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馬車이야기⑫-페라리 로고에 숨겨진 비밀

입력 2016-01-01 09:24  


 '말(馬)'을 엠블럼으로 사용하는 사례는 포르쉐(Porsche) 외에 세계적인 스포츠카의 대명사 '페라리(Ferrari)'가 있다. 페라리 브랜드 로고를 보면 노란 바탕에 두 발로 선 말 그림을 볼 수 있다. 페라리를 상징하는 '도약하는 말'을 나타내는 '프랜싱 호스(Prancing horse)'라고 부른다. 굳이 번역하면 '껑충거리며 걷다, 의기양양하게 나아가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노란색은 페라리 본사가 있는 이탈리아 모데나 마라넬로 지역을 상징하는 색상이다. 페라리는 이 로고를 빨간 경주용 차에 붙이고 F1을 비롯한 수많은 경주에 참가해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그런데 로고의 시작은 매우 흥미롭다.
  




 페라리 창시자인 엔초 페라리는 13살부터 자동차를 운전했던 에너지 넘치는 소년이었다. 군 제대 후 트럭 운전을 하다 우연찮게 레이서의 추천으로 스포츠카 제작사 테스트 드라이버로 들어갔다. 1919년 첫 대회 출전기회를 잡았지만 회사가 어렵게 돼 경주 출전이 중단됐다. 그러자 자신이 이끌던 팀과 함께 알파로메오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1923년 작은 서킷에서 우승하면서 그의 성장 잠재력을 지켜본 엔리코 바라카 백작 부부가 함께 했다. 

 이 때 백작은 1차 세계 대전 이탈리아 최고 파일럿으로 활약하다가 1918년 세상을 뜬 아들 프란체스코 바라카의 전투기에 그려졌던 말(馬) 그림을 페라리에게 사용할 것을 제안했고, 엔초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슈퍼카로 손꼽히는 페라리의 앞발을 든 야생마는  '바라카의 말(Baracca’s Cavallino)'로도 불린다.

 그런데 '바라카의 말' 은 포르쉐가 사용하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문장에 나온 말과 동일한 모습이다. 이를 놓고 프란체스코 바라카가 격추시킨 독일 전투기의 말 그림을 보고 자신의 비행기에 그려 넣었다는 설(說)도 있고, 당시 격추된 독일 전투기 조종사가 독일 슈투트카르트 출신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명확한 것은 아니다.

  사실 스포프카 외에 말(馬) 분야에서도 이태리와 독일은 경적지 않은 경쟁을 펼쳐왔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말(馬) 품종으로는 마라넬로 지역 이름과 비슷한 '마레마노'가 있다. 와인 생산지로 유명한 마레마는 파이오비노에서 오르베테로까지 펼쳐진 티리니언 바닷가 해안지대로, 옛날에는 물에 가라 앉았다가 후에 척박한 황무지가 된 늪지대다. 

 마레마노 품종의 기원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6세기 페데리코 그리손에 의해 유명해진 네폴리탄 종(種)으로부터 기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17세기까지 이탈리아는 유럽에서도 말 생산을 주도했으며, 그 중 가장 유명한 품종이 네폴리탄이었다. 네폴리탄은 아랍, 바브, 스페인 혈통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리손은 나폴리 승마스쿨의 창시자이고 그리스인 크레네폰 다음으로 전통 승마의 최고 기수로 여겨진다. 후에 노르포크 로스터를 포함해 수입된 몇몇 더러브레드와 이종교배가 이뤄지면서 마레마노로 등장했다. 

 아름다운 외형을 가진 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장 빠르지도 않지만 마레마노는 강인함과 침착한 성격을 가진 정직하고 좋은 일꾼으로 사용되고 있다. 자연에서 먹을 것을 얻는 경제성으로 군대나 경찰 순찰마로 유용하고, 가벼운 짐수레 끌기나 농사일, 소몰이에도 적합하다. 
 
 또 다른 품종으로는 '무르게제(Murgese)'가 있다. 올파노 평야와 그라비아 근처 언덕이 원산지인 무르게제의 기원은 적어도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원래 짐수레 말이었던 무르게제는 아일랜드 짐수레 말에 못 미치고 훌륭하게 정착된 품종이 아니지만 현대에 들어서 무르게제 암컷과 더러브레드 및 웜블러드 씨수말과 교배를 통해 승용마로 각광받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탈리아의 말 산업이다.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뒤늦게 발달했음에도 마레마노와 무르게제 사례에서 보듯 양질의 웜블러드와 더러브레드 씨수말을 수입한 뒤 이탈리아 암말과 이종교배를 통해 이탈리아 고유의 말(馬)을 만들어 나갔다는 점이다. 이런 식으로 살레노, 살다니안, 시실리안 앵글로 아랍종이 만들어졌다. 비록 페라리 브랜드 기원에 대한 여러 가지 설(說)은 차치하고라도 산업의 다양성을 인정한 채 자신들의 색깔을 입혀 산업의 한 축으로 육성시켜나가는 이탈리아인들의 지혜는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에필로그 
 사람과 함께 생활하다 함께 매장되기도 하는 말(馬)은 인류의 반려동물이다. 우리 민족은 말(馬)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역사가 길다. 말은 선사시대부터 마신(馬神)으로 신성시 돼 때로는 천마(天馬), 용마(龍馬), 신마(神馬)로 불리며 국가의 안위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역 등 다양하게 이용되는 중요한 존재였다. 
  
 현재 말(馬) 품종은 모두 207종이 등록돼 있다. 이 가운데 67종은 체고 58㎝ 이하인 조랑말이며, 36종은 노역용 말, 104종은 스포츠 경주용 말이다. 말의 가축화는 선택적 번식과 영양가 있는 사육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말의 크기가 증가하거나 품질의 향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 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인간이 말에게 요구하는 특정한 일의 종류였다. 무거운 하중 운반을 필요로 하는 이들은 힘을 위해 말을 교배시켰고, 빠른 수송을 필요로 하는 이들은 스피드를 위해 품종을 섞었다. 
   
 지금은 과학기술 및 산업의 발달로 그 바통을 자동차가 이어받았는데, 매해 세계적으로 300여대 이상의 자동차가 새로운 브랜드 및 기능을 탑재한 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자율주행차 또한 머지않아 보편화 될 것이다. 

 여기서 말(馬)과 차(車)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인간의 삶과 연결돼 있으면서 오랜 기간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형성됐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자동차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려면 말을 살펴보는 것조 좋은 방법이다. 본 칼럼은 그런 차원에서 기획됐고, 12회가 연재됐다. 아무쪼록 말(馬)에 대한 흥미로움이 자동차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송종훈(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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