마 찍기 전에는 노조 하시는 분들을 보면 단순히 싫어하는 사람을 배척한다는 생각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분들이 자신의 권리를 위해 그렇게 싸우고 투쟁한다는 걸 이해해보는 마음을 갖게 됐죠.”

“대사 속 단어도 어려웠지만 사건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았어요. ‘왜 이렇게까지 해서 돈을 안 줄까’ 혹은 ‘이렇게까지 하면서 돈을 받으려고 하지’ 같은 여러 가지 입장이 세워지니까 답답한 마음이 들었어요. ‘송곳’이 화제성이 있다는 말을 얻은 것도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송곳’의 화제성은 12회로 다다르기까지 소수 시청자들만의 이야기였다. 브라운관을 통해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배우의 입장에서는 시청률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특히 현실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송곳’의 낮은 시청률은 다소 안타깝기도 한 점. 하지만 이에 대해 현우는 강단 있는 표정으로 “시청률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고 답했다.

“시청률은 더 저조할 수도 있었고 더 많이 나올 수도 있었겠지만, 어차피 드라마라는 건 볼 사람은 보게 되는 거잖아요. 크게 염두에 두진 않았어요. 모든 드라마는 모 아니면 도라고 하잖아요.(웃음) 중간 시청률이라는 말도 없으니 애매하고요. 그래도 ‘송곳’은 JTBC에서 재방송도 많이 해주셔서 보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화제성에 대해서도 많이 들었고요. 지금 모든 사람들이 보지 않아도 ‘좋은 드라마’라고 평가해주시는 건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처음에 별 생각이 없었던 분들도 입소문이 나면 나중에 다시 보지 않으실까 하는 기대가 있어요.”


그렇다면 현우가 생각하는 ‘송곳’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탄탄한 원작, 신뢰감 깊은 감독과 배우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지만 드라마 촬영 구조에 대해 남다른 감회를 드러냈다.

“저희 드라마는 영화 같다는 생각을 해요. 일단 쪽대본이 없으니까 다른 드라마처럼 쫓기는 느낌은 없어요. 감독님께서도 충분히 기다려주시고 준비할 시간을 주니까 정말 영화 현장 같아요. 그리고 단합도 너무 잘 되서 촬영하다 보면 빨리 끝나는 기분이 없지 않아 있어요.”

카메라 속 스타들은 언제나 반짝이는 존재이자 사랑 받는 아이콘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들 또한 현대 노동사회 속 암면(暗面)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노동자이기도 하다. 쉴 틈 없이 굴러가는 촬영장이라는 쳇바퀴에서 몸과 정신을 혹사시키며 일을 하다가도, 작품이 끝나면 차기작이 결정될 때까지 기약 없는 휴식에 들어간다.

현우 또한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다”며 차기작이 결정되기 전까지 외국어 공부나 운동으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을 것을 이야기했다. 초반에는 많은 작품에 출연하면서 출연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자신 같은 사람들을 위해 배우 노동조합이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는 현우. 아무것도 모르던 초짜 시절의 자신을 통해 배운 건 “역시 사람은 겪어봐야 뭐가 있는 지 안다”라는 것이었다.

“아직은 많이 겪어보고 싶고, 많이 배우고 싶어요. 연기도 항상 재밌고요. 이제 시작이고 현재진행형이잖아요. 제가 실제로 TV에 나오긴 하지만 연예인이라는 자각은 별로 하지 않아요. 아직 크게 파급력을 일으킬 배우는 아니기 때문에 그저 배우고 있는 단계죠. 그렇게 배우다보면 전보다 낫더라고요. 초창기 연기보단 지금이 훨씬 낫지 않나요?(웃음)”


극중 이수인의 대사 중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짐만 져라”는 대사가 있다. 이는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리한 부담과 촌철살인의 정신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지금처럼 자신의 짐을 내려놓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가 담겨있다는 뜻이다.

현우는 롤모델이라는 목표를 자신의 짐칸에 싣지 않았지만, 그만큼 자신의 발걸음을 신중하고 무겁게 내딛고 있었다. 비록 다른 배우들 중 가장 큰 발은 아니었을지언정, 그 깊이는 그가 말한 ‘창 같은 송곳’처럼 예리했다. 자신이 남겨갈 발자국이 부끄럽지 않도록 그는 계속해서 천천히 제 발자국의 깊이를 늘리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었다.

“예전에는 ‘누구처럼 되고 싶다’는 목표가 뚜렷하게 있었는데, 요즘 현장에서 보는 신인과 선생님들에게는 다들 한 가지씩 배울 점이 있더라고요. 항상 제 스스로에게 부족함을 느끼죠. 저 혼자 연기하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게 연기라는 걸 요즘 많이 깨닫고 있어요. 새삼스럽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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