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하루 아침에 올 것 같은 전기차시대, 현실은...

입력 2016-03-21 08:40   수정 2016-03-21 17:13


 2030년까지 제주도가 모든 자동차를 전기차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건 지난 2009년부터다. 똑똑한 전력 활용으로 알려진 스마트그리드 시범단지가 조성되면서 탄소 배출 저감에 관심을 가졌고, 이후 자연스럽게 전기차로 관심이 모아졌다. 한번 충전으로 동서남북 왕복이 가능한 데다 별 다른 산업단지 없이 자연환경 보존에 탄소 저감은 필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기차 보급은 언제나 제주도가 우선 순위였고, 정부도 올해 보급하려는 8,000대의 전기차 가운데 4,000대를 제주도에 배정하기도 했다. 






 탄력을 받은 제주도는 2030년까지 운행되는 43만대의 내연기관차를 모두 전기차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충전망 확대 등을 확언하지만 전문가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현재 구조에서 해당 기간 내에 전기차로 모두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전기차 시대가 되려면 에너지 발전원, 인프라, 가격 경쟁력 등 3박자가 맞아야 하지만 현재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어서다. 물론 인프라를 매년 늘려가고, 기업이 자체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전기차 가격을 빠르게 낮춰가고 있어 향후 10년 이내 일정 부분 전환은 가능하겠지만 그에 걸맞은 여러 필요충분조건이 갖춰지려면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전기차, 확산되려면 경제성 확보해야
 전문가들은 전기차 확산의 필요충분조건으로 크게 네 가지를 꼽는다. 먼저 에너지 공급원의 다양화다. 다시 말해 지금의 화력 및 원자력이 아닌 풍력이나 조력, 파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를 통한 전력 공급이 구축돼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인식하듯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최근 2030년까지 육상 및 해상 풍력발전에서 2,350㎿, 태양광 발전 300㎿, 연료전지발전 300㎿, 바이오·해양·지열발전 30㎿ 등 제주도의 소비전력량 100%를 녹색에너지로 바꾸겠다고 공언했다. 현재 제주지역 전력사용량의 13%인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빠르게 늘려간다는 것.

 두 번째는 에너지 공급망의 확산이다. 현재 제주도 내 50여개에 불과한 급속충전기가 충분히 늘어야만 전기차 구매가 활발해진다는 얘기다. 게다가 충전 방식도 차데모, AC3상, DC콤보 등 모든 전기차의 가능한 복합충전기가 확대돼야 제품 선택폭이 넓어져 대중화도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지금처럼 차데모와 AC3상 충전기만 보급하면 확산이 쉽지 않다는 의미다. 최근 현대차가 제주도에 아이오닉 EV를 내놓으며 당초 비용이 적게 드는 DC콤보 충전 방식을 검토했지만 차데모와 AC3상으로 전환한 것도 한정된 인프라 때문이다.






 세 번째는 재정이다. 현재 기름에 포함된 여러 세금 중 ℓ당 137원(휘발유 기준)에 달하는 주행세는 자치단체 세입이다. 중형차에 휘발유 40ℓ를 채우면 5,480원이 자치단체 세원이지만 이를 전기차로 바꾸면 지방세수가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가뜩이나 충전기 확산과 보조금 지급에 돈이 필요한 상황에서 유류세원의 축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외 기름에 포함된 개별소비세와 교통환경에너지세 또한 큰 폭으로 줄어 정부 재정에 압박이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전기차의 연료인 전력에 별도의 세금을 부과한다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이뤄져왔다. 하지만 이 경우 전기차의 경제성이 떨어져 소비자 외면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환경부가 전기차 충전 때 요금을 받기로 했다. 이른바 유류세를 조금이라도 보전하려는 목적이다.

 네 번째는 전기차 가격이다. 현재 평균 5,000만원에 달하는 가격이 떨어져야 한다. 물론 해마다 배터리 가격이 하락하는 만큼 해결은 어렵지 않고, 성능도 개선돼 1회 충전 후 500㎞ 주행도 가능하다. 하지만 여전히 비싼 가격은 걸림돌이다.  

 ▲결국은 재정, 우선 투입이 관건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할 때 전기차 보급의 핵심은 결국 '돈' 문제로 집결된다. 구매 보조금도 비용이고, 충전 인프라 확산도 비용이다. 또한 전기차 구매력을 높이는 것도 비용이고, 전기차를 구매하려는 소비자도 비용 절감을 위해 막대한 지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한편에선 유류세도 확보해야 하기에 전력세를 늘려가야 한다. 또한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는 것도 비용이다. 신재생에너지를 통한 전력 생산비용이 화력이나 원자력에 비해 상당히 비싸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전기차 시대로 전환은 가능하지만 그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하지만 세원이 한정된 정부로선 세수가 늘어야 전기차 보급을 위한 투자를 늘릴 수 있다. 따라서 단순히 제품의 주행거리 및 충전 시간에만 집중한 지금의 전기차 확대 접근 방법은 오히려 확산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한국자동차미래연구소 박재용 소장은 "1910년대 전기차가 등장한 후 내연기관에 밀린 것은 에너지를 공급하는 인프라 구축 속도에서 주유소 설치가 빨랐기 때문"이라며 "지금은 곳곳에 전선이 들어가는 만큼 전력 공급은 가능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정용이었던 만큼 자동차 운행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은 에너지의 소스와 비용 등 또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기차 확산, 결국은 세금
 최근 전국적으로 전기차 보조금 지급에 적극 나서는 자치단체가 늘고 있다. '친환경'을 화두로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운행차 탄소 배출 감축 방법이 전기차 보급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소형차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국내 시장은 상대적으로 중대형차 대비 탄소배출이 적은 소형차를 외면한 채 오로지 전기차를 내세우고 있다. 박재용 소장은 "보조금을 주면서 전기차를 늘리는 게 과연 적절한 조치인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관련 업계에선 마중물 역할로서 보조금이 필요하다지만 보조금보다 충전망에 우선 투자하는 게 오히려 적절하다"는 입장을 내놓는다. 인프라 확대로 전기차 구매욕구가 올라가면 기업은 당연히 사업에 진출하기 때문이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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