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t뉴스 조혜진 기자 / 사진 백수연 기자] “제 욕심은 높은 꼭대기에 서는 게 아니라 가늘고 길게 가는 거예요. 송곳처럼 삐져나오지 않고 어느 작품이든 잘 스며들 수 있는 연기를 하는 게 꿈이에요.”
1월29일 서울 중구 소공동 더플라자 호텔 다이아몬드홀에서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극본 이우정, 연출 신원호, 이하 ‘응팔’) 종영인터뷰 및 기자간담회를 가진 라미란은 시종일관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말을 이었다.
라미란은 ‘치타여사’ 애칭을 얻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와 극중 아들 정환(류준열)의 첫 사랑이 불발된 것에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는 등 작품에 깊은 애정을 보냈다. 쌍문동 라 여사로 활약하며 망가짐을 마다않고 브라운관에 웃음을 안긴 그는 “그래서 이제 밑천이 다 떨어졌다고 했더니 감독님은 본인 알 바가 아니라고 하더라”고 말해 현장에도 웃음을 자아냈다.
또 그는 “‘응팔’ 속 지문이 가지는 힘이 큰 것 같다”며 대본의 신선함을 극찬하기도. “여권 신 같은 경우도 ‘아들 미안(미안한 듯 멋쩍은 웃음)’이라고 적혀있어 ‘이건 어떤 웃음이지’하며 한참 고민했다. 분명 재미있는 장면인데 슬프다거나, 슬픈 신 인줄 알았는데 재밌는 장면들이 많았다”고 이야기했다.
“저는 대본에 충실한 편이에요. 대본에 있는 대로 하는 건데 많은 분들이 애드리브인줄 알더라고요. 성균 씨 때리는 것만 약간 애드리브였어요(웃음). 이번이 14번째 아줌마 연기라고 하지만, 제가 이미 아줌마로 연기를 시작을 했기 때문에 특별히 따로 준비한건 없어요. 다만 대중들이 제게 바라는 아줌마 캐릭터가 수다스럽고, 우악스러운 아줌마들이 대부분이니 그 기대에 약간씩 빗겨가는 캐릭터를 만들어 재미를 주려고하죠.”
‘응팔’ 속 쌍문동 5인방의 남편 찾기만큼이나 화제가 된 것은 바로 세 가족이야기. 기존 러브라인에 초점이 된 드라마들과 달리 드라마로 가지는 특별한 점을 묻자 그는 바로 “근래에 보기 드문 드라마였다. 배우로서 이런 작품을 만나기 쉽지 않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가족들은 뒤로 빠져 러브라인의 배경이 되는 경우가 많다. 주변인으로서 소모가 되거나 엄마, 이모 등 주변인으로서만 소모가 됐는데 여기서는 전면에 가족 이야기가 나오고, 가족마다 에피소드가 다뤄졌다. 다른 드라마를 찾아봐도 가족 얘기를 앞세운 드라마들이 없는 것 같다. 요즘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가 많이 없는데 이런 많이 만들어지면 좋지 않을까”라고 소신을 전했다.
드라마 ‘응팔’은 물론 영화 ‘국제시장’(2015, 감독 윤제균) ‘히말라야’(2016, 감독 이석훈)까지 흥행에 성공하며 대세 배우로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에 대해 그는 “얼떨떨하다. 한꺼번에 우박이 쏟아지는 것 같지만 즐기려 한다”고 답했다. ‘내가 떴구나’ 느끼는 시점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도 라미란은 “지금 이렇게 하는 게 뜬거다. 언제 제가 이렇게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겠나”라며 “전 동네를 자주 돌아다닌다. 맨얼굴로 마트도 다니는데 ‘응팔’ 이후 동네를 다니면 뒤에서 ‘정봉이엄마’라고 부르더라. 그럼 제가 또 눈치 없이 돌아본다. 요즘 어르신 분들도 좋아해주시고 라여사, 치타여사 알아봐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고 있다”고 솔직하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작품이 흥행한 것은 저만의 공이 아니니까요. 작품이 잘된 것은 저한테도 좋고 모두한테 좋은 일이죠. 제가 ‘얼마만큼 올라왔구나’라는 생각은 안 해요. 지금은 반짝이라고 생각해요. 배우생활을 오래할거라면 그 인기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제 작품이고 좋아서 하는 거니까 제가 거기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배우라는 게 위험하고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직업이지 않나. ‘이만큼 올라왔구나’가 아니에요. 작은 역을 하더라도 ‘무언가 더 보여드려야 하는데’ ‘도움이 돼야하는데’하는 생각 때문에 점점 부담이 돼요. 글쎄요. 제가 얼마나 톱스타가 되겠어요. 가늘고 길게 가는 게 제 목표에요(웃음).”
라미란은 여러 흥행작에 얼굴을 비추며 바쁘게 활동한 만큼,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진 않았는지와 대부분 중복적인 캐릭터로 활약한 것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건 정말 행복한 거다. 그전에 일하는 기간보다 쉬는 기간이 많았던 때에 비하면 지금 일을 더해도 그것에 대한 갈증이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너무 많이 나와서 질려 버리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지만 그래도 해야 할 것 같다. 일을 안 하면 배우가 아니지 않나. ‘너무 많이 소진돼서 쉬어야 겠다’라는 건 저한테는 건방진 생각인 것 같다.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더 할 것”이라고 소신 있게 전했다.
“사실 ‘응팔’에서 재밌는 모습을 보여드렸는데 다음 작품에서는 재밌거나 많이 띄거나 그런 역할이 아니라 시청자분들이 실망할 수도 있어요. 완급 조절한다 생각하고 계속 해야죠. 보일 수 있게 노력하는 것 보다는 그 작품에서 필요한 정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라미란으로서 아니라 그 작품 속 캐릭터로 보여야하니까요. 비슷한 역할들을 하더라고 제가 겹치지 않게, 질리지 않게 계속 연구를 해내야죠. 다른 작품에서는 다른 사람으로 보일 수 있게끔.”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연기 하겠다’는 라미란은, 그가 현재 배우로서 꿈꾸는 최대한의 욕심을 밝히기도. “앞서 말했지만 욕심은 가늘고 길게 가는 거다. 송곳처럼 삐져나오지 않고 어느 작품이든 잘 스며들 수 있는 그런 연기를 하는 게 꿈이다. 높은 꼭대기에 서고 싶다는 생각은 연기 시작할 때부터 하지 않았다. 어딘가에 올라가면 내려와야 하는데 그걸 제가 잘 견딜 수 있을까 모르겠다. 작품만 좋다면 제가 주연이든 조연이든 단역을 하든, 차이는 없다”고 ‘역할’이 아닌 ‘연기’ 그 자체에 욕심을 보이는 천상 배우다운 모습을 보였다. 결코 가늘다고 할 수만은 없는 연기로 작품에 녹아드는 연기를 선보이는 그가 연기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아줌마 역할 열 몇 번을 해도 그게 같은 아줌마가 아니잖아요. 잠깐이라도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는 게 재밌어요. 대리만족을 계속 할 수 있는데, 이것보다 재밌는 직업이 어디있겠어요(웃음). 사랑해주시면 좋고, 돈도 벌 수 있고. 물론 얼굴을 팔고 몸으로 재미를 전달하지만 그걸 좋게 봐주시는 게 감사할 뿐이죠. 제게 있어서는 최고의 직업인 것 같아요.”
그가 한 마디, 한 마디 전할수록 연기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진심이 다가왔다. 그런 라미란에게서 브라운관이든 스크린이든 무대 위의 모습이든, 어떤 모습으로든 그와 꾸준히 마주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바람대로 길게 이어갈 그의 연기 인생 중 2015년을 그는 “나름대로 잘 숨어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막판에 봇물 터지듯 작품이 잘돼서 바쁜 사람이 됐다. 2015년은 숨고르기라고 생각한다. 영화도 전에 다 찍어놓은 거고 사실 올해에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하고 ‘응팔’ 밖에 안했다. 여태 받았던 사랑이나 관심에 비해 뻥튀기처럼 불어난 해”라고 표현했다.
“이제 2016년엔 2015년에 불어난 뻥튀기를 먹어야죠(웃음). 어떤 기자님이 제가 이제는 쉬어야할 때가 아닌가라는 글을 쓴 걸 본적이 있어요. 대중 분들이 제가 작품을 많이 하는 것처럼 안보이게 숨어서 잘 할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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