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뮤지컬 ‘레베카’, 부재자의 존재감

입력 2016-01-29 10:36   수정 2016-01-29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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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nt뉴스 이승현 기자] 한 인물의 이름을 작품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극중 ‘레베카’는 망자의 이름일 뿐 실루엣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극에 언급되는 인물 중 유일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부재자. 이가 표출하는 존재감이란.

1월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뮤지컬 ‘레베카’ 서울 공연이 개막했다. ‘레베카’는 전 부인인 레베카의 죽음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막심 드 윈터와 죽은 레베카를 숭배하며 맨덜리 저택을 지배하는 집사 댄버스 부인. 사랑하는 막심과 자신을 지키기 위해 댄버스 부인과 맞서는 ‘나(I)’를 중심으로 맨덜리 저택의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해 가는 작품.

극중 레베카는 외모와 사교성, 막심이 알고 있던 그의 진실에 대한 언급만 있을 뿐 인물이 직접 극에 등장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레베카는 극 전체에 끊임없이 언급되며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사회적 위치는 분명 우위에 있으나 레베카 앞에서 한없이 고통 받고 약한 존재가 되는 막심과 그들보다 사회적 위치는 낮으나 레베카의 사람으로서 그를 잊지 못하는 댄버스 부인의 대립이 어두운 무대 위 빛을 발한다.


두 종류의 인물들이 레베카의 부재로 부딪히는 하이라이트는 2막의 시작, 죽은 레베카의 침실에서 벌어지는 댄버스 부인과 나가 부르는 넘버 ‘레베카’에서 폭발한다. 이 장면을 통해 댄버스 부인은 레베카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더 짙게 드러내고 나 역시 강해지는 계기를 갖는다.

넘버 ‘레베카’의 배경은 레베카의 침실과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 넘버가 진행되는 동안 어딘가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과 레베카를 울부짖는 또 다른 목소리들이 객석 사방에서 들려온다. 강한 힘을 품은 댄버스와 더 이상은 지지 않겠다는 뜻을 품은 나의 접전에 한껏 이입해있을 때 객석을 감싸는 레베카를 외치는 소리들은 소름이 돋을 정도.


아는 것 없이 순박하기만 했던 나 역시 레베카라는 인물을 통해 가장 큰 변화를 맞는다. 사랑하는 막심을 따라 맨덜리에 들어가지만 그 행복도 잠시, 존경받지 못하면 무시 받는다며 뒤에서 쑥덕이는 하녀들을 비롯 ‘맨덜리의 유일한 안주인은 레베카’라 외치는 댄버스 부인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것 없다. 거기에 유일한 내 편이라 믿었던 남편 막심까지 레베카와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차갑게 돌변하니 나라는 인물이 일생일대의 변화를 맞는 것도 당연지사.

나는 그저 순수하기만 했던 모습을 뒤로 한 채 막심의 곁에서 든든한 조력자가 된다. 막심의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게 그에게 계속해서 사랑을 표현하며 댄버스 부인에 맞서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 나는 레베카가 해왔던 것이 아닌 자신이 그리는대로 행동하고 꾸미며 당차고 강한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레베카, 이름 세 글자가 끌고 가는 세 시간의 여정은 지루할 틈 없이 관객들을 맨덜리 저택에 가두고 막심과 나 앞에 닥친 문제들을 함께 마주하게 만든다. 극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의 말을 통틀어 레베카 드 윈터는 아름다움 속 영악함을 품은 여인이라는 것 밖에 알 수 없지만 그가 죽어서도 뿜어내는 존재감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한편 막심 역에 류정한 민영기 엄기준 송창의, 댄버스 부인 역에 신영숙 차지연 장은아, 나(I) 역에 김보경 송상은이 출연하는 ‘레베카’는 3월6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사진제공: 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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