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이 캐시카이 디젤의 배출가스 부품을 임의 조작했다', '아니다, 예외 규정을 준수했을 뿐이다'. 환경부와 한국닛산의 질소산화물 배출가스를 두고 벌어지는 논란이다.
먼저 환경부는 한국닛산이 캐시카이의 엔진 내 연소온도를 낮춰 질소산화물을 줄여주는 배기가스재순환장치(EGR)를 의도적으로 손댔다는 주장이다. 반면 한국닛산은 환경부의 제작자동차 인증 및 검사 방법과 절차 등에 관한 규정 2조 19항에 기재된 예외 규정을 준수했고, 이미 인증 때 신고도 한 만큼 문제가 없다며 맞서고 있다.
그렇다면 환경부가 규정 위반의 근거로 삼고, 한국닛산이 예외 규정 기준을 적용한 환경부 고시 '2조19항'은 어떻게 규정돼 있을까? 지난 2014년 8월 환경부가 고시한 '제작차 인증 및 검사 방법과 절차 등에 관한 규정 2조19항'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임의설정'이란 일반적인 운전 및 사용조건에서 배출가스 시험모드와 다르게 배출가스관련부품의 기능을 저하되도록 그 부품의 기능을 정지, 지연, 변조하는 구성부품(온도, 차량속도, 엔진회전수, 변속기어, 매니폴드부압 등의 변수 감지를 통한 기능설정)을 말한다. 다만, 장치의 목적이 자동차의 안전한 운행, 엔진의 사고 또는 손상을 방지하기 위하여 사용될 경우, 장치가 엔진 시동 조건 하에서 사용될 경우, 배출가스 시험모드에 실질적으로 포함되어 있을 경우는 임의설정으로 보지 않는다"
<환경부 고시 2014-144호>
환경부가 해당 규정을 끌어와 캐시카이를 임의설정으로 판단한 근거는 함께 시험한 다른 차종과 달리 외기온도가 섭씨 35도를 넘을 때 EGR 작동이 멈춰 질소산화물 배출이 과다해진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임의 설정' 위반으로 판단했다. 반면 한국닛산은 예외 규정에 기재된 '엔진의 사고 또는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될 경우'를 근거로 예외에 해당되고, 이 같은 사실은 지난해 12월 배출가스 인증 시험 신청서에 이미 기재했다며 반박하고 있다. 다시 말해 환경부가 캐시카이의 EGR 작동 조건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인증을 내준 마당에 뒤늦게 '섭씨 35도 이상일 때 EGR 작동 중단'을 문제 삼는 것은 이중적 잣대라는 항변이다.
그런데 눈여겨 볼 대목은 환경부가 임의 설정으로 판단한 근거가 사실은 시험 규정에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EGR 작동 조건 온도 자체가 배출가스 시험 규정에 없다. 현재 환경부의 제작차 배출가스 인증 시험은 지난 2015년 1월 발표된 환경부 고시 제2015-6호의 별표4에 규정돼 있다. 특히 디젤은 유럽연합이 규정한 'ECE15+EUDC 모드 측정방법'이 활용되는데, 용어 자체는 어렵지만 한 마디로 유럽과 같은 주행 시험으로 배출가스를 측정하게 된다.
시험 기준에 따르면 배출가스 측정 때는 시험차의 중량과 운행 속도, 주차실의 온도(섭씨 20~30도), 엔진오일과 냉각수 온도(주차실의 온도와 ±2도), 타이어 공기압, 시험실의 습도, 가변송풍, 3,000㎞ 길들이기 등만 있을 뿐 흡기온도가 섭씨 35도 이상일 때 EGR이 작동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자동차 전문가들은 환경부가 '임의 설정' 판단을 내리기 위해 규정에도 없는 '임의 규정'의 잣대를 적용했다는 얘기를 쏟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닛산이 주장하는 예외 규정의 근거는 무엇일까? 환경부 교통환경과 홍동곤 과장은 캐시카이의 흡기파이프 재질을 지목했다. 실제 한국닛산은 다른 차종이 금속 소재를 활용한 것과 달리 원가절감을 위해 EGR 파이프를 고무 소재로 사용했고, 부품보호를 위해 EGR 작동을 멈추도록 했다는 설명을 내놓고 있다. 이른바 예외 규정을 따랐다는 얘기다. 하지만 환경부는 이런 해명에 대해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단이 인정하지 않았다며 '임의 설정' 판단을 내렸다고 말한다.
양측의 팽팽한 입장 차이를 두고 법조계는 어떤 시각을 견지하고 있을까? 현재 규정된 고시만을 근거로 볼 때 환경부의 '임의 설정' 판단에 법리적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C 변호사는 "부품 소재의 선택권은 제조사에 있고, 배출가스 시험 기준에 EGR 작동 조건이 명시되지 않은 만큼 법적인 책임을 묻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고, 또 다른 B 변호사 또한 "법리적 논쟁으로 가면 환경부의 판단 근거가 애매해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고 설명한다.
물론 여러 논란 여부를 떠나 배출가스는 줄여야 한다. 그러나 제도적 기준을 적용할 때는 문제로 지적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 또한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환경부는 규정에 없는 조건으로 '임의 설정'을 판단했고, 한국닛산은 규정을 지켰음에도 '임의 설정'의 철퇴를 맞았다.
일반적으로 자동차 안전 및 배출가스 등의 기준은 이른바 최소 규정이다. 따라서 기업은 최소 규정만 통과하도록 제조할 뿐 굳이 원가를 늘려 '여유 있는 기준 넘기'를 하지 않는 게 인지상정이다. 국토교통부가 관할하는 안전기준 또한 마찬가지다. 기준이 강화되면 간신히 철봉에 턱만 걸도록 만든다. 그래야 소비자 가격 인상을 최소화하고, 가격에 민감함 소비자를 잡을 수 있어서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환경부 vs 한국닛산'의 공방은 환경부의 '임의 설정' 판단 기준이 없는 만큼 소모적 논쟁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실제 도로 주행 시험을 통해 배출가스를 측정해 인증을 내주는 제도는 승용차의 경우 2017년부터 도입된다. EGR 작동 조건에 에어컨을 켜고, 연료효율처럼 도심과 교외 및 고속도로 주행 때 배출가스도 측정한다. 한 마디로 기준 강화에 나선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기준이 현재는 적용되지 않는다. 환경부로선 내년에 도입할 미래의 제도를 근거로 캐시카이의 운행 중 질소산화물 과다 배출을 지목했고, 임의 설정으로 판단했다. 배출가스를 줄이도록 규제해야 하는 환경부의 숙명을 앞당겨 적용한 셈이고, 한국닛산은 지금의 최소 규정을 당당히 지킨 형국이다. 그러니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보다 차라리 운행 중 배출가스 기준 강화를 유럽연합보다 먼저 적용하는 것은 어떨까 한다. 유럽도 내년에 도입할테니 차라리 앞서 적용하는 것도 해답이다. 그러면 논란은 사라질테니 말이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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